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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17] 스포츠계의 달인들 12 - 프로야구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5.06 12:46
  • 수정 2020.05.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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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코로나 19‘여파로 2020 프로야구가 당초 3월28일 보다 38일 늦은 5월5일 어린이날 개막했다.

올 시즌 개막전의 사나이는 한화 이글스 워웍 서폴드 였다.

서폴드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서 한화 이글스 팀의 선발로 나와 정확한 제구력과 체인지업과 커브를 섞어 던지면서 9이닝 동안 2안타 볼넷 1개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올렸다.

서폴드의 개막전 완봉승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프로야구 39년 만에 9번째 개막전 완봉승이었고, 1998년부터 도입된 외국 투수 최초의 개막전 완봉승이었다.

또한 2005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 배영수 투수의 개막전 완봉승에 이어 15년 만에 나온 개막전 완봉승이었고, 한화 이글스 팀으로서는 2009년 이후 11년 만에 나온 개막전 승리였다. 또한 한화 이글스 팀에서는 류현진 선수 이후 완봉승을 올린 투수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개막전 사나이는 OB(현재 두산)베어스의 장호연 투수 였다.

장호연 투수는 1983년부터 1995년까지 OB 베어스 한 팀에서만 13년을 뛰었고, 통산 109승110패(3.26)로 아슬아슬하게 승률 5할에 미치지 못했다.

장호연은 OB 베어스 팀 최초로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100승을 돌파한 선수이고, 개막전 선발 투수로만 9번(6승2패)이나 출전한 명실공이 ‘개막전의 사나이’였었다.

장호연은 개막전에서만 완봉승 2번, 완투승 2번 그리고 1988년에는 노히트 노런까지 기록했었다.

프로 데뷔 첫 해인 1983년 개막전부터 장호연은 완봉승을 올리며 출발했다. 당시 MBC 청룡(현 LG 트윈스)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MBC 타선을 6안타를 산발로 처리하며 7-0 완봉승을 기록했다. 최초의 '개막전 신인 완봉승'이자 프로 데뷔전을 완봉승으로 장식한 3번째 투수로 기록됐었다.

1988년 사직구장 롯데와 개막전 노히트 노런

장호연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는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노히트 노런(4대0승)을 기록했다.

1988년 4월2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경기는 원래 팀의 에이스 였었던 김진욱 투수가 나오기로 했었는데, 연습경기를 하다가 중요한 부위에 공을 맞는 바람에 장호연이 갑자기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장호연은 마치 개막전 선발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정확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롯데 타자들을 요리해 나가면서 볼넷 1개와 몸에 맞는 공 2개만을 허용하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그 경기에 특이한 점은 탈삼진이 한 개도 없었다는 점이다.

장호연은 땅볼이나 플라이 볼 또는 병살타로 롯데 타자들을 잡아 나갔다.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은 1984년 5월5일 어린이날 선동열 투수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해준 것으로 잘 알려진 해태 타이거즈 방수원 투수가 삼미 수퍼스타즈(5대0 승)를 맞아서 기록했다.

그 후 장호연이 3번째 였고, 마지막 노히트 노런은 2019년 4월19일 당시 삼성 라이온즈 맥과이어 투수가 대전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16대0)를 상대로 올린 것이 14번째 이자 마지막 이었다.

당시 맥과이어는 한화 이글스 팀에 무려 13개의 탈삼진을 빼앗아 노히트노런 역대 최다 탈삼진을(종전 선동열 해태, 정명원 현대, 보우덴 두산 등의 9개)을 기록했었다. 장호연의 그날 투구수도 99개로 100개가 안됐다.

장호연은 한 선수에게 두 가지 구질을 던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양한 구질을 자랑했는데, 시속 130km대의 몸 쪽을 파고드는 직구에, 날카로운 슬라이더, 체인지업, 싱킹 패스트볼과 슬러브 등 투수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질을 섞어 던졌다. 마운드 위에서는 빠르지 않은 공을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면서 던지며 타자들을 농락하곤 했다.

장호연의 투수 철학은 별나다.

장호연은 “뒤에 7명의 수비수들을 믿고 맞춰 잡는 다는 것이다. 1대0으로 이기는 것 보다는 10대9로 이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장호연 선수(사진=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갈무리).
장호연 선수(사진=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갈무리).

가상 인터뷰-

미디어 ; 지금도 투수는 맞춰 잡아야 한다는 야구철학은 변함이 없나?

장호연 ; 그렇다. 어차피 투수는 맞게 되었다. 수비수와 점수를 내주는 타자들을 믿고 던져야 한다. 또한 공 세 개로 삼진을 잡느니, 공한개로 범타로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미디어 ; 1988년 롯데와 개막전 노히트 노런은?

장호연 ; 아시다시피 당시 선발 투수는 김진욱이었기 때문에 얼덜결에 마운드에 올라간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힘을 빼고 던진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1988년에는 노히트노련을 기록한, 다음 경기부터 오히려 힘이 들어가 8승12패(방어율 3.95)로 커리어 최악의 해였다.

미디어 ; 기록을 살펴보니까 1984년(1.58), 1986년(1.90) 두 번이나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었다.

장호연 ; 그쯤 되면 나에게도 폭격기(무등산)는 몰라도 ‘팔공산 전투기’로 불릴 만하지 않은가?(장호연은 대구 출신이다)

만약에-

두산 베어스 유희관 투수를 두산 팬들은 장호연 투수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두 선수 모두 공이 빠르지 않지만 정확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많은 승수를 올리고 있다.

두 선수의 약간 다른 점은 유희관의 탈삼진 률(1이닝당 0.576개)이 장호연의 탈삼진 률(1이닝당 0.346개)보다 높다는 점이다. 아마 유희관은 장호연의 “공 3개로 삼진을 잡느니 공 한 개로 범타로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라는 투수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만약 두 투수가 한 시대에 뛰었다면 두 선수 가운데 한명은 불펜으로 뛰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감독이나 느린공을 던지는 2명의 선발투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장호연은 우완, 유희관은 좌완이기 때문에 투수 로테이션 상 다양성 면에서 동시에 선발로 기용할 가능성은 있다.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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