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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유감 3

최진규 작가
  • 입력 2019.05.27 07:31
  • 수정 2019.09.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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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유감 3 - 산을 사랑한다는 것

 

백운대에서 바라본 미세먼지 걷힌 인수봉
백운대에서 바라본 미세먼지 걷힌 인수봉

 

미세먼지 가득한 인수봉 아래 풍경
미세먼지 가득한 인수봉 아래 풍경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린 걸 알고 난 후, 산에 내 몸을 맡기겠다는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따라서 산은 병을 이기기 위한 체력단련장이고 극기 장소였다. 나는 다른 산으로 원정 갈 때나, 일 년 중 며칠 안 되는 아주 특별한 날 빼고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북한산 도봉산을 올라갔다. 산은 나에게 정복과 승리의 대상이었다. 산 입구에 서면 승부욕이 서서히 피어났다. 그리고 앞만 보고 논스톱으로 치달았다. 앞에 누가 있으면 무조건 따라잡아야 했고,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파른 경삿길을 무섭게 치고 올라가 멀리 떨어뜨렸다. 어느 누구도 나와 경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들면 스스로를 혼냈다. ‘이러면 병에게 지는 거야!’

  전투하듯이 산행하다 보니, 아무리 풍광 좋은 명산이라 한들, 느긋하게 완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중간 중간에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안 하고, 앞만 보고 내달렸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곧바로 하산에 돌입했다. 고생한 몸 추스르며, 산 아래 풍경을 넉넉하게 감상할 법도 하건만, 시간의 제약을 받거나, 기록 단축을 한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했다. 물론 산에 들어와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전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공(氣功), 태극권 수련한다며 머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산 도봉산을 비롯하여 수많은 산을 올랐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었다.

하산한 뒤에는, 마치 혁혁한 전과(戰果)를 자랑하듯이 백운대 등반 000, 도봉산 정상 00’ ‘만경대 릿지 00, ’백운대까지 00‘, ’지리산 종주 00시간‘ ’천불동에서 오색약수까지 0시간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별스런 기행(奇行)도 서슴지 않았다. ()에 대한 관심을 가진 후부터, 기공(氣功) 수련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바위 꼭대기든 이름 없는 골짜기든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장맛비가 내리면 불어난 계곡물 구경하겠다며, 태풍이 불면 온몸으로 바람을 맞겠다며 산을 찾았다. 처녀설(處女雪)을 밟으려고 눈 내린 새벽에 산길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상공을 지난다는 혜성을 구경하려고 혼자서 가을밤에 백운대 등반에 나서기도 했다. 자일 없이 인수봉 정상에 올라갔고, 아무 장비 없이 험악한 암릉 구간을 놀이터 삼아 왔다 갔다 했다. 귀신 한 번 보자며 오밤중에 구파발 태고사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귀신은 못 보고 한 마리 남은 반딧불이를 보면서 태극권도 했었다.

  전에도 늘 산을 가까이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산에 달라붙기 시작한 건 1991년 겨울, 백운대 정상을 처음 밟고 나서였다. 그 뒤로 마흔 나이까지, 무식한 산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몸은 돌처럼 단단해졌으며, 용기가 탱천하여, 하늘 아래 두려울 게 없었다. 급기야 병도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병은 집요했다. 놈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한순간에 나를 무너뜨렸다. IMF 때였다.

  이때까지 나는, 주변 사람들이 너는 산에 미친 사람 같아.’라고 했을 때, 걱정과 충고 섞인 고언(苦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열정적으로 산을 사랑하는 나에 대한 부러움 섞인 반어적 칭찬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산을 대하는 자세도 잘못되었을 뿐더러, 산을 사랑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보낸 그 시절이었다.

  사랑으로 치유되어, 지금은 덤으로, 그것도 두 번이나 얻은 덤 인생을 살게 된 나는, 과거의 어리석고 미련했던 산행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천석고황(泉石膏肓)에 걸린 터라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도봉산 북한산은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과 된장국이고,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같은 거창한 산은 큰맘 먹어야 접할 수 있는 최고급 한정식이며, 그 밖의 유명 무명의 산들은 집밥 먹다 가끔 생각나는 바깥 별미다. 다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산을 둘러보며 걷게 되었고, 풍광 좋은 자리가 있으면 가다 말고 쉬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유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산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을 뿐더러, 산을 사랑한다는 게 무언지를 하나하나 배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산을 사랑하는 방법은 별것이 없다. 아끼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좁은 산길을 걸을 때 나뭇가지가 몸에 닿으면, 아기 볼 쓰다듬듯 어루만지고, 땅에 납작 엎드린, 작은 풀꽃 한 포기가 있으면, 눈을 가까이 대고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산새가 근처 나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멈추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조심조심 발걸음 죽여 걸으면, 그게 산 사랑법이라는 거다.

  그저 물병 하나만 들고 산에 들어와, 귀한 집을 방문한 손님처럼 조신(操身)하며 놀다가, 산의 좋은 기운만 마음껏 담아가면 되는, 아주 간단한 산 사랑!

  그러나 늘 건강하길 바라는 산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살이는 버릴 수 없었고, 산은 올라가야 했던 나는, 삼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텃새처럼 도봉산 북한산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도봉산 북한산도 시간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어 왔고, 그 변화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원통사에서 바라본 미세먼지 낀 서울 풍경
원통사에서 바라본 미세먼지 낀 서울 풍경

 

계곡처럼 변한 길 위에 또다른 길이 만들어지고
계곡처럼 변한 길 위에 또다른 길이 만들어지고

 

황폐화된 도봉산 방학능선 숲
황폐화된 도봉산 방학능선 숲

 

  우선 너무 많이 몰려드는 등산객의 발길에 짓밟히면서, 길은 깊은 골짜기처럼 깊게 패이고, 없던 길이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뭐니 뭐니 해도 두 산을 중병에 걸리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도시 공해였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곁에 있다는 최악의 지리적 조건 속에서, 천만 인구가 만들어내는 독가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산을 골병들게 하였다. 거기에 중국에서 날아오는 독성 물질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견딜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 두 산은 고약한 환경에도 적응을 잘하는 나무와 풀들이 주종을 이루면서 지극히 단순한 식생 구조가 되었다. 그나마 높은 곳에 사는 나무들은 조금 나은 편인데, 중턱 아래 나무들은 안개에 섞이고, 바람에 실려와 달라붙는 고약한 매연을 켜켜이 뒤집어쓰고 질식당하다가, 마침내 골다공증환자의 뼈처럼 부러지고 버스러져 넘어진다. 살아있는 나무들조차 줄기 때깔이 중병 걸린 낯짝처럼 칙칙하고 꺼칠할뿐더러 문지르면 검댕까지 묻어나온다. 이는 청정지역의 나무들이 사시사철 해끔하게 세수한 얼굴마냥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었다.

  ‘산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는 내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건강한 산 가까이에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질기고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도봉산 북한산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다. 나는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하면서, 그냥 아픈 산의 모습까지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아프면서도 인간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아낌없이 불어넣어 주는 우리의 도봉산 북한산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해마다 찾아오는 반가운 진객들이 있어,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대부분 철새나 나그네새들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시루봉 아래 둥지를 틀고, 해마다 5월이 되면 잊지 않고 날아오는 꾀꼬리를 며칠만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잘 자란 녀석들의 새끼가 텃밭 단감나무 사이로 어설프게 날기 연습하는 광경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새끼들 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없었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성질 급한 암수가 빠르게 저공비행을 하며, 오리처럼 짖어대는, 여름 철새 파랑새도 또 찾아오리라 믿는다. 말도 안 되는 동요 가사에 미혹되어, 파랑새는 이름처럼 목소리도 고울 거라는 착각을 여지없이 부숴버린 녀석들이기도 하다.

  때 이르게 나타나 쩌렁쩌렁 시루봉을 울리다가 종적을 감추었던 되지빠귀가 다시 등장하여 해 넘어갈 때까지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 부를 것이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감정 없이 흉내 내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목소리의 검은등뻐꾸기는 올해도 이 골 저 골 날아다니며 목청 가다듬는 시원한 소리를 지르고 다니겠지.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렸다가 자기 힘으로 다시 살아나 도봉산을 가리고 있는 나무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렸다가 자기 힘으로 다시 살아나 도봉산을 가리고 있는 나무

 

만경대 등산로에서 바라본 백운대
만경대 등산로에서 바라본 백운대

 

미세먼지 걷힌 서울 풍경
미세먼지 걷힌 서울 풍경

  나는 믿는다. 산을 사랑하는 인간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던 내가 다시 일어난 것처럼,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려 죽어가던 나무들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의 도봉산 북한산이 싱싱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언젠가는 모자라지도 않게 넘치지도 않게, 사라진 것들이 다시 나타나고, 떠났던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완전한 자가 복원의 기적이 두 산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썩은 살 걷어내고 새살 돋은 몸,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산의 힘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열어놓은 창밖에서 또르르르방울 구르는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먼 길 가던 나그네, 울새가 잠시 쉬었다 가려고 이 산에 내려앉은 것이다. 며칠 있으면 떠나겠지만, 아직은 찾아올 만한 산이라 믿고 찾아온 울새야! 고맙다. (2019. 5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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