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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 ‘퉤퉤’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11.12 08:39
  • 수정 2023.11.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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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7부 퉤퉤

 

코로나여

빨리

가라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시대 올지니

 

퉤퉤 1

 

작은 것들

큰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약한 것들

강한 것보다

훨씬 더 기쁜,

슬픈 것들

기쁜 것보다

훨씬 더, 잘난

못난 것들

잘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없는 것들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빼어난,

못 쓴 것들

잘 쓴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런 시대 올지니

그런 시대 올지니

 

퉤퉤 2

 

땟국 좔좔 흐르는 것들이

거들먹거리는,

챙피하고 쪽팔린 주제들이

교만방자한,

지질한 게 시들시들한 게

야들야들한 것들한테

갖은 미움 질시 받는,

우둘투둘한 게 꺼끌꺼끌한 게

매끈매끈한 것보다 쩸맛없는,

존만 한 것들

시시껄렁한 것들도

외투깃 속 목 파묻고

고독 한 번 씹어 보는,

케케묵은 게 틉틉한 게 퉁명스런 게

현란 가식 매너리즘 잇빨 덩어리보다

눈꼴 시어 빠져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끔찍한,

내용이 참여가 실천이 삶이

순수니 기교니 기술이니 형식이니

비유니 상징이니 나발이니보다

영혼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애오라지, 우둔 우직 둔탁 미련 촌스러움이

지식 지혜 슬기 명석 통찰 교양 우아 고상

약삭빠름 약아빠짐보다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저질 저급 저열한

 

그런 시대 올지니

그런 시대 올지니

 

퉤퉤 3

 

그런데 진리와 진실이

(단순 소박은커녕)

왜 늦은 밤 산사 토방 같은 데다 사람들 뫄 놓곤

잘난 체 이빨 까는 게 싫여,

또 그 앞에 빙 둘러앉아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마냥 헬렐레하는 것조차도 너무 싫여,

마침내 안 되겠다 이쯤 찌그러져얐다

퉤, 오줌발이나 세우자, 자리를 뜬다오

별이 반짝이는 하늘 그러나 밖은 너무 춥다

바람과 구름 별과 나중에는 기껏 오동나무나 담벼락

이런 것들과 얘기를 할 수밖에

무얼 빨러 나 여기 쫓아왔나

거기 침을 뱉거나 발로 차거나 긁거나 할 수밖에

퉤, 진실은 제발

재미없기를 감동적이지 않기를

사뭇 심각 진지하지 않기를

시골구석에서 올라온 듯

더듬더듬 말 잘 못해 어눌하기를

이따금 깔깔거리는 저들 아유!

진실은 거지 라자로처럼

이 세상에서는 갖은 좋은 것 갖지 않기를

제발 부자이지 않기를 배 기름지지 않기를

추운 데서 홀로 오들오들 떨기를

이 세상에서만큼은 제발

부자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채우기를

개들까지 와서 종기를 핥기를

진실은 꽁지머리에 백구두에, 퉤퉤,

사람들 뫄 놓고 잘난 체 이빨까지 않기를

 

그런 시대 올지니

그런 시대 올지니

 

퉤퉤 4

 

마음이 깊고

어둡고 절실하니

오히려 시는 개 같고

길고

차라리 마음 개 같으나

그 시 깊고 어둡고

짧은

 

그런 시대 올지니

그런 시대 올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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