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자신의 차 BMW에 모델 고대해를 태우고 한강 다리를 건너가며 과거를 회상하는 유명한 장면을 지난주에 소개한 바 있다. 1999년 12월 어느 날 이 한강 다리를 비를 맞으며 홀로 걸었다는, 비에 젖은 추억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 고대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리를 건너가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고 영화 속에 나오고 두 시의 데이트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에도 나온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의 첫 장면은 워낙 유명하지 않은가. 세느 강 다리 위에 한 남자가 서 있
처음 만난 남녀가 저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휘영청 달이 떠 있는 거리를 나란히 걸어 내려오고 있다. 이때 ‘집까지 바라다 드리겠다’고 남자가 말하는 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남자가 직접 차를 몰아 여자를 바라다 주지 대리를 불러 뒷좌석에 나란히 타고 가는 광경은 좀체 없다. 누군가 시민의식이 투철한 스텝이 ‘둘 다 술을 마셨는데 남자가 운전을 하고 가면 어떡합니까?’ 하고 물으면 감독은 ‘그럼 대리 부르랴?’ 하고 ‘남자가 와인을 쭉 들이켜는 장면, 그거 빼버려. 입만
와인 바 월광 소나타에서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와 모델 고대해는 밤 8시 반 무렵에 쓴 맛 나는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서로 마주보다가 가끔은 고개를 돌려 자그마한 무대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노래를 읊고 있는 여가수에게도 눈길을 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정식 집에서 코스 음식을 먹은 남녀가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에서, 빚 독촉이나 빨리 오지 못하겠냐는 성가신 전화도 없는 고요한 시간의 와중에, 이러한 부드럽고 몽환 적인 색채가 배어 있는 시간의 물결 위에 떠 있으니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하지 않을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예술가의 시대적 책무에 대해 고뇌할 때 우리의 고대해양은 수삼 한 뿌리를 먹으며 그 깊은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그의 고뇌에 대한 동의로 참을 수 없는 동지의식으로 해석하였다. 예술가는 그의 고귀한 작업에 대해 알아주는 단 한사람이라도 있을 때 나락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궁핍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의 한 줄기 빛을 발견하는 법이었다. 남자는 고대해에게서 그러한 구원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침묵에서 위로를 받았다. “예술은 먼 길을 가는 낙타의 고행에 흔히 비견됩니다. 물 한 방
“제목이 좀 그렇네요.” 고대해가 입을 열어 한 말은 영화에 출연하겠다. 안 하겠다가 아니라 제목에 딴지를 거는 거였다. 동영상 감독은 고대해가 가타부타 다른 말없이 제목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영화 출연에 대한 관심은 있다, 그러나 제목은 바꾸는 게 어떻겠나. 이런 뜻이 아니겠나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사실 제목은 매우 중요한데 개봉 시까지는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개봉보단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기 전 결정을 해야 하고, 그 제목으로 한 번 홍보가 나가면 그 제목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저는 고대해님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감독의 전격 선언에 대해 고대해는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뭘 함께해요?” 하고 실소를 하고 말았다. 참으려 했으나 참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근데 그럴 만했다. 함께 하기로 했다는 등 감독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저는 지금 첨 듣는 얘기인데요?” 고대해가 말하자 감독은 “그래서 지금 제가 제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저의 차기작에 출연해 주십사 하고요.” “그 누가 이 여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에 말씀이시죠?” “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제목이지요. 바로 그 영화
“시리즈물인가요?” 하고 모델 고대해가 질문을 던지자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는 순간 당황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기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이는 질문자인 고대해가 이 세계의 용어에 대해 약간의 무지를 드러낸 것으로, 시리즈물이란 적어도 수십편의 연속물로 일관된 주제나 형식을 갖춘 것인데, 미드에서 흔히 보는 ‘미드’엔 섹스‘ 원 뭐 그런 걸 말하는 거였다. 그런데 고대해가 말하는 건 속편을 뜻하는 거 같았다. 뽕 1 뽕 2 다이하드 1 다이하드 2 같은 거 말이다, 물론 베트맨 시리즈처럼 드라마 시리즈물 못지않게 일관된 느낌
이슬비 벤치 윤 한 로꽃이 있던 자리에꽃은 없고향기만 남았네아뿔싸그 향기 너무 강해그만 코를 움켜쥐었네이슬비 내리는 벤치 위형님 한 분잠시 화장실을 다니러 간 듯소주 한 모금불가사리 귤껍질 마음 쓰려은총 주소서, 묵주 일단을 바치네시작 메모형님은 빈센트 반 고호의 얼굴을 하고, 형님은 빈센트 반 고호의 모자를 쓰고, 형님은 빈센트 반 고호의 외로움을 풍기고, 형님은 언제 어디서나 외로움을 뽐내고. 형님을 시인이라고 생각하니 시인답고, 형님을 신부님이라고 생각하니 신부님답고, 형님을 꽃이라고 생각하니 꽃답구나. 보아라, 들판의 들꽃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로맨스와 리얼리즘이라는 두 화두를 들고 나왔을 때 고대해는 바로 냄새를 맡았으니, 로맨스 - 남녀, 리얼리티-현장 이런 단어를 저절로 연결지었다. 이 동영상 제작자가 하는 작업은, 남녀가 등장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되 그것을 화면으로 시시각각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라고 보면 될 것이었다. 물론 로맨스의 종류와 그 범주 및 구체성의 강도 등에 따라 같은 로맨스물 내에서도 편차가 있을 수 있었다. 고대해는 질문을 하나 하였다. "로맨스라면 여고생 취향의 그런 건가요?" "아, 아닙니다. 성인남녀
조용한 데로 모시겠다는 40대 사내의 발언에 차나 마저 마시라고 대꾸한 고대해의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것이었다. 담담하기가 마치 물과 같아 `가장 좋은 것은 물`이라는 노자의 `상선약수`가 떠오르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우린 사내들이 흔히 `술이나 마저 마셔` `입 닥치고 영화나 봐` `그만 옷이나 벗어` 같이 말하는 데서, 모든 걸 내려놓고 하던 짓이나 마저 하자는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사내는 고대해가 담담하게 나오자 입맛을 다시면서도 일단 한 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야 어차피 마시게 되어 있는 거, `조용한 데로
40대의, 선글라스를 윗주머니에 꽂은, 동영상 전문 촬영작가가 피사체 고대해와 커피숍에 서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놓고 서로를 알아가려 할 때, 그 때가 석양의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 흔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일컫는 그러한 때였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대해가 반은 그늘이 진 얼굴로 담배 한 대를 빼 물었을 때 40대 사내는 매우 정중하게 불을 붙여 드렸다. 서양 영화에서는 매우 오랫동안 써먹었던 흔한 장면이나 대한민국에서는 여자상사를 둔 딸랑이의 짓이거나 술집에서 기분 삼아 아가씨에게 한 번 서비스 해 주는 거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40대의 선글라스를 윗주머니에 꽂은 사내가 `동영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고 고대해에게 말했을 때 고대해는 동영상이 영화, 드라마, 광고 그런 걸 의미한다는 걸 캐치하고 있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담담하게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모델로서 모 남성잡지의 화보 12면을 책임지고 있는 주요 모델이자 저명 사진작가의 피사체로서 품위를 깨지 않고 할 수 있는 대응이었다. 사내는 고대해가 호들갑을 떨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쩔쩔매지도 않고 부처의 제자처럼 담담하게 나오자 담대한 여인이라는,
고대해가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소위 여체의 신비를 주제로 작품사진을 찍고 있을 때, 늦게 나타나 사죄라도 하듯 땀을 뻘뻘 흘리며 사진작가가 고대해 피사체를 두고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 가는 곳마다 조용히 이동하며 주시하는 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는 40대 초반 사내였다. 선글라스를 벗어 윗주머니에 꽂은 그는 팔짱을 끼었다 풀었다 하면서 고대해를 예의주시 하였는데 그의 냉철하고 사려깊은 시선에는 고대해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이 아닌 뭔가 확신에 가까운 어떤 암시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이 여인에게서 지금까지의 많은 여성들에게서
불같은 사랑을 한 여인을 알고 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으며 대기업 임원의 아내였다. 40대 초반의 그녀는 남편의 이른 출세에 동창생들보다 일찌감치 앞서가는 삶을 살았다. 강남 33평 자가 아파트에 억대의 주식펀드, 그리고 남편 명의의 골프 회원권과 남편과 그녀 이름으론 된 두 대의 자동차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년에 한번은 남편을 따라 해외여행을 갔고 전무 사모님을 회장으로 둔 임원 부인들 소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남편이 거래처로부터 받아온 오페라 초대권으로 문화적인 욕구를 간간이 충족시키며 이론적인 배경을 강화하기 위
여자들이, 외도가 파멸로 이어지는 줄 알면서 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언급한 바 있다. 드라마를 보라. 거기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식구 뒷바라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된다 하더라도 오늘날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여성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켜 줄 수 있는지. 그게 그렇다. 드라마에서 각종 일탈을 일삼고 온갖 패악을 부리며기어이 욕구를 충족시키고 마는 여자들을 보며 욕을 하면서도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거. 그런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허구헌날 그런 여자들만 들여다볼 순 없잖은가? `나도 한 번 좋아야지` 이렇게
도도녀의 경우 우리는 흔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보단 감각적인 삶, 그리고 물질로 처바르는 삶, 단가가 비싼 사치용품의 빈번한 구입과 호화로운 장소 출입, 최신 유행에 대한 민감성, 거기에 남자의 진정성을 비웃는 깨지는 듯한 웃음을 언뜻 떠올릴 수 있겠다. 그리고 약간만 자극이 덜 하거나 일상적인 것들의 나열이 따른다면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비트는 걸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생각하게도 된다. 이러한 도도녀는 자신의 값어치를 상당히 높게 매김으로써 먹는 거나 입는 거 드나드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만나는 남자의
이렇게 해서 도도녀와 슈트 입은 사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볼 때-이렇게 해서란 백화점 꼭대기층 화랑에서의 우연을 가장한 접근을 말한다-두 남녀는 다음 단계로 어떠한 행위를 하여야 하는가? 그림이 어떻다는 등,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 그런 차원 높은 얘기도 주고받았고, 상당한 예의를 갖춰 서로를 높이는 말도 주고받았고, 서로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조심스러운 확인도 거쳤고, 더 튕겨봐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고, 하니 두 남녀는 정해진 절차에 의해 일을 진행하면 큰 무리가 없다 하겠다. 정해진 절차라 함은 영화관에 가면 표를 사고 기다렸
도도녀를 헌팅하기 좋은 또 하나의 장소는 화랑처럼 문화적인 냄새를 피우는 곳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녀의 우연한 만남이 화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하겠다. 화랑은 일단 공인된 곳이며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서면 뭔가 공유의 느낌이 밀려온다. 그것은 벽에 내걸린 한 점의 그림에 대한 공통된 해석이나 공감이라기보다 화랑 전체를 싸고 도는 문화적인 것에 대한 서로의 취향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다. 취향은 다르더라도 각자가 문화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
‘도도녀’를 공략하는 법에 대해서 일장 강의를 하며, 첫째 ‘적당한 관심을 보여라’라고 지난주에 꼭 집어 언급한 바 있다. 짐승도 관심을 보이면 알아듣고 그 자에게 호감을 보이듯, 말도 친밀감을 드러내면 ‘너, 괜찮은 인간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듯 하물며 인간 그 중에서도 여자의 경우는 자신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 세상, 또는 조직, 또는 남녀노소, 또는 어떤 남자를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세상이 그토록 무지하고 또 몰염치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자는 이러한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는데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