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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국사편찬위원회] “ [준]이 해에서海中 왕이 되었어도(準 王 海中) ” 에서 해중 海中 을 “ 海外[의 나라]에서 ” 로 번역. [삼국지 동이열전]에서 倭(왜)는 아예 빼버려. [교과서]를 소설로 만든 국사편찬위원회. (3) 거대한 음모(24) 일본을 편드는 국사편찬위원회 (98)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9.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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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海(해)를 바다(=sea)로 번역하여 코리아 역사를 한반도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부여한 것이 이병도·신석호 이래 일본 편드는 [친일 국사편찬위원회]이다. 후한서와 삼국지에 “ 고조선의 왕 [준]이 [위만]에게 패하여 [해海] 지방으로 들어가 走入海, [해海] 지방에 살던 코리아 韓(한)의 왕이 되었다.” 는 기록이 있다.

 

1) 그들은 [走入海 주입해] 중 海해 를 바다(=sea)로 번역한 것이다. 기원전 2세기에 황해 바다를 수천명을 데리고 건너왔다는 것이다. [走入海 주입해] 그대로 해석하면 [달려서 (급히 走) 들어갔다 (入) 어디로? ‘해’ 지방으로(海)] 이다.

 

이병도·신석호 [친일 국사편찬위원회]는 “위만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준왕]을 따르는 무리들을 데리고 급히 이사했다.”는 것이다. 바다(=sea)로 들어가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저급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황해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왔다.” 는 것이다. 디젤 기관으로 다니는 카페리도 황해바다가 거칠면 인천~위해 간 운항을 중지한다.

 

[친일 국사편찬위원회]의 삼국지 번역은 더 가관이다. “[준]이 해에서海中 왕이 되었어도( 準 王 海中,) 조선과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해중海中을 “ 海外[의 나라]에서 ” 로 번역한 것이다. 해중海中이 해외海外로 바뀐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날조 수준이다. 처벌해야 할 정도이다.

 

2) 후한서 코리아 韓(한) 전

初, 朝鮮王 準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 走入海, 攻馬韓, 破之, 自立爲韓王

 

과거에 조선왕朝鮮王 준準이 위만衛滿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바다로 도망,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準의 후손後孫이 절멸絶滅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自立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

 

3) 삼국지 코리아 韓(한) 전

 

將 其左右宮人 走入海, 居 韓地, 自號 韓王.

魏略曰: 其子 及 親留在國者, 因 冒姓韓氏. 準 王 海中, 不 與朝鮮 相 往來. 其後 絶滅, 今 韓人猶有 奉其祭祀者.

 

[준왕準王]은 그의 근신近臣과 궁인宮人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경유하여 한韓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위략魏略: 준準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조선]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한씨韓氏라는 성姓을 사칭하였다. 준準은 해외海外[의 나라]에서 왕王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뒤 준準의 후손은 절멸絕滅되었으나, 지금 한인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2. 해海 는 지금도 오직 ‘바다=sea’를 가리키는 말로만 쓰이지 않는다. 인해, 수해를 비유적 표현이라고 강조할 수 있어서 황하 한가운데를 海(해)로 부르는 지역을 제시한다. 차이나 내몽고 자치구의 직할시 烏海市오해시 이다. 오해시는 황하가 ∩ 모양으로 흐르는 서쪽에 있으며 황하 한 가운데를 오해烏海 라고 부른다. 오해시에는 해의 남쪽인 해남구海南區도 있다.

 

1) 차이나는 넓은 바다, 넓은 호수도 [海해]라고 불렀다. 내륙에서 사는 이상 5대양大洋 6대주에 이어지는 큰 바다=ocean 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큰 바다에 쓰는 洋(양) 글자 조차도 짐승 羊(양) 옆의 물氵(수) 임을 생각해 보자.

 

2) 오해시烏海市 는 당연히 烏桓(오환) 과 관련이 있는 도시이다. 바이두 오해시烏=乌海市 설명에 따르면 한서 지리지에 나오는 구원군=오원군 과 삭방군이 있었다. 현재 학계는 삭방군, 오원군을 황하가 ∩ 모양으로 흐르는 제일 동쪽에 있는 것으로 본다. 현재 삭주시가 있는 곳이다. 황하 서에서 동으로 옮긴 엄청난 지명 이동이다.

 

3) 오해시烏海市 에는 해발만 구 海勃 湾 区가 있다. ‘해발’은 ‘발해’와 순서가 다를 뿐 漢字(한자)가 꼭 같다. 옥야 현 沃野 县 이 있는데 [沃沮(옥저)의 ‘沃옥’자 이다.

 

3. 오해시 乌海市를 소개한 것은 황하의 한 가운데도 海(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고조선]의 [준왕]이 도망쳐 들어간 海(해) 는 지역이며 ‘바다=sea’ 가 아니다. 황하 유역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어디 한 곳에 없어질때까지 머무른 것이 아니다. 고조선도 부여도 고구려도 부족 연맹체 혹은 연방국가의 성격이 강했다. 차이나 역사책은 시간과 공간을 알아보기 쉽게 서술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코리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해시乌海市 의 설명에 오환은 빠져 있다. 오환은 선비족으로 분류됨으로 차이나가 꼽는 5胡(호)(다섯이민족) 16국 중 5호는 흉노, 선비, 갈, 저, 강 (匈奴、鲜卑、羯、氐、羌号称“五胡”) 이다. 이중 선비에 烏桓(오환)이 포함된다.

 

오烏는 三足烏(삼족오)의 오烏 이고, 환桓은 桓檀古記(환단고기)의 환桓이며 선鲜은 朝鮮(조선)의 선鲜이다. 당연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오해시 인근에 이름이 선수鲜水인 강이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열전의 정식명칭은 [오환선비동이전三國志 卷三十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 이다. 삼국지의 저자는 동이(고조선)과 오환 선비를 분리하여 기록했다. [친일 국사편찬위원회] 는 이러한 사실을 해설하지 않으며, 동이전에 倭(왜)가 있음에도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예(濊)·한(韓) 만 틀리게 번역하여 게시하였지 倭(왜)는 생략했다. 차이나가 동이족으로 분류한 倭(왜)를 왜(why) [친일 국사편찬위원회] 는 빼버렸을까? 倭(왜)를 한민족에 넣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계속)

 

 

부록 1 바이두 오해시 乌海市

乌海市,别称 狮城,内蒙古自治区 辖地级 市,地处 黄河上游,东北隔 甘德尔山 与 鄂尔多斯搭 界,南 与石嘴山市 隔河 相望,西接 阿拉善盟,地处大陆深处,属于典型的温带大陆性气候,总面积1754平方千米。

 

汉元朔二年(前127年),汉武帝 击败 匈奴 楼烦王、白羊王,收复 河南地(辖境 今 巴彦淖尔盟 乌加河 以南、鄂尔多斯 高原),将原 有 九原郡 改为五原郡,又增 设 朔方郡,郡治 在三封县(今 巴盟磴口县 哈腾套海苏木 的陶升井,又称 麻弥图库庙 古城)。朔方郡 下设 10县,在今 海勃湾地区 设置沃野县。元狩三年(前120年),筑 沃野县 城(今 海勃湾区 北新地 古城)。汉元狩二年(前121年),南匈奴 浑邪王 附汉后,乌达地区 为 武威郡之北境地。

 

东汉末年到三国、晋、十六国时期,活动 在北方草原的 少数民族 匈奴、鲜卑、羯、氐、羌号称“五胡”,大多 进入 长城以南,移居 黄河流域。他们互相争战 或者 与中原王朝 较量,形成 长时间 战乱局面。魏晋时,今 乌达地区为 西部鲜卑 所据,南北朝时为 前凉、后凉、北凉 所割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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