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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극장 수위 홍범도 인사동에 오다` - 전시 취재

문정기
  • 입력 2023.12.25 14:30
  • 수정 2023.12.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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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

12/20(수) 부터 12/25(일)까지 인사동 소재 구구갤러리에서는 홍범도기념사업회와 대한고려인협회 주최/주관으로 <고려극장 수위, 인사동에 오다!> 라는 주제로 `한민족디아스포라의 위대한 유산` 전시가 있었다.

본 기자는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의 위업을 중심으로 취재에 임했다.

고려극장은?

고려극장은 1932년 러시아 연해주에 설립되어 1937년 강제이주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전되어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인 공연, 예술, 연극, 음악, 무용 단체 및 극장이다. 한반도와 전 세계를 통틀어 존재하는 한민족 공동체의 공연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이다.

소련 체제 하에서 공식적으로 설립된 극동지역 고려극장은 강제이주라는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여 2022년 극장 설립 90주년을 맞이하였다. 현재는 고려인 5세가 고려극장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외 한국 한민족 공동체의 공연단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려극장은 소련 시기에 고려인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역할을 해왔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카자흐스탄의 독특한 다민족 사회 속에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한민족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있으며, 모국과의 문화적인 교류를 통한 한민족 공동체로서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극장, 카지흐스탄 정부로 부터 명예 훈장을 받아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 `국립 음악희곡 고려극장`이다.
현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극장, 카지흐스탄 정부로 부터 명예 훈장을 받아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 `국립 음악희곡 고려극장`이다.

 

고려극장의 이동경로 , 이 고려극장은 블라디보스톡-크졸오르디-우슈토페- 크졸오르디-알마티로 이전하였다.  세계한민족공연단체중 가장 역사가 깊다. 
고려극장의 이동경로 , 이 고려극장은 블라디보스톡-크졸오르디-우슈토페- 크졸오르디-알마티로 이전하였다.  세계한민족공연단체중 가장 역사가 깊다. 

 

이 책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있다. 고려인 배우를 소개하고 그들의 출연작품을 같이 실었다.
이 책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있다. 고려인 배우를 소개하고 그들의 출연작품을 같이 실었다.

고려극장의 연혁

-1932년 9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인 구락부, 소인 예술단들을 기초로 창설,

-1937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한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동, 소련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다룬 작품을 공연.

-1942년 1월 13일 세계 2차 대전으로 국가의 정상적인 지원이 불가능해져 경제적 이유로 동포들이 밀집 거주하면서 벼를 재배하고 있던 우슈토베로 이전,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거주 이전 제한이 풀려 이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이 시기부터 젊은 예술가 충원 문제가 대두되어 1955년에는 타슈켄트 극장 미술대학 배우과에 한국어반이 열리면서 고려인 극장을 위한 배우양성을 시작,

-1999년 5월 30일 원래 극장이었던 크즐오르다로 이전되어 크즐오르다주 주립 고려극장이 됨.

-1960년 12명의 젊은 배우들 입단, 60년대 초반 동서 화해 무드에 고려인의 생활이 반영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

-1968년 고려극장이 카자흐공화국 수도인 알마티로 옮기면서 명칭이 카자흐공화국 국립음악 희곡 고려극장이 됨(주립극장에서 국립극장으로 승격).

-1970년대 국립극장으로 격상된 이후 소련 저녁 순회 공연에 나섬,

-1982년 극장 창설 50주년 처음으로 모스크바 순회공연,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선전 기능 사라짐, 한국 국립극장과 자매 결연, 한국 MBC 역사 드라마 `까레이스키`에서 고려극장 배우들 출연,

-1990년대 중반 알마티 한국교육원의 500석 규모 강당을 기반으로 하여 공연 활동 지속,

-1997년 강제 이주 60주년 기념으로 강제 이주의 기억이 반영된 연극 `추억` 공연. 한국 표준어로 `홍도야 울지 마라` 공연,

-1999년 고려극장이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산하로 재편,

-2002년 극장 설립 70주년을 맞이하여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전용 상설 공연장 수여. 개장식에 나제르 바에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참석,

-2006년 독립 이후 펼쳐온 적극적인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명예 훈장 수여와 함께 공식 명칭이 명예 훈장 수여 카자흐스탄 `국립 음악희곡 고려극장`으로 변경

유준 작가가 그린 홍범도 장군 
유준 작가가 그린 홍범도 장군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은 고아로 태어나 머슴으로 군대 나팔수와 식객승, 포수를 전전했던 평민 출신 의병장이자 의병장 출신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었다. 나라의 도움을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끝까지 싸웠다.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두 아들은 일제와의 전쟁에서 모두 목숨을 잃으며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일본 정규 부대와 맞서 독립전쟁 첫 대승리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독립전쟁사 최고의 전과를 이루어냈다. 장군은 일본군조차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부르며 경외했을 정도로 용맹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인자함과 겸손함으로 독립군의 화합을 이끌었다.

그는 1868에 태어나 1943에 서거하였다. 1868년 8월 27일 평양 출신으로 본관은 남양홍씨이다. 1883년 15세 평양 친위대 모병에 지원하여 나팔수로 병영 생활, 이후 독립군으로서 국내와 러시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때 위에 언급한 부인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의 가장 큰 위업은 1920년 6월 7일 최진동, 안무 장군의 부대 등이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의 사령부장으로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여 독립전쟁 사상 일본 정규군에게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때 일본군 120여 명 전사 등 500여 명 사상이 있었다.

곧 이어 같은 해 1920년 10월 21일에서 10월 26일 김좌진 장군 부대 등 여러 독립군 부대로 구성된 독립군단 병력 1천200여 명으로 일본군 2만 5천 명과 6일간 10차례의 전투로 대승을 거두었고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 전사 1,254명 부상 200명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고려극장 취업 통지서(사본)
홍범도 장군의 고려극장 취업 통지서(사본)
위 우리말 번역본, 근거가 재미있다. 그리고 확실하다. 본인이 낸 구직신청서에 의해 취업시킨다는..
위 우리말 번역본, 근거가 재미있다. 그리고 확실하다. 본인이 낸 구직신청서에 의해 취업시킨다는..

1937년 67세 스탈린의 만행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고 1939년 71세 나이에 크즐오르다 고려극장 수위로 근무하였다. 이를 인연으로 당시 고려극장 총연출가인 태창춘 극작가가 홍범도 장군의 삶과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1943년에 `홍범도` 연극이 공연되었다.

1943년 10월 25일 나이 75세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순국하였다.

이하 홍범도 장군을 주제로한 공연은

순국 79년 주기인 2013년에는 한국의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종찬의 제안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시간을 나는 홍범도 장군` 연극 공연을 했다.

2018년에는 홍범도 장군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초청으로 한국에서 `나르는 홍범도 장군` 연극 공연을 했다.

2019 카자흐스탄에서 공연한 연극  `의병대장 홍범도 장군` 녹화화면.
2019 카자흐스탄에서 공연한 연극  `의병대장 홍범도 장군` 녹화화면.

2019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협조하에 `의병대장 홍범도 장군` 연극을 공연했다.

2023년 8월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안 2주기를 기념하여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서울과 대전에서 `40일간의 기적, 홍범도 장군의 기억 속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자료 출처; 전시자료, 한민족 문화백과 사전,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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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후기;

고려극장의 역사가 고려인의 역사이고 홍범도 장군의 역사이기도하다. 고려극장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홍범도가 어땠을까, 고려인들이 없었더라면 고려극장이 있었을까. 홍범도 같은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있었을까, 2024 내년이면 고려인 러시아 이주 160주년이 된다. 역사는 서사와 유적으로 말한다. 고려인을 포함한 세계한민족은 이제 750만에 달한다. 남한 북한 이어 제3의 우리 민족이다. 제3의 우리나라이다. 그들의 환경, 법적지위.. 이젠 밖의 우리를 돌아볼 때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우리와는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어제 오늘 눈이 많이오고 춥다. 1937년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들판은 몹시도 추웠었다.

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

jgmoon11@naver.com

(사)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과학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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