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꽃잎과 칼끝의 대결, 그 ‘착란의 변증법’ -월평 작가 오정주

김주선 작가,전문기자
  • 입력 2023.09.14 16:00
  • 수정 2023.09.15 1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산문』 10월호 월평   - 오정주 작가의  꽃잎과 칼끝의 대결, 그 ‘착란의 변증법’

월간 문예지 『한국산문』 2023.10월호에 오정주 작가의 월평이 실렸다.
2023.9월 월간지『 한국산문』에 발표한 김주선 작가의 신작「바둑 두는 여자」에 대한 월평이다.

 

   꽃잎과 칼끝의 대결, 그 ‘착란의 변증법’

                                   『한국산문』 9월호 월평     오정주

  우리 인생의 꽃잎은 칼끝에서 한순간 스러지기도 하고, 영혼이 불타올라 더 많은 꽃잎을 피우기도 한다. 세찬 바람에 흩어지지 않으려면 위기의 순간을 잘 버텨내야 한다. 

 현대인들은 어떤 황당한 고민일지라도 윤리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갈등의 칼끝에서 선택을 종용당하는 착란의 상태에 처하기도 한다. 어떻게 극복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

  『한국산문』 9월호에 실린 김주선의 『바둑 두는 여자』와 박지니의 『두 여자 사랑하기』는 인기 드라마와 소설을 읽고 그 의미를 촘촘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주제는 다르지만 문제 해결 방법의 절실함의 맥락이 같은 글이라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김주선 작가의 『바둑 두는 여자』는 예전에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던 기억을 소환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고 관련 수필을 써보고 싶어 한다. 작가가 갑자기 바둑에 관심을 둔 이유는 최근 넷플릭스의 최고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의 영향이 컸다. 학교 폭력으로 상처받고 생이 얼룩진 한 여자가 오랜 세월 복수를 준비하고 처절하게 응징하는 이야기 중 가해자의 남편에게 접근하여 바둑을 두는 장면의 독백 대사에 깊이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바둑은 아주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상대의 돌을 회생 불가능하게 만들어 처절하게 망가뜨려 줄 대마는 그의 아내였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 홀린 이유는 흉내 낼 수 없는 찰진 대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 여성이 바둑을 매개로 심리전을 펴 상대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라 신선했다. “침묵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바둑에는 인과응보가 있고 권선징악이 있고, 남의 마음을 호리어 사로잡는 매혹스러운 힘도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냐고. 반상 위에 떨어지는 돌 하나의 움직임이 꽃잎일 수도 칼끝일 수도 있는 그 침묵이….

  자신의 돌을 희생해 상대방이 호구를 물게 만들고, 자신은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는 전략이 드라마  『더 글로리』에 그대로 녹아 있음을 발견한다. 그 매력에 감탄한 작가는 바둑을 직접 배우고 있다. 바둑을 복선으로 깐 복수극에서 가해자들은 어떻게 응수하고 허물어지는지 호기심 가득하게 지켜본 작가는 독자들을 흥미진진하게 글 속으로 끌어들인다.

같은 색 돌 세 개가 V자 모양으로 배치된 모양을 ‘호랑이 입’이라 하여 호구라 부른다. 경우의 수로 상대의 입안에 자신의 돌을 미끼로 집어넣는 자살행위를 할 때도 있다. 작전상 죽은 돌로 꼼수지만, 돌이 되살아 나는 경우가 있어 묘수로 쓰이기도 한다. 알면 알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결과를 낳았으니 바둑으로 치면 고급 기술이랄까. 바람까지는 아니어도 활로를 끊어 버리고 포위망에 걸린 목숨줄을 조이는 것이 문동은의 진짜 노림수였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미생이라고 한다. 드라마 주인공 문동은처럼 완전히 죽지 않고 살아날 여지가 남은 돌, 즉 “죽었지만 죽지 않았고 살아날 여지가 있다니 얼마나 솔깃한가”라며 작가 스스로를 문학이나 바둑이 여물지 못한 미생이라고 생각한다.

김주선 작가는 어떤 자극이 왔을 때 반응이 빠르고 감성적이다. 완생을 꿈꾸는 그녀의 글을 향한 ‘꽃잎과 칼끝의 대결’이 기대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