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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13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06.14 10:54
  • 수정 2019.09.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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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영혼에 드리운 ‘야간 파장’, 신과 소통 가능한 ‘전원’
세자르 프랑크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

세자아르 프랑크의 음악(音樂) <바리야송>은

야간(夜間) 파장(波長)

신(神)의 전원(電源)

심연(深淵)의 대계곡(大溪谷)으로 울려퍼진다
 

밀레의 고장 바르비종과

그 뒷장을 넘기면

암연(暗然)의 변방(邊方)과 연산(連山)

멀리는

내 영혼의

성곽(城廓)

-김종삼 ‘최후(最後)의 음악(音樂)’ 전문
 

▲알도 치콜리니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세자르 프랑크의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 ⓒ박시우
▲알도 치콜리니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세자르 프랑크의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 ⓒ박시우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세자르 프랑크(1822~1890)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

클로드 드뷔시(1862~1918)

모리스 라벨(1875~1937)
 

잘 아시겠지만 19세기 프랑스 예술의 주요 인물로 김종삼 시인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종삼은 드뷔시보다 세자르 프랑크의 음악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누가 또 드뷔시의 왜 그것은 말라르메의 삽화 정도고 정말 말라르메의 시 문학과 통하는 것은 후랑크지 하면, 참 그렇군... 할 정도밖에 못 된다..."

나이는 어렸지만, 친구처럼 지낸 전봉건 시인의 산문에 종삼을 회상하는 대목입니다. 종삼은 왜 말라르메에 프랑크를 접목했을까요. 정념을 배제하고 초서정주의를 추구했던 말라르메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순음악을 고집했던 프랑크를 장르는 다르지만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종삼은 드뷔시가 말라르메와 친하게 지내고 그의 작품을 음악으로 만들었어도 염결한 프랑크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평가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그래서 드뷔시 음악을 '삽화‘ 정도로 취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종삼이 드뷔시를 평가절하한 것은 아닙니다.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정집.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정집.

문학의 상징파와 음악의 인상파는 서로 일맥상통합니다. 말라르메의 시에 나타난 음악성과 색채를 드뷔시가 음악으로 승화시켰지만, 종삼의 눈에는 프랑크와 비교할 때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표현으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대문학』 1979년 2월에 발표된 '최후의 음악'에 이런 생각이 묻어있다고 봅니다. 종삼은 프랑크 음악을 고독한 영혼에 드리운 ‘야간 파장’, 신과 소통 가능한 ‘전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시에 프랑크의 '바리야송'이 나옵니다. 프랑크 음악 중 많이 알려진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교향적 변주곡』이 떠오를 텐데 ‘작고 예쁜 것’을 좋아한 종삼의 취향을 고려하면 대편성 관현악곡보다는 오르간 소품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이 떠오릅니다. 오르간의 잔향과 깊은 울림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피아노로도 연주되는데 오르간 연주와는 달리 명징하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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