솔베이지의 노래 [ 36 ] 스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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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36 ] 스바나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7.2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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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나네 락시는 과연 림빅에서 맛본 락시처럼 기장으로 만든 것 특유의 향취가 있었다. 술 한 병이 금세 비었다. 미쉘은 한 병 더 마시고 싶어 했지만 나는 일어섰다.
ⓒ김홍성

 

광장 건너편 행상들이 좌판을 걷고 있었다. 티베탄 마부들도 말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쉘은 광장 동쪽 비탈에 있는 공중변소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거기 판자로 지은 싸구려 선술집 서너 채가 나란히 있었다. 다르질링에서 가장 누추하고 좁고 저속한 선술집들이었다. 미쉘이 맨 끝 집의 거적을 들추자 흐린 불빛이 퍼져 나왔다. 불빛 속에서 여자의 조그만 얼굴이 나타났다.

 

, 이 숙녀가 바로 내 애인 스바나야. 어서 들어와.”

 

미쉘은 여자의 목을 왼팔로 감으려했으나 여자는 살짝 빠지며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미쉘이 발정한 곰처럼 따라 들어갔다. 안에서 여자의 숨죽인 목소리와 함께 실랑이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나는 문 밖에 서서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소리가 나더니 미쉘이 거적을 들추고 얼굴만 조금 내밀고 조그만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 , 있었군. 미안, 미안. 깜빡 했어. 어서 들어와.”

녀석은 술이 취했다 깼다 하는 모양이었다. 흠뻑 먹여서 아예 쭉 뻗게 해 줄 테다.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맨 구석에 나무 침대와 조리대가 있었고 긴 탁자와 긴 의자 두 개가 보였다. 촛불이 탁자 끝에서 타고 있었다. 여자는 스무 살 전후로 보였다. 교태가 있는 얼굴인데 낯선 사람 때문에 일부러 무뚝뚝하게 구는 듯했다.

 

스바나는 계란 후라이 두 접시와 락시 한 병, 그리고 컵 두 개를 탁자에 놓고 나무 침대에 걸터앉아 손거울을 드려다 보았다. 미쉘이 유리컵에 락시를 따랐다. “이 집 락시는 기장으로 빚은 꼬도 락시야. 물론 농약을 안 타지. 우선 맛을 봐. 넌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거야.”

 

스바나네 락시는 과연 림빅에서 맛본 락시처럼 기장으로 만든 것 특유의 향취가 있었다. 술 한 병이 금세 비었다. 미쉘은 한 병 더 마시고 싶어 했지만 나는 일어섰다.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구석에 앉아 있었던 스바나가 돌아 앉으며 미쉘을 향해 ‘50루피라고 짧게 말했다. 내 지갑에서 50루피 짜리 한 장을 빼서 주고 먼저 나왔다. 미쉘은 아까처럼 소리를 내고 나와서는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소곤댔다.

 

스바나가 나더러 뭐랬는 줄 알아? 킬킬킬. 오늘 밤 늦게 혼자 오라는 군. 꼭 할 말이 있대.”

그래? 그럼 더 있다 와. 난 그냥 갈게.”

아냐, 아냐. 상관없어. 스바나는 오늘 그냥 사내가 그리울 뿐이야.”

추잡한 놈.”

뭐라구?”

나 혼자 한 말이야. 상관 마.”

, 너 지금 한국말로 욕했지?”

상관 말래두.”

 

공중변소 앞에 이르자 미쉘은 공중변소의 벽을 짚고 오줌을 눴다. 무척이나 오래 눴는데, 누면서 말했다.

, 너 정말 1971년에 베트남에 있었냐? ”

미쉘, 넌 정말 열다섯 살 때 티벳으로 가출했었냐?”

너부터 말해.”

아니, 너부터.”

나중에 하는 거 어때?”

좋은 생각이다.”

 

미쉘은 변소 앞에서 북쪽으로 뻗은 골목길로 접어들더니 갑자기 어깨동무를 풀고 의젓하게 걸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골목 끝에 서있는 붉은 벽돌로 만든 이층 건물을 가리키며 학교라고 짧게 말했다.

 

이층 테라스의 난간에 전등불이 켜 있고 거기 ‘VINCENT MEMORIAL MISSION SCHOOL’이라고 쓴 금속판이 번쩍이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빈센트는 미쉘의 아버지 이름이리라.

미쉘은 자그만 학교 마당을 성큼성큼 건너가더니 현관 앞 어디선가 큼직한 열쇠를 꺼냈다. 문을 열자마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학교 마당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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