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이나 다름없는 그 멋진 놈이 내일 또 열 시에 브라운관으로 찾아뵙겠다니 일단 기다리면 될 터였다. 보기만 해도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 그 젊은 년과 무슨 사랑 놀음을 그토록 진지하게 하는지, 뭘 그렇게 밀고 당기는지, 인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순진한 아이였다. 이 누나가 인생을 좀 아는데, 내게 오면 넌 신경 쓸게 하나도 없어. 누나가 다 알아서 하지. 넌 그저 내 옆에서 걷고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차의 옆자리에 앉아 차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되는 거야. 음악이야 내가 오죽 잘 골라놓았겠어? 오페라 아리아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의 기쁨을 너와 내가 듣는 거지. ‘엔드리스 러브’도 듣고 ‘그대는 왜 내게’라는 우리나라 발라드도 듣는 거지. 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운전할 땐 써야 해. 눈이 부시잖아.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할까? 아, 나야 블랙이지. 설탕이라니, 어느 나라 얘기하는 거야? 그동안 시중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거야? 김 여사니 이 여사니 하는 무식한 것들? 기획 부동산 사무실에서 자판기 커피 처먹는 것들과는 만나지 말아줄래? 자긴 푸른 양복이 어울리더라. 약간 진한 거. 색이 너무 밝으면 남자가 날아다니는 것 같잖아? 이리 와, 저기 저 산 위의 붉은 노을 좀 봐. 왜 저게 저기 있는 거야? 타들어가는 저 노을이 왜 이 순간 우리 앞에 있는 거지?
천휘순 여사는 더 생각하다간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주스를 한 잔 더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현빈이나 다름없는 그 아이에 대해 검색을 좀 하고 애인이 없다는 발언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 배삼지 국장은 소식이 없다. 현관 전자키를 또박또박 소심하게 누르는 남자, 볼록 배와 상한 과일 같은 표정, 얘들은? 하며 뒤뚱뒤뚱 걸어가는 뒷모습. 아 그 인간이 오기 전에 자버려야 하리. 천 여사는 하품을 하며 침실로 들어갔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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