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드뷔시 『영상』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構造)의 大理石(대리석). 그 마당(寺院) 한 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앉았다.
-김종삼 ‘주름 간 大理石’ 전문
김종삼이 드뷔시를 통해 추구한 시의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인상파의 기법을 시작에 도입한 것입니다. 소리와 색채, 사물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표현한 인상파처럼 김종삼의 시 곳곳에는 드뷔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와 연관된 대표적인 시는 『현대문학』 1960년 11월호에 발표한 ‘주름 간 대리석’을 비롯해 ‘뾰죽집’ ‘북치는 소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주로 짧은 시에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시는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 『영상』 제2집 중 제1곡 잎사귀를 스치는 종소리, 제2곡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이 연상됩니다. 첫 행에 문장부호 줄표를 표기한 것은 과감하게 생략한 전제를 환기시킨 의도로 보입니다. 줄표 너머는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세계이면서 절제된 음악의 감흥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줄표를 문장부호가 아닌 악보의 덧줄로 해석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이 덧줄은 5선의 범위에 담을 수 없는 이미지를 함축시킨 김종삼의 음표이자 시 전체를 음화(音畫)로 바꾸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주름 간 大理石’은 인상파 기법으로 쓴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됩니다.
인상파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드뷔시의 피아노 독주곡은 『영상』 말고도 『전주곡』이 있습니다. 제1·2집 총 6곡이 수록된 『영상』과 제1·2권 총 24곡으로 구성된 『전주곡』의 특징은 첫째, 개별 곡들의 연주시간이 짧게는 2분대에서 길게는 6분대인 소품이라는 점 둘째, 개별 곡마다 시의 제목 같은 부제가 달려 있는 점 셋째, 음향과 회화 이미지로 가득 찼다는 점입니다. 『영상』에 비해 수록된 곡이 많은 『전주곡』에도 ‘들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감돈다’ ‘서풍이 본 것’ ‘아마빛 머리의 소녀’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 등 시적 분위기가 넘치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