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한 로
높은 봉우리
깊은 골짜기마다
사람들 다 있다
울긋불긋, 깔깔대며, 손뼉치고
바싹 말라 폐쇄된 약수터
꼭대기 팔각정 가는 길은
인전 잘못 들어도 다 만나누나
반질반질
아까시 노간주 나무
뿌리를 드러낸
깡마른 산
닳고
닳아
높이와 깊이와
어둠까지 잃고
더는 가릴 것도 없어
밤이고 낮이고 연신 앓는다
들창코처럼
뻥 뚫린 터널로다
군데군데 변태성욕자들
눈길 휘파람만
느끼하니 감치는 산,
산사랑
시작 메모
산을 멀리서 보았을 땐 무척 신비스러웠다. 구름과 안개가 푸르게 휘감은 산 속에는 호랑이, 산신령도 있고 선녀도 있고 애들 간 빼먹는 문둥이들도 살고 비오는 날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저기, 율무기가 올라간다고도 했다. 아파트가 생기고 건강을 생각하는 몇 십만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신비스러움은 깨졌다. 봉봉이 골골이 고급 등산화에 밟히면서 나날이 닳는다. 웬만한 길은 낮이고 밤이고 없이 산악자전거가 헉헉거리며 오르내린다. 메아리 소리는 좀체 들을 수 없다. 메아리가 사라진 대신 우거진 숲 속에서 불쑥 “세 시” 하고 핸드폰이 시간을 말한다. 훅 소름이 끼친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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