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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6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04.16 12:18
  • 수정 2019.09.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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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의 연작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죄 많은 아비는 따 우에 / 남아야 하느니라’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아비의 염원으로도 다가와

▲ 1967년 메조소프라노 자넷 베이커와 존 바비롤리 경의 지휘와 할레오케스트라 연주. ⓒ박시우
▲ 1967년 메조소프라노 자넷 베이커와 존 바비롤리 경의 지휘와 할레오케스트라 연주. ⓒ박시우

 

日月(일월)은 가느니라

아비는 石工(석공)노릇을 하느니라

낮이면 大地(대지)에 피어난

만발한 뭉게구름도 우리로다
 

가깝고도 머언

검푸른

산줄기도 사철도 우리로다

만물이 소생하는 철도 우리로다

이 하루를 보내는 아비의 술잔도 늬 엄마가 다루는 그릇 소리도 우리로다
 

밤이면 大海(대해)를 가는 물거품도

흘러가는 化石(화석)도 우리로다
 

불현듯 돌 쪼는 소리가 나느니라 아비의 귓전을 스치는 찬바람이 솟아나느니라

늬 棺(관) 속에 넣었던 악기로다

넣어 주었던 늬 피리로다

잔잔한 온 누리

늬 어린 모습이로다 아비가 애통하는 늬 신비로다 아비로다

늬 소릴 찾으려 하면 검은 구름이 뇌성이 비 바람이 일었느니라 아비가 가졌던 기인 칼로 하늘을 수없이 쳐서 갈랐느니라

그것들도 나중에 기진해지느니라

아비의 노망기가 가시어지느니라

돌 쪼는 소리가

간혹 나느니라
 

맑은 아침이로다

맑은 하늘은 내려앉고

늬가 즐겨 노닐던 뜰 위에

어린 草木(초목)들 사이에

神器(신기)와 같이 반짝이는

늬 피리 위에

나비가

나래를 폈느니라
 

하늘에선

자라나면 죄 짓는다고

자라나기 전에 데려간다 하느니라

죄 많은 아비는 따 우에

남아야 하느니라

방울 달린 은피리 둘을

만들었느니라

정성들였느니라

하나는

늬 棺(관) 속에

하나는 간직하였느니라

아비가 살아가는 동안

만지작거리느니라.

-김종삼 ‘음악(音樂)’-마라의 『죽은 아이를 追慕(추모)하는 노래』에 부쳐서 전문

▲ 1949년 알토 캐슬린 페리어와 브루노 발터 지휘와 빈 필의 연주. ⓒ박시우
▲ 1949년 알토 캐슬린 페리어와 브루노 발터 지휘와 빈 필의 연주. ⓒ박시우

'음악'은 김종삼의 '비극적 세계관'이 잘 나타난 시입니다. 김종삼의 시 가운데 보기 드문 장시에 속하는 '음악'은 자식을 먼저 보낸 비통한 아비의 심정을 토해냅니다. 평소 시에 직설적인 감정이입을 잘 하지 않는 김종삼은 마치 구스타프 말러에 빙의된 듯 슬픈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합니다.

김종삼은 이 시에 말러의 작품명은 물론 생몰연도와 출신 국가까지 표기한 부제를 달아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만, 또 다른 배경에는 ‘민간인’ ‘아우슈비츠 라게르’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는 전쟁의 참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 전 2014년 4월 16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비통과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의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아비의 염원으로도 다가옵니다. 이 시는 『문학춘추』 1964년 12월호에 발표되었다가 이후 시집과 시선집 재수록 과정을 거치면서 개작되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에서 5편을 골라 1901년과 1904년에 연작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관현악 반주에 맞춰 음역이 낮은 바리톤이나 알토 또는 메조소프라노 등이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말러는 이 곡을 작곡한 지 3년 후인 1907년 딸 마리아를 잃고 이 노래에 담긴 슬픔을 몸소 겪게 됩니다.

▲ 1955년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루돌프 켐페 지휘와 베를린 필의 연주. ⓒ박시우
▲ 1955년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루돌프 켐페 지휘와 베를린 필의 연주. ⓒ박시우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는 제1곡 ‘이제 빛나는 해가 떠오른다’ 제2곡 ‘왜 그렇게 어두운 눈망울로’ 제3곡 ‘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제4곡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 제5곡 ‘이런 비바람 속에’ 등 5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곡의 가사는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절절히 담고 있습니다. 격정에 차올랐다가 자장가 풍으로 조용히 끝나는 이 음악은 슬픔과 동시에 위안을 안겨줍니다. 캐슬린 페리어(알토), 자넷 베이커(메조소프라노)의 노래는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있고,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유럽 음악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현실인식을 갖고 있었던 음악가로 김종삼의 시세계와 맥락이 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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