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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의 피아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08.07 08:49
  • 수정 2019.08.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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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저녁 석촌호수를 호젓이 걷고 있다 쾅쾅쾅 하는 피아노 치는 소리에 혼비백산했다. 동호와 서호를 나누는 다리 밑에 내버려둔 업라이트 피아노를 누군가 자기깐에 연주라고 막 치는 소리에 소스라쳤다. 고요한 호숫가의 적막도 깨져버렸다.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릴 수밖에 없는 고속버스터미널엔 누군가를 급히 부르는 소리, 버스를 타기 위해 바삐 뛰어가는 발걸음소리, 반가운 조우의 환호성과 환희, 헤어짐의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 등 다양한 소음들이 뒤섞인 시끌벅적한 삶의 현장인데 거기도 한편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이런 북적거림 와중에 누군가는 또 치고 있다. 마치 그에게는 모든 시공간이 멈춘듯 자기 혼자 흥에 빠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가던 길 잠시 멈추지 않고 다들 지나간다. 피아노 소리까지 섞인 토요일 오후다.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휴게소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건 노점상의 국적불명의 딴따라 노래 소리에 별 희한한 장난감, 번쩍번쩍 거리는 생활용품 등의 호객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버스만 타면 기사아저씨가 시끄럽게 트로트도 아닌 이상한 지금의 콜라텍에서나 나올만한 변종 음악을 틀어대 멀미할 뻔한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버스에서 그런 음악 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 정도다. 서울에 도착, 지하철 고속버스터미널역은 3,7,9호선 3개의 노선이 지나가고 거기에 복합적으로 쇼핑몰, 영화관, 백화점, 호텔 등이 입주해 있어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환승하는 통로에 나름 무대라고 조촐하게 꾸며 논 공간이 있다. 안 그래도 웅성웅성 정신없는 와중에 거기서 나온 색소폰과 앰프 스피커 소리까지 혼을 빼 놓는다.

석촌호수 다리 밑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칠이 벗겨져 가는 파랑색 바탕의 분홍 꽃잎이 나부끼는 피아노
석촌호수 다리 밑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칠이 벗겨져 가는 파랑색 바탕의 분홍 꽃잎이 나부끼는 피아노

 어떤 자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호숫가에 피아노를 놔둔 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가구를 야외 물가에 놔둔다면 상태가 어찌될지 상상해보라. 하물며 피아노를 거기다 덜렁 놔두고 누구나 연주하게끔 하는 게 문화적 혜택이며 체험인가. 모진 풍랑과 함께 수천, 수만의 씻지도 않는 손을 견뎌내야 하는 피아노가 불쌍하다. 지금의 4-50대 이상은 어렸을 때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약간의 선망과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다. 피아노라고 하면 부잣집이나 교회나 가야 한두 대 구경할 수 있는 부의 상징 중의 하나였으며 백색의 깨끗한 상아건반은 함부로 손을 데면 안 될 정도로 범접하기 힘든 순수한 오브제였고 그 피아노를 앞에 앉은 교회누나나 부잣집 아가씨는 정말 악기에 어울릴만한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 같았다. 지금은 누구나 접하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대중성을 지향에서인지 이렇게 온 사방 군데에 놔두고 관리도 안 하면서 방치해 두었는데 누구나 만지고 때리고 (연주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 장난감 취급하는 게 문화체험이요 참여인지 묻고 싶다. 연주와 연습을 좀 구분했으면 한다. 자기 멋과 흥에 취해, 자기만의 카라르시스를 분출하기 위해자기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라면 자기만의 공간에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악연주/노래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음악연주/노래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어딜 가든 차분한 가운데 자연친화적이지 않고 붕 떠 있고 시끄럽다. 산에 가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켠 등산객들, 한강변에 조깅을 나가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틀어 놓은 음악, 밤만 되면 술에 취해 고성방가에 깔깔거리는 경박한 웃음소리와 거센 척하면서 내뱉는 욕지거리에 기겁을 금치 못한다. 그럼 나보고 시골로 들어가라고 하지만 거긴 작은 사회 특유의 폐쇄성과 고립성으로 인해 더 시끄럽다. 여기서 시끄럽단 의미는 소리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쉽게 표현해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니 ‘너 살고 나 살자’의 통합과 화합의 상생체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악다구니 같은 사회가 대한민국이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불안정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원이나 언론에서부터 가능하면 화합시키고 문제를 봉합시키려고 해야하는데 도리어 증폭시키고 이슈화하고 정쟁화하여 별거 아닌 일도 침소봉대, 갈등과 분열을 일삼고 선동하고 거기에 세뇌당한 사람들이 부화뇌동하면서 그게 정의이고 소신이자 신념인지 안다. 그래서 허구헌날 시끄럽고 궤변과 막말, 해괴한 논리와 거짓뉴스,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오늘도 무사히, 황당하고 날벼락 같은 사건사고를 안 겪은 것만으로 안도해야지 무법천지인 대한민국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고 힘들도다.

고성방가금지!!!!고성방가는 한민족의 특징인가?
고성방가금지!!!!고성방가는 한민족의 특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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