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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84) - 비싼 음식 비싼 술이 다는 아니야

서석훈
  • 입력 2013.12.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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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비싼 음식 비싼 술이 다는 아니야


40대의 동영상 감독과 여배우 미나는 이제 바에서 스카치를 앞에 놓고 불륜 직전의 연인처럼 옆구리를 대고 앉아 있었다. 스카치에 얼음을 타서 그 투명하게 비치는 황금빛 속을 들여다보며, 항상 흰 소주나 걸쭉한 막걸리나 또는 거품이 뜨는 생맥주로 나날을 보내온 감독은, 영화가 크게 흥행했을 때나 또는 배우 누가 한 턱 쏠 때나 먹어보는 어쩌다 드셔보는 스카치를, 항상 원하기만 하면 마시는 사람처럼 담담히 앉아 첫 잔을 바텐더가 채워주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여배우 미나로 말하자면 이러한 양주는 룸에 나갈 때 수없이 마셔본 것인데, 남정네들이 노래 부른다고 뛰쳐나가면 자기 앞의 술을 얼른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어느 예민한 자가 있어 이를 감시하고 있으면 입에 담아두었다가 화장실에 가 버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걸 다 처먹었다간 위와 장이 배겨나지 못하고, 또 매상도 올릴 겸 술을 빨리 소비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기에 그러한 편법을 썼지만 지금이야 오랜만에 먹어보는 스카치인데다 서둘러 마셔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내가 오늘 그 찌질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돈을 턱 하나 쓰는 걸 보니, 어느 돈 많은 년을 물었거나 무슨 비디오 영화 같은 걸 찍어달라고 선금을 받았거나 해서 날 그러한 비디오에 몸으로 말하는 역을 맡아달라고 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무슨 제의를 하려는 건가, 이렇게 고급으로 먹이고 마시게 해서 말이다. 단순히 날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론 절차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이 자식이 모르는 게 있는데 여자가 꼭 비싼 음식 비싼 술을 줘야 마음이 열리고 몸도 열리는 줄 아는 것이다. 여자는 분위기인데, 이 분위기는 여러 요소가 배합되어야 하며, 남자 자체의 매력과 유머 또 상냥한 태도에 데이트로서의 저녁 코스 등으로 연결되면서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여자는 물 흐르듯 감정이 흐르고 따뜻한 기운이 넘치며 그만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걸 모르고 무슨 영화를 찍는다고, 이 철없는 감독아!
"하실 말 있으면 하시죠." 잔을 부딪치고 스카치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미나는 감독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일단 의도를 알아야 다음 행동을 취할 것 아닌가. 감을 잡을 것 아닌가. 아무리 시세없는 여배우라 하더라도 몸으로만 말하는 역은 매우 곤란하지 않겠나. 만약 그렇다면 그 역의 예술적 가치를 봐야 하고, 아니면 돈이라도 왕창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속셈으로 그렇게 말했으나 감독이란 자는 `무슨 말?`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미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니 이 자식이, 정녕 할 말이 없다는 말인가. 그냥 처먹고 처마시고 찢어지자는 건가. 설마? 미나는 참을성 있게 감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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