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58] 콘서트 프리뷰: 2019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베토벤 교향곡 "영웅"
[성용원 음악통신 58] 콘서트 프리뷰: 2019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베토벤 교향곡 "영웅"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19.09.1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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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금요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2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 <파르지팔> 모음곡의 프로그램을 보고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페라나 연극에 나오는 유명 악곡을 관현악으로 발췌해 모음곡으로 엮은 <카르멘>,<아를의연인>,<페르귄트>,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은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이미 정립이 되어 있는 반면 바그너의 <파르지팔> 모음곡이란 금시초문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국내에선 바그너의 작품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실연으로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파르지팔>모음곡의 정체부터 탐색하였다. 

9월 27일, 28일 양일간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포스터
9월 27일, 28일 양일간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포스터

 암포르타스는 악극에 나오는 인물로서 성배를 지키는 기사였지만 마녀의 유혹에 빠져 성창을 빼앗기고 그 창에 도리어 찔려 고통과 회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서울 시향 협연자로 나오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암포르타스 역으로 분해 암포르타스의 고뇌에 찬 심경과 함께 비탄과 구원을 노래한다. 바그너의 작품은 음악극이기 때문에 노래와 대사, 독창과 합창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종합 연극적인 드라마를 선사한다. 그런데 사무엘 윤만 출전하다 보니 원곡에서 암포르타스와 함께 부르는 합창 등은 생략하고 오케스트라만 연주된다. 악극 <파르지팔>의 순수 관현악곡인 전주곡과 1막에서의 장면 전환 음악을 첨부하여 지휘를 맡은 마르쿠스 슈텐츠가 연주회의 사정에 맞게 편집하여 모음곡이라 이름 붙이고 구성을 짠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막상 주인공 파르지팔의 흔적은 더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곡 제목도 파르지팔 모음곡이 아닌 <암포르타스>모음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발칙한 장난이 든다.

2019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베토벤 교향곡 ‘영웅’ ①

2019년 9월 27일(금) 8pm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마르쿠스 슈텐츠 Markus Stenz, conductor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Samuel Youn, bass baritone

바그너, <파르지팔> 모음곡

Wagner, Suite from Parsifal, WWV 111

---------------- 휴식 15분 ------------------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in E♭ major, Op. 55, ‘Eroica’

총 소요시간: 약 110분(휴식 포함)

운명이네 합창이네 하는 부제들은 베토벤이 스스로 명명했다기 보다 출판업자들이, 음악을 음악으로만 해석하기엔 너무 어렵다고 여긴 호사가들이 그리고 제목 붙이고 스핀 오프 식의 해석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것들인데 반해 3번 교향곡 <영웅>은 베토벤이 Eroica라고 명확하게 지칭했다. 베토벤은 원래 자유, 평등, 박애의 실현자, 새롭게 부상하는 시민계급의 절대자이자 신흥 부르주아 계급을 해방시킨 메시아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숭배해서 3번 교향곡은 그에게 헌정하려고 하였다. 그런 나폴레옹이 베토벤의 기대를 처절히 짓밝고 스스로 왕도 아닌 황제에 오르면서 일인 독재자가 되니 실망한 베토벤이 이미 보나파르트라고 표지까지 붙인 3번 교향곡의 앞 장을 박박 찢어버리고 '어느 영웅을 추모하며'라고 정정한 데서 영웅이라고 3번 교향곡이 불리기 시작했다.

베토벤 음악의 단순한 구조와 강렬한 리듬은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유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다시 일어선 생명력을 상징한다. 당대의 귀족과 권력층에게 당당히 맞서 예우와 존중을 받았던 예술가로서의 자존감, 당당함이 종속적이고 하부구조로 치부되는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한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사실 베토벤은 귀가 먹은 다음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과거의 양식을 결합한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의 물꼬를 튼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베토벤 음악이 보여주는 궁극의 생동감 역시 그가 가진 불굴의 의지나 신체적 결함보다는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 대중 의식의 변화와 차이(귀족과의)를 인식하고 그 정서를 최초로 음악에 반영한 것에 기인한다. 음악적 재료와 형식에서 샬리에르 등 기존의 궁정음악가들과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음악 재능과 인식 능력을 가졌지만 음악의 흐름과 사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점이 음악적 결과물에서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베토벤은 천재라기보다는 혁신가에 가깝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시민계급의 승리이자 완결점 그리고 대변인이었다.

세상의 낡고 부조리한 모습을 타파하고 쇄신할 영웅의 출현을 갈망하고 그런 영웅이 열어 보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동경과 염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2악장의 장송 행진곡은 그래서 나폴레옹의 몰락이다. 그리고 4악장 피날레의 변주곡 주제는 자신의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누구인가? 그가 남긴 창조물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 인간이다. 그럼으로 영웅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상의 천하무적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기적이며 그게 영웅적 자태다. 우리들을 위한 교향곡이 베토벤 3번 교향곡이자 우리 일반 시민들의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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