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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8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05.02 10:52
  • 수정 2019.09.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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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거울』 중 제3곡 ‘바다 위의 작은 배’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老人(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김종삼 ‘어부’ 전문
 

▲프랑스 근대 피아노 음악에서 독특한 해석과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 ⓒ박시우
▲프랑스 근대 피아노 음악에서 독특한 해석과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 ⓒ박시우

김종삼이 1975년 9월 『시문학』에 발표한 시입니다. 날마다 출렁거리거나 때로는 풍랑에 거꾸로 뒤집히기도 하는 작은 배는 시인의 삶입니다. 세파를 헤치고 멀리 노를 저어 나가려고 하는 어부는 시인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1연에 나오는 ‘바다와 노인’은 헤밍웨이 같은 결연한 의지보다는 소박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노인’보다 앞에 ‘바다’를 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종삼의 어부는 먼 바다에 나가더라도 큰소리 보다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2연에서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중얼거립니다. 그 중얼거림은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했지만 쓸쓸한 역설처럼 들립니다.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정집.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정집.

이 시를 읽으면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모음곡 『거울』 중 제3곡 ‘바다 위의 작은 배’가 떠오릅니다. 끊임없이 넘실대는 물결과 바다 위에 떠있는 조각배를 묘사한 라벨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악보를 보면 왼손 반주는 넘실대는 바다의 물결을 표현한 32분 음표들이 넓은 음역에 걸쳐 지속되고, 오른손 연주는 작은 배를 뜻합니다. 역동적인 리듬과 독특한 화성이 빚어내는 시각적인 효과는 마치 붓을 콕콕 찍어서 그리는 점묘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 5곡으로 이루어진 『거울』은 당대 프랑스의 예술가 모임 ‘아파슈’ 회원들에게 헌정됩니다. 라벨은 제3곡 ‘바다 위의 작은 배’를 화가 폴 소르드에게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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