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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66) -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서석훈
  • 입력 2013.08.0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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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1등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는 40대 동영상 제작자의 상상은 끝간 데가 없었다. 예전에 시간이 없어서 챙겨주지 못한 그녀 미나, 그 때문에 가슴 속이 괜히 허전하고 뭔가 미진했던 바, 이제나마 그녀를 챙겨주고 대화를 통해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발전된 관계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주머니에 복권 당첨금 오백이 있고 통장에는 그보다 200배는 더 많은 돈이 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터였다. 돈이 있다고 밝히는 순간 아무리 순수한 마음을 자랑하는 여자라도 견물생심이 생기기 마련이며, 그때부터 그녀의 행위에는 가식이 묻어난다고 봐야 했다. 그럼 여자에게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마성에 빠져들어 아까운 돈을 탕진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 돈이 어떤 돈이냐? 무려 수년에 걸쳐 생각날 때마다 충동이 일 때마다 어떤 땐 충동이 없어도 복권 판매소가 눈에 띄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직접 발품을 팔아 현금을 주고 구입하지 않았던가. 돈까스를 먹을 수 있었던 걸 라면으로 때우고 수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으나 편의점 햄버거로 때우며 안 쓰고 안 마시고 남긴 돈으로 복권을 구입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소중한 돈을 간드러지는 애교와 비비꼬는 몸으로 갈취해간다면 그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은 다 물거품이 되지 않겠는가. 아무리 입이 근질근질해도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말만은 말아야 한다고 사내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하면 괜히 졸부냄새가 나며 진정한 부자의 대열에는 끼지 못할 우려가 컸다. 사업해서 벌었다거나 투자해서 벌었다거나 아무튼 일을 해서 벌어 쓰는 돈이 폼이 나도 나고 남 보기도 멋져 보이는 것이다. 복권 탄 돈이라 하면 여자가 그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겠는가. 그런 돈은 왕창 쓰는 게 당연하다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질투나 하고 어쩌다가 저런 인간한테 복이 돌아갔나, 이왕 돌아간 거 내가 뺏겨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겠냐 말이다. 사내는 폼이라면 본인도 잴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텔 커피숍에 무료하게 앉아 영자신문을 읽고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 따위를 내리며 점심시간이면 약속 있는 사람처럼 호텔을 빠져나가 백화점 식당 같은 데서 한 끼 삼만 원 정도 하는 식사를 하며 어디 가나 미소와 여유를 뿌리며 다니는 정도는 자기도 할 줄 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폼을 재기 위해서라도, 미나를 만나면 복권 얘기는 입도 벙긋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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