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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케기행 59 ] 앙 다와 씨의 닭 요리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06.24 05:22
  • 수정 2019.09.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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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자 앙 다와 씨가 닭을 요리했다. 많이 해 본 솜씨였다. 크고 둥근 냄비에 콩기름을 두르고, 부인이 미리 다져 둔 마늘을 넣고, 토막 친 닭을 넣고, 마살라를 뿌리고, 소금도 치고, 물을 조금 붓고, 화목을 뒤적여 불땀을 키우고, 부글부글 오래 끓인 뒤에는 불땀을 줄이고 쟁반을 가져다 냄비를 덮었다.

마이다네 맞은 편 비탈 ⓒ김홍성  

 

변소가 따로 없는 집이어서 저만치 사람 눈에 잘 안 뜨이는 밭고랑에 가서 앉았는데 바람에 실려 오는 흙냄새가 싱그러웠다. 풀냄새, 꽃냄새, 두엄냄새에 나무 타는 냄새까지 느껴졌다. 좀 있다가는 밭고랑 여기 저기서 인분 냄새도 바람에 실려 왔다

산에 오래 있으면 시각 청각 뿐 아니라 후각도 발달한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 있을 때는 십 리 밖에서 올라오는 여성 등산객들의 비누 냄새를 맡은 일이 있다. 삼십 리 밖 암자에서 치는 새벽 목탁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하얀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육중한 앞산 너머로 흰 구름이 떠가고, 어느 집에서는 개 짖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 왔다. 지난봄에 총누리와 내가 내려온 길이 어느 길이었는지, 우리가 밥 먹은 집은 어디였는지 가늠해 보다 말았다.  

 

앙 다와 씨의 차녀 니마 혀무 셰르파 ⓒ김홍성 

 

밭고랑에서 일어섰을 때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진한 노을 속에서 앙 다와 씨의 둘째 딸이 집 앞마당에 두 마리의 소를 매고 있었다. 피케 쪽 능선 위에 있는 똘루 곰파도 노을에 젖어 있었다. 지난 봄, 눈길을 뚫고 찾아갔던 똘루 곰파의 노승은 여전하신지 궁금했고 그 때 얻어 마신 락시 맛이 새삼스러웠다.

좁은 계단을 딛고 앙 다와 씨네 다락방에 오르니 연기가 자욱했다. 앙 다와 씨의 아내가 화덕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들고 그녀 앞에 앉았다.

 

앙 다와 씨의 부인이 감자 수제비를 만들고 있다. ⓒ김홍성    

 

감자 껍질을 벗기는 앙 다와 씨의 부인 ⓒ김희수  

 

앙 다와의 아내 혀무 셰르파는 35, 빠쁘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수께 마을 출신이다. 장녀 부티 셰르파는 15, 지난 9월에 카트만두로 영어 배우러 갔다. 학교를 늦게 다녀서 이제 겨우 3학년이다. 차녀 니마 혀무 셰르파는 11, 2 학년이다. 가축을 돌보는 등 집안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공부할 틈은 물론 씻을 틈도 없다. 때가 앉아 시커먼 손발이 부끄러운지 가까이 오려고 들지 않았다. 셋째 딸 꺼무니는 7, 1학년이다. 외아들 햑빠 겔제는 3, 막내딸 지미는 이제 돌 지난 지 얼마 안 되었다.

혀무 셰르파가 딸들과 함께 기르는 가축은 소 세 마리, 염소 열 마리이다. 소는 둘째 딸이 돌보고, 염소는 셋째 딸이 돌본다. 농사는 주로 감자, 옥수수, 보리 외에 시미라고 부르는 일종의 강낭콩이다. 이걸로는 자급자족하기에도 부족하여 앙 다와 씨가 트레킹 시즌이면 카트만두에 나가 트레킹 포터 일을 하는 것이다.

앙 다와 씨가 트레킹을 다니면서는 지리로부터 쌀도 사다 먹기 시작했다. 쌀 사다 먹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리에서 쌀 60 킬로그램을 짊어지고 마이다네까지 오려면 닷새가 걸린다.

 

앙 다와 씨가 요리를 시작하자 어린이들이 즐거워했다.  ⓒ김홍성  

 

닭 한 마리를 12 명이 나눠 먹었다. ⓒ김홍성 

 

앙 다와 씨는 집에 도착하여 차 한 잔 마신 후 닭을 구하러 나가고, 앙 다와 씨의 아내는 우리의 요기가 될 시미를 삶기 시작했다. 좀 있다가 동네 사람들이 마실을 오고, 이어 앙 다와 씨가 닭을 사들고 오고, 닭 잡을 물을 끓이는 동안 삶은 콩을 먹었다.

앙 다와 씨의 아내가 빚었다는 옥수수 막걸리도 나왔다. 그 막걸리는 여태 먹어 본 막걸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앙 다와 씨는 아내가 권하는 대로 쭈욱 잔을 비우다가 내가 신기하게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집에서는 좀 마신다'며 웃었다.

물이 끓자 앙 다와 씨가 닭을 요리했다. 많이 해 본 솜씨였다. 크고 둥근 냄비에 콩기름을 두르고, 부인이 미리 다져둔 마늘을 넣고, 토막 친 닭을 넣고, 마살라를 뿌리고, 소금도 치고, 물을 조금 붓고, 화목을 뒤적여 불땀을 키우고, 부글부글 오래 끓인 뒤에는 불땀을 줄이고 쟁반을 가져다 냄비를 덮었다.

닭 한 마리를 12 명이 먹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반 마리는 김 선생과 내가 먹은 셈이다. 나머지 반 마리를 앙 다와네 식구들과 이웃 등 열 명이 나눠 먹었으니 그들은 맛만 본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혀 밑에 침이 고일만큼 맛있었다는 걸 마저 밝혀야겠다.<계속> 

 

감자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껍질 깐 감자를 절구에 넣고 찧는 이웃집 총각.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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