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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백운대

최진규 작가
  • 입력 2019.07.31 07:16
  • 수정 2019.09.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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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백운대

백운대 정상
백운대 정상
북한산 겨울 전경
북한산 겨울 전경

백운대는 1992년 12월 첫 등정을 필두로 지금까지 300번 가까이 올라갔다. 특히 IMF 때까지 240번 이상 오른 걸 보면 가히 산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그 무렵에 이곳은 그저 빨리 오르고 빨리 내려가는 것만을 능사로 삼는 심신 단련 장소였다. 사실 나는 몸뚱이가 하나만 있는 걸 원망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본업인 선생질을 하면서 적어도 일주일에 이삼 일은 남대문 동대문 새벽시장에 나가 옷 보따리를 지고 다녔다. 부업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매일 산을 찾았다. 특히 백운대는 가까이 있어 아무 때나 오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최고봉이라는 명성 때문인지 성취감도 컸다. 나는 백운대 등정 횟수를 늘려 나가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무의미한 일상에 대한 보상을 얻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예전에도 휴일에 백운대를 올라가려면, 러시아워를 각오해야 했다. 멀리서 백운대에 오르는 등산객들을 보면 영락없는 개미떼였다. 철삭만 부여잡고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을 앞지르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성질에 못 이겨 아예 철삭을 무시하고 그 옆 바위에 올라붙었다. ‘어머! 어머!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저 사람은 겁도 없어.’ ‘뒈지려고 환장한 거지.’ 철삭에 매달려 백년하청(百年河淸)하고 있던 등산객들이 솟아오른 바위를 타는 내 모습을 보고 한 말들이었다. 정상에 선 다음에는 이내 맨 바위를 타고 내려갔다. 아무래도 사고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다행히 화강암 덩어리인 백운대는 표면이 껄끄러워, 접지력이 좋은 릿지화만 신으면,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상적인 루트로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의 눈총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면서 점점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될수록 사람들이 뜸한 시간에 산행하는 버릇이 생겼다. 야간산행이나, 새벽산행도 자주 했었지만, 늦은 오후가 최적의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시간에 홀로 등산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백운대에 도착하면 어쩔 때는 한 사람도 안 보였다. 아직 산에서 내려가지 않은 등산객들이 있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갓진 정상에 선 다음, 동서남북을 한 바퀴 둘러보면 곧 하산이었다.

   나는 막돼먹은 산행 실력 하나만 믿고 꽁지에 불붙은 놈 마냥 산을 오르내렸다.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외면했다. 몇몇을 뺀 나머지 산봉우리 이름들은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감성까지 억제한 것은 아닌 모양이라, 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벅찬 감동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그 감동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에 머물렀다. 본시 나라는 인간이 복잡한 걸 싫어하여 철학적 사유 따위를 멀리한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쫓기듯 올라 다니는 산행 습관은 사물을 직관적으로 관찰하는 타성에 빠지게 했다. 그해 마지막 날의 백운대 기행(紀行)도 그 중의 하나다.

   계유년이 끝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북한산으로 달려갔다. 계획에 없던 즉흥적 등산이었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입구에서 출발하여 칼바위능선 앞에 섰다. 어제 내린 눈이 온 산을 소담스럽게 덮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둔해 보이는 눈꽃더미 대신, 정연하게 날이 선 상고대가 단단하고 촘촘하게 박힌 상태였다. 추운 겨울 고지대에서 볼 수 있는 상고대는 겉보기에는 견고하고 날카로운 것 같지만 만지면 쉽게 바스라졌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칼바위 능선은 울퉁불퉁한 잔바위들로 이루어진 암릉 구간이었다. 최근에는 가본 적이 없어 어떤지 몰라도 그때는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오르내릴 때 양손 두 발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힘주어 올라가면, 가장 꼭대기에 딱 한 사람 앉거나 설 수 있는 좁은 전망바위가 나타났다. 그 바위 바로 옆은 떨어지면 사망 아니면 중상으로 이어질 수직 절벽이고, 아래는 내리꽂히는 내리막길이었다. 하지만 제멋대로 튀어나온 바위투성이 지대라서, 공포감을 물리치고, 찬찬하게 착지 지점을 확보하며 내려가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전망바위에 서면 생명의 위기감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는 대자연의 풍광을 만날 수 있었다. 하늘이 시원하게 뚫린 날, 좁아터진 전망바위에 우뚝 서서 동서남북을 둘러보면 어디든 막힘이 없었다. 멀리로 삼각 봉우리부터 더 멀리로는 오봉과 도봉산 주봉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을 살짝 왼쪽으로 돌리면 보현봉을 비롯하여 많은 봉우리들이 명산다운 북한산의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심지어 숨이 막힐 정도로 조밀하게 들어선 집과 건물들로 채워진 서울 시내까지 멋진 그림으로 착각하며 감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겨울 등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난밤에 내린 눈이 얼음과 뒤섞여 등산로를 덮고 있었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길을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올라서기가 꺼려졌다. 우회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쪽은 고려의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때 한 청년이 주춤거리며 서 있는 내 앞을 지나쳐 능숙하게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내게는 확실한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가 만든 발 흔적을 따라가며 칼바위 능선을 넘었다. 오늘은 전망이고 자시고 없었다. 무사히 통과하기에만 급급했다. 산성길로 올라섰다. 청년의 발자국은 보국문 쪽으로 나 있었다. 다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 위에 섰다. 흰 눈밭을 걷는 묘미도 재미나지만, 그 눈밭이 처녀설일 때는 또 다른 감흥이 일었다. 침입의 흔적이 없는 미지의 공간을 내가 첫 주인공이 되어 걸을 때 밀려오는 쾌감이었다.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짙은 안개로 막혀 있었다. 마치 컴컴한 지하세계로 들어서는 입구 같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안으로 몸을 넣었다. 안개와 뒤섞인 거대한 눈의 세상이 펼쳐졌다. 숨이 막혔다. 그저 안개와 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막을 짓누르는 적막이, 몽환적 분위기에 취한 정신을 바로 서게 했다. 용암문을 지나 만경대 옆구리 길을 걸어 나갔다. 노적봉도 보이고, 쇠말뚝에 연결된 철삭 구간이 나타나야 했지만, 오늘은 안개 때문에 그 어느 것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경험에 의존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어 철삭 앞에 섰다. 이곳을 통과하면 위문이 나올 것이고 바로 백운대로 오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앞에만 서면 더욱 힘이 솟아났었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밭만 헤치고 다니다 내려오겠네.’하였다. 철삭을 붙들고 한 발짝씩 나아갔다. 반대편에서 등산객이 내려온다면, 코앞에서 귀신이 튀어 나온 것으로 알 만큼 안개로 꽉 채워진 공간이었다. 그러나 겨울 산, 그것도 눈이 쌓여 있고, 안개까지 자욱한 바위산을 아침 일찍부터 찾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위문에 점차 가까워지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개가 옅어지면서 푸른 하늘이 살짝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직감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경험을 하는 날이 될 걸 확신했다. 이왕이면 계유년의 마지막 날이고 하니 평범하지 않기를 기대하지 않았던가? 확신에 찬 기대는 이내 화답 받았다. 백운대로 오르는 마지막 쇠줄 구간에 올라붙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툭 터진 것이다. 순식간에 사물을 바꾸는 마술 같은 변화였다. 안개는 다 사라지고 쏟아져 내리는 창공의 빛을 한 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는 백색의 거대한 암봉이 반짝이며 우뚝 서 있었다. 찬연하고도 찬연한 백운대였다. 신바람이 절로 났다, 기합을 넣으며 철삭을 부여잡고 치고 올라갔다. 이윽고 태극기 펄럭이는 836미터 고지에 섰다. 바로 아래에는 말 잘 듣는 동생처럼 얌전하게 솟아있는 인수봉이 머리에 눈을 얹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오래된 친구인 듯 반가운 봉우리다. 그 옆으로 허리에 안개를 감고 눈을 짓이겨 붙인 만경대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백운대에 덤벼들 듯 사나운 기세였다. 멀리로는 주변 산봉우리들이 한없이 가벼운 물체처럼 혼탁한 안개 위로 두둥실 떠 있었다. 당장 까마귀 날개에 얹혀 너울너울 비상한다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만 누리는 이 황홀경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었다. 바람이 휙휙 날아다녔지만, 정신이 한데 모아진 나를 어쩌지 못했다. 한동안 정상을 떠나지 못하고, 제 자리에 선 상태로, 느릿느릿 돌면서 천지사방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자꾸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다, 나도 시인처럼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하나 둘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다. 위문으로 내려섰다. 운무가 다시 나를 휘감았다. 갑자기 바람이 더욱 사납게 날을 세웠다. 추위를 막으려 목을 척추 아래로 쑤셔 넣은 채 열심히 빙판길을 타고 내려왔다. 그래도 상고대 핀 나무를 흘낏거리며 감상하는 건 잊지 않았다. 상고대가 점점 뭉그러지는 진달래 능선에 이르니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새 구름이 대부분 걷힌 것이다. 백운대, 인수봉 머리로만 구름 조각들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엉겨 붙어 있었다. 백련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눈은 다 스러졌다. 붉은 흙과 암갈색바위들이 마른 나무들과 함께 삭막한 골짜기를 채우고 있었다. 살풍경한 이곳은 바로 내가 사는 이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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