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191) - 여자는 의논하는 존재인가

서석훈
  • 입력 2014.02.15 0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여자는 의논하는 존재인가


이 야심한 시간에 차나 한 잔 하자는 감독의 전화를 받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는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는 바. 이는 할 말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 바로 나가겠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빨리 적당한 핑계를 대라, 이 자식아. 그래야 내가 몸단장 하고 나가지’ 이런 뜻이었다.
“아, 네. 의논드릴 것도 좀 있고.” 의논, 친구들이 들으면 머리를 쥐어 박힐 말이었다. 의논은 무슨 의논, 여자가 의논하는 존재냐? 녀석들은 여자 하면 의논이 아니라 검토의 대상이며 밤의 세계와 연관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하긴 여편네도 어쩌다 거실에서 얼굴 한 번 부딪치는 걸로 10년을 보내온 자들이었다. 여자와 의논하겠다는 데, 그런 고상한 핑계를 대는 데야. 화자는 일단 승인을 하였다. “잠깐이면 되죠? 저 몸이 좀 피곤해서요.” 무슨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몸이 좀 피곤하니 길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발언에서 감독이 주눅이 좀 들어야 할 거였다. ‘의논 좋지. 의논해라. 잠깐 들어주마. 그 다음에 빨리 니 갈 길을 가라.’ 이런 뜻의 발언에도 감독은 결코 비위 상하는 법도 없이 “그럼 미아 지하철역 근처에서 보며 될까요?” 하고 선수를 치듯 말했다. “그러시든가요.” 장화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는데 감독은 그런 말이라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오기만 나와라. 내가 알아서 널 다뤄주마’ 이런 마음으로 감독은 미아리를 향해 출발했다. 복권 당첨금이 주머니에 있는 관계로 지하철 대신 택시를 잡아탔고, 차가 좀 막히자 “택시는 약속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하고 운전기사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어쩌다 택시를 타도 미터기 돌아가는 것만 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미터기야 알아서 돌아가라 하고 도시의 풍경을 관람하며, 오랜만에 만나는 장화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상상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원래 장화자는 예전에 기사가 한 번 나면 뇌쇄적이니, 터질 듯한 볼륨이니, 남심을 훔치는 눈빛이니, 숨 막히는 허벅지니, 그런 거로 주로 언급이 되었다. 그리고 사진이 한 장 정도 곁들였는데 가슴과 엉덩이를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내미는 S자 형태가 많았다.
그러나 이 바닥에 워낙 많은 여체들이 공급되는 바 장화자가 지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는 뭐랄까 스타성이 부족했다. 이 말은 장화자가 아주 싫어하는 말인데 그녀는 자신의 스타성 부족보다는 부박한 메스컴의 행태를 호되게 꾸짖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어쩌다 결혼에 골인했는데 어떤 멍청한 사업가 하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멍청이가 어떤 애송이와 사고를 치고 말았으니 그녀는 지금은 이혼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들이 하나 달려 있다 하였다. 이것이 그녀의 간략한 스토리로 감독이 이미 숙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