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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왕은 온조 (삼국사기 주된 견해), 혹은 비류 (삼국사기 보충 견해), 혹은 [구대仇台] (차이나 역사책) 이다. [교과서]를 소설로 만든 국사편찬위원회. (4) 거대한 음모(25)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99)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9.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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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왕은 온조 (삼국사기 주된 견해), 혹은 비류 (삼국사기 보충 견해), 혹은 [구대仇台] (차이나 역사책) 이다. [교과서]를 소설로 만든 국사편찬위원회. (4) 거대한 음모(25)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99)

 

1.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은

 

① 주된 의견으로 백제의 첫 왕(시조)는 [온조]이고

 

② 보충의견으로 백제의 첫 왕(시조)는 [비류]이며, [비류]의 아버지는 북부여 해부루의 서손 [우대優台]라고 하고,

 

③ 연이어 “ 차이나 역사책 [북서]와 [수서]에는 [구대仇台] 가 백제의 첫 왕(시조)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고 기록했다.

 

2.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고구려의 벼슬의 종류 여러 개중 상가相加·고추가古雛加·우대優台 등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 고구려전]의 벼슬이름 [우대優台]는 백제의 시조 [비류]의 아버지가 누린 벼슬 [우대優台]와 같은 것인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비류]의 아버지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벼슬이름만 기록한 것이다.

 

3. 차이나 역사책 [북사]와 [수서]에 나오는 백제의 시조 [구대仇台] 는 “ 여러 [대台] 중 최고 우두머리인 [구仇]” 라고 본다. [대台] 는 어른이라는 뜻과 연장자를 호칭할 때 쓰는 글자이다.

 

[우대優台] 역시 제일 우 (위 上상)의 [대台]로 [구대仇台]와 같은 명칭이라고 본다. 優 는 발음도 ‘우=위’이지만 ‘우수하다. 최고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대優台] = [구대仇台]로서 벼슬이름이다.

 

비류의 아버지가 [우대優台]라는 기록은 “마가, 우가, 저(돼지)가, 구(개)가 등 부여의 여러 부족 중 어느 [가加=부족] 의 우두머리였다.”는 기록이며 현대의 의미로서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가加 는 干(간), 汗(한=칸)과 같이 유목민족의 우두머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삼국지 고구려전의 벼슬이름 상가相加·고추가古雛加에서 가加의 쓰임과 같다.

 

4. [삼국지]는 “ 부여는 모두 육축六畜(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할을 정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가축이 6종류인데 [말·소·돼지·개 즉 마(말)가, 우(소)가, 저(돼지)가, 구(개)가] 4종류만 들어 있다. 2종류의 가축이 없다.

 

고추가古雛加의 추雛가 큰 새 혹은 닭을 말함으로 양相 만 어느 가축이면 6종류 가축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안타깝게도 양가相加의 양相은 어느 가축을 뜻한다는 설명이 없다. 네이버 백과사전 설명은 “ 相 서로 상, 빌 양.” 두 가지로 읽는다.

 

말·소·돼지·개·닭(큰 새) 5종류 외에 빠진 가축은 ‘양’이다.

 

흥미로운 것은 相을 ‘양’으로도 읽는다는 것이다. 뜻은 ‘빌다, 푸닥거리하다.’ 인데 제사를 지내는 것이 ‘빌다, 푸닥거리하다’이다. 제사에서 제물로 제일 많이 쓴 것은 양이다. 오죽하면 [犧牲羊희생양]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까.

 

[부여= 고구려] 임으로 6가축= 6가加 는 말·소·돼지·개·닭·양 이다.

 

5. 더욱 흥미로운 것은 추雛 는 큰 새 혹은 닭을 의미하는데, 鄒牟王(추모왕= 주몽. 고구려의 시조)의 추鄒 와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북방민족은 ‘새’ 토템이 많고, 고구려는 대표적으로 새를 토템으로 한 국가이다.

 

雛 = 芻 (추. 가축이 먹는 풀, 꼴) + 隹 (새 추) 이고

鄒 = 芻 (추. 가축이 먹는 풀, 꼴) + ⻏ (우부 방. 땅) 이다.

 

차이나 역사가들은 동이족의 역사를 숨기면서 나중에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조금씩 남겨 둔 셈이다!

 

6. 백제의 첫 왕은 온조 (삼국사기 주된 견해), 혹은 비류 (삼국사기 보충 견해), 혹은 [구대仇台] (차이나 역사책) 이다.

 

[구대仇台] 혹은 [우대優台] 는 벼슬 이름이지만 백제본기나 삼국지·북사·수서에서는 ‘우두머리’의 뜻을 가진 특정인을 말한다. [온조] 역시 어느 부족 혹은 세력을 이끄는 특정인의 이름 혹은 그 부족명일 수 있고 [비류] 역시 그러하다.

 

백제 첫 왕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같은 형제였든, 친족이었든, 완전히 다른 부족이었든 [비류]와 [온조]는 경쟁을 했고, [온조]가 승리한 것이다. (계속)

 

부록 1 부여왕 [울(위)구대 尉仇台]

1. [삼국지 부여전]에서 공손도(탁)은 대략 200년 전후인 후한 말에 공손도(탁) 본인의 딸인지 분명하지 않은 종녀 (가문의 제일 맏 딸)을 부여왕 [울(위)구대 尉仇台] 에게 시집보냈다.

 

2. 울(위)구대 尉仇台 는 尉 + 仇台 인지 아니면 세글자 합쳐서 이름인지, 尉를 ‘울’로 읽을지 ‘위’로 읽을지에 대하여 코리아 사학계에서는 특별히 연구된 바 없다.

 

3. 코리아 역사책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차이나 역사책 북사, 수서를 종합하면 尉 + 仇台 이고, 한서지리지에 진류군 陳留郡 울씨현 [(전략)長羅,尉氏,傿(후략)]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尉는 ‘울’로 읽는다. 이 해석은 [부여왕]의 성씨는 ‘해’인데 성씨가 ‘울’이 나올 수 있느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준비하고 있다.

 

부록 2 [삼국지 고구려전]

그 나라에는 王이 있고, 벼슬로는 相加·對盧·沛者·古雛加·主簿·優台·丞·使者·皁衣·先人이 있으며,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其國有王, 其官有 相加·對盧·沛者·古雛加·主簿·優台·丞·使者·皁衣·先人 尊卑各有等級.

 

부록 3 [삼국지 부여전]

1) 나라에는 君王이 있고, 모두 육축六畜(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官名을 정한부족장 가加로 馬加·牛加·豬加·狗加註 037·와 (중앙행정관료에 해당하는)大使로는 大使者와 使者註 038가 있다. (중략)

國有君王, 皆 以六畜 名 官, 有 馬加·牛加·豬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

 

2) 부여夫餘는 본래 현도玄菟에 속하였다. 한漢나라 말년에 공손도(탁)公孫度 웅(雄= 영웅, 환웅의 웅)이 해동海東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외이外夷들을 위력威力으로 복속시키자, 부여왕 울구대尉仇台는 [소속을] 바꾸어 요동遼東에 복속하였다. 이 때에 구려句麗(=고구려)와 선비鮮卑가 강성해지자, [공손公孫]도(탁)度은 부여가 두 오랑캐의 틈에 끼여 있는 것을 기화로 [(선비- 부여- 고구려의 위치이다 ,부여와 동맹同盟을 맺으려고] 一族의 딸가문의 맏딸=종녀 宗女 를 [부여 왕王에게] 시집보내었다.

 

夫餘本屬玄菟. 漢末, 公孫度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 尉仇台更屬遼東. 時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註 049

 

尉仇台死, 簡位居立. 無適子, 有蘖子麻余. 位居死, 諸加 共立 麻余. 牛加 兄 子名 位居, 爲 大使, 輕財善施, 國人附之, 歲歲 遣使 詣京都 貢獻.

 

울구대가 죽고 간위거簡位居가 들어섰다. 적자가 없었고 서자 ‘마여’가 있었다. ‘위거’가 죽자 모든 부족(가加 =부족)이 ‘마여’를 왕으로 세웠다.

 

말·소·돼지·개·닭·양의 이름으로 분류한 부여 6 [가加 =부족]중 우가牛加 의 족장 형兄 의 아들 이름이 ‘위거位居’ 였는데, 대사 (大使= 부여연맹의 왕)이 되어 재물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니 국인(國人= 부여 백성) 들이 그를 따랐으며, 해마다 [차이나 위魏나라] 서울에 사使 를 보내어 공물貢物을 바쳤다.

 

부록3 수서 백제전

 

百濟之先,出自 高麗國。其國王有一侍婢,忽懷孕,王欲殺之。婢云:「有物狀如雞子,來感於我,故有娠也。」王捨之。後遂生一男,棄之廁溷,久而不死,以為神,命養之,

 

名曰 東明。及長,高麗王 忌 之,東明懼,逃至淹水,夫餘人共奉之。

東明之後,有仇台者,篤於仁信,始立其國于帶方故地。

동명東明이 엄수淹水까지 도망와서 부여의 왕이 되고, 동명의 후손 구대仇台가 대방옛땅帶方故地에 백제를 세웠다.

 

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漸以昌盛,為東夷強國。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歷十餘代,代臣中國,前史載之詳矣。開皇初,其王餘昌遣使貢方物,拜昌為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

 

부록4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첫 부분 요약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고 하였다.註 007 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서 월군(越郡)註 008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중략)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 그 계통은 고구려(高句麗)註 020와 더불어 부여(扶餘)註 021에서 함께 나왔기 때문에註 022부여를 씨(氏)로 삼았다.註 023 작은글씨로 “ 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가 우태(優台)이니 북부여왕(北扶餘王)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이다.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이니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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