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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73) - 돈 없다, 마음대로 해라

서석훈
  • 입력 2013.10.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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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돈 없다, 마음대로 해라


‘자연산 특 코스’라는 건 다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왜냐하면 먹다먹다 다 못 먹기 때문이었다, 먹성 좋은 친구가 하나 있어 해치운다면 몰라도 남녀가, 부부도 아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남녀가 먹기엔 지나치게 양이 많고 주변 안주들도 만만치 않아 이것이 값을 부풀리려는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다. 기본 안주만 하더라도 양주 한 병 아니라 두병은 마시겠다는 게 그녀 즉 민아의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민아는 감독이 복권 탄 돈 일부를 안주머니에 갖고 있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누가 복권 탄 돈을 주머니에 갖고 있겠는가.
감독은 내가 복권이 되었다고 내 입으로 말하지 않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복권이 되었다고 하면 상대가 그 보기를 어떻게 보겠는가. ‘돈벼락 맞았구나, 무식한 새끼가 이제 졸부가 되었네.’ 또는 ‘아, 이 미련한 인간한테 어찌 저런 복이. 에이 씨 뺏어먹기나 해야지’ 등 지금까지 그에게 보여 왔던 일말의 존중심조차 증발된 채 사람들이 남녀 불구 자신을 사납게 헐뜯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령 그의 앞에서는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살살거려도 돌아서는 즉시 ‘무식한 게 돈은 타가지고’ 다시 중얼거리며 인상을 구기며 갈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가 복권 당첨된 사실을 공표할 수 있으랴.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다 보니 감독은, 항상 머릿속으로 돈계산을 하고 조금만 계산이 나와도 절절매던 모습은 어디 가고 약간 권태로운 표정이 저절로 얼굴에 깔리는 것이 사람이 달라져도 보통 달라 진 게 아니었다. 여배우 민아도 이러한 감독의 변화를, ‘그 찌질이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민아가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이 작자가 혹시 여기서 실컷 처먹고 ‘돈 없다 배째라’ 하고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덤태기가 씌어질 거고 그녀는 알토란 같은 비상금을 모두 털릴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혹은 여기서 처먹고 밤에 집에 가는 길에 뒈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죽 최후의 만찬 같은 거 말이다. 그럼 그녀는 경찰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아아 이 작자가 왜 여기는 들어와 가지고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들지.’ 민아는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그 모습이 감독에게는 상당히 섹스어필하게 다가왔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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