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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유감 2

최진규 작가
  • 입력 2019.05.21 07:42
  • 수정 2019.09.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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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유감 2 - 사라지는 생명들

 

                                          북한산 국립공원 유감 2 사라지는 생명들

집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시루봉
집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시루봉
북한산 둘레길이 지나는 텃밭
북한산 둘레길이 지나는 텃밭
도봉산 산새 삼총사와 놀던 바위
도봉산 산새 삼총사와 놀던 바위
동고비
동고비

 

  세월이 흐르면서 남아 주었으면 하는 것들까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나는 북한산과 도봉산을 삼십 년 이상 오르면서, 없던 길이 생기고, 계곡 형태가 바뀌는 걸 지켜봤다. 그러나 길과 계곡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자연 생태 질서까지 무너지고 있는 현상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조류들만 살펴보더라도 많은 종들이 사라졌고 현재도 사라지는 중이다. 조류 말고도 자주 접할 수 있었던 동물들의 모습이나 목소리들이 점차 뜸해지다가 아예 보거나 들을 수 없게 됐을 때의 그 서운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도봉산자락이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다 멈추면서, 봉긋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 하나를 만들어 놓았고, 누군가 시루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 창문에서 내다보면, 시루봉이 바로 앞에 서 있고, 그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 너머로, 각각 북한산 도봉산의 중심 봉우리가 근사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었다. 다만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도봉산을 많이 가린 상태다. 나는 십칠 년 이상을 이곳에서 살았다. 마음 편하게 산에 가고 싶을 때면, 아파트 뒤로 돌아 나와, 시루봉 앞 텃밭을 가로지르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거나, 곧바로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올라갔다. 그러면서 산속뿐만 아니라 시루봉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려스러운 생태 변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미명의 시간에 가장 먼저 잠을 깬 새 한 마리가 목이 잠긴 소리를 내면, 온갖 종류의 새들이 따라 일어나, 대합창으로 시루봉과 텃밭을 가득 채우던 때가 있었다. 요즘도 여전히 기상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이 있기는 하지만, 뒤따르는 소리들이 형편없이 줄어들어 내 마음을 더욱 헛헛하게 만든다.

  봄비가 내려 땅 위로 물기가 차오르면, 산개구리들이 내려와 짝짓기 하자며 경쟁하듯 소리를 지르던 시절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와그르르 짖다가 일순 잠잠해지고 또 와그르르 짖고 하던 놈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더 이상 개구리들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침볕이 잘 드는 언덕에 올라, 거들먹거리며 까투리를 유혹하던 장끼들과, 어미 까투리 뒤를 따르다가, 인기척에 놀라 바람에 구르는 낙엽처럼 흩어져 도망가는 꿩병아리들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어쩌다 장끼 한 마리 나타나 몸을 숨기고 꺽꺽울어대기는 하는데, 마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것만 같다.

  찬바람 나기 전 가을날, 해가 저물면, 귀뚜라미 풀벌레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쩌렁 쩌렁 돌돌돌고막 뒤흔드는 요란한 연주를 해댔었다. 지금은 지난날에 비하면 반의 반,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녀석들이 초라하게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 갈아엎어 맨흙이 드러난 텃밭에는 이제 벌레들이 몸 비빌 풀이 없다.

  풀씨가 야물딱지게 여물고, 야생 들깨가 무시로 터지는 가을이 되면, 8기통 엔진 소리를 내며, 잘 던진 투망처럼 텃밭을 덮던 참새 무리가 있었다. 요즘은 수십 마리 작은 집단들로 쪼개져 초라하게 날아다닐 뿐이다. 그래도 신사터 애기단풍나무숲은 아직 풍성하여 머물 수 있겠건만 어디로들 간 것인지.

  밤이 되면 소쩍새가 시루봉 나무에 앉아 애잔하게 울어대고, 이에 화답하듯 산 너머 다른 소쩍새들이 맞받아 울곤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쩌다 한 녀석이 나타나 짧게 울다가 홀연히 날아가 버린다. 녀석들의 울음에 넋을 빼앗겨 혼몽으로 빠져들던 그날 밤의 잠자리가 그립다.

  산속 변화도 산 아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재작년까지는 영양실조에 걸린 듯 꼬리털이 빠진 다람쥐 한 마리 정도는 관찰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단 한 마리도 내 눈에 안 띄었다. 청설모도 매한가지다.

  길가 관목 사이를 팔짝팔짝 뛰면서 산행 앞잡이를 자처하던, 대가리가 큼직한 까치 사촌 어치 녀석들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높은 곳 바위에 앉아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으면, 잽싸게 물고 가던 겁 없는 박새, 가까이는 못 오고 그놈 것을 빼앗던 곤줄박이, 그놈 것을 또 가로채던, 조금 더 힘센 동고비! 이 재미난 삼총사를 언제 다시 구경할 수 있을까?

  뻐꾸기는 어떻고? 아주 떠났는가 싶으면 한 해 걸러 나타났다가, 또 종적을 감추고, 이제는 영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구나 싶어 애를 태울 때쯤이면, 다시 나타나더니, 올해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겁도 없이 사람 눈에 띄는 나무에 구멍을 파고, 요란하게 짖으며 주변을 낮게 비상하던 빨간 머리의 까막딱따구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두견이는 이미 십 수 년 전에 이 산을 영영 떠나버렸다.

  바쁘게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분주하게 벌레를 찾던 오색딱따구리, 하늘을 가르며 높은 음을 내던 청딱따구리, 참새만한 작은 체구로 종종거리며 나무를 타던 회색 줄무늬 쇠딱따구리, 이놈들도 점차 행방이 묘연해진다.

  왜 자꾸 사라지기만 하는 걸까? 가슴이 먹먹하다. 부디 내 시야에서만 사라졌기를 바란다. 내가 과문하여 이름을 알 수 없었고,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뭇 생명들과 더불어 이 산을 버리지 않고, 깊은 곳 어딘가에 저들만의 천국을 찾아,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바람이 만화 같은 상상이 아니길…….

  저녁 무렵 방학능선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벙어리뻐꾸기가 둥둥둥 맑은 북소리를 내다가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렸다. 어제도 무수골 계곡을 걸을 때, 머리 위에서 둥둥 북소리를 내던 그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봉산을 오래 다녔지만, 벙어리뻐꾸기를 날개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에서, 그것도 연이틀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멀리서 아련한 메아리처럼 들리곤 하던 벙어리뻐꾸기의 맑은 북소리였었다. 그나마 작년과 재작년에는 아예 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녀석과 두 번이나, 그것도 지척에서 조우하였으니 여간 진귀한 인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벙어리뻐꾸기가 날아간 먼 산을 보고 또 보면서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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