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 삶은 시』 ‘언눔이’ (1)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09.09 15: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6부 언눔이 (1)

 

달에 백오십쯤이면 되지 뭘

점점 재미도 적고

여보, 나 이제 그만둘라오

단 둘이 보은 같은 데나 가서

텃밭이나 하나 하고 삽시다

좀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면 되지 뭘

그럽시다

자식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귀촌

 

안양은 다 접고 접자마자

떴지요

우리겐 여기가 딱이구료

길쭉하고 비스듬한 가재골 집

강아지 두 마리 머루랑 다래랑 이름 붙이고

읍내 철물점 농약상회 들러

낫 호미 괭이 삽 등속 갖추랴

배롱 매실 앵자두 석류 연산홍서껀

사다 심으랴, 오명가명

봄빛에 원, 쑥스럽구료 하나부터 열까지

이 동네 분들 가르침 되우 좋아하시니

가지 심다 혼나고 열무 심다 혼나고

오죽하면 불 때다 혼나고

시골살이 깨치기 어려워 심는 족족 다 죽고 마네

에구머니나, 또 밤 오줌 누나베? 이웃 두보 할멈까지

훌떡 벗공 마당귀 텃밭에 쫄쫄 거름하니

올 물외 한번 달겄고나 거, 인심 한번 좋겠고야

우리 갈수록 머리도 나빠지고

이제 여기서 내 호는 윤 올갱이,

딱이네 

 

잘, 때려쳤다 박수 치는 친구,

이제 늦잠이나 실컷 자라는 친구

삼십 년 배우고 삼십 년 가르쳤으니 앞으로 삼십 년

읽고 쓰십시오 하는 후배에다

또 짐 정리는 천천히 느긋하게 하라는 사람

촌구석 막막하단 사람

느이같이 여린 사람들이 대체 가재골이 뭐람,

서글프다며 끔즉타며, 우리 걱정에

밤새 눈시울 붉혀 소주잔 기울인 언눔이에다

  

풍정

  

개똥갈이 밭 두럭

부슬부슬 이슬비 내리곤

아주까리 피마자 잎사귀에도

양은 종재기에도 여름 오늬라

고초밭 평생 땅강아지들이여

솔 수풍 속 꺼꺽푸드데기 날아오르데

이런 날이면 옛날 어머니들 밭 두럭에 앉아

베보자기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고무신 흙 똘똘 털며 다시금 호미를 잡으셨지

흙투백이 땅강아지로 살며

고추니, 콩이니, 깨니

곡석들 자식 보듬듯 키우며 사셨지

흙알갱이에 닳아 터진 손끝으로

새파라니 잘 살기여, 잘 크기여

한 줌 또 한 줌 북을 주셨지, 아아

이드런 날 이드런 곳에서 

 

여, 가재골 참 아름답수

면사무소 굽돌아서 옥천 가는 신작로길

도야지 용달 트럭에 덕순이 희돌이 몇 바리

귀 찢어져라 대이구 꽥꽥대며 덜컥거리니

도라지꽃 분홍 방뎅이하곤

들, 엄청 좋은 데 놀러라도 가는 듯

맑다가 싱그럽다가

  

들꽃 성당

  

떨떠름, 잘 웃을 줄도 모르데

접때 가물 들어

줴,

말라비틀어져 죽을지언정

심거야쥬, 벌거지들도 먹고살아야쥬

헛일이라도 해야쥬

여기 들꽃 성당

다리 휘고 허리 굽고

낯 누렇게 탄 일흔 여든 성님들

허나 신실하시다

우리 같은 새파란 오륙십 대들은

따라가려면, 암, 어림도 없지

사과 대추 버섯 농사에

양계 축사 막일에

여즉 복사를 서고 봉사를 하고 전례를 하고

반주를 하고 삼종 종을 치고

성당 마당 우북한 바랭 쑥도 뜯을라컨

은총 중 은총이시니

주님 보시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네

그 들꽃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라

어느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어라

 

참, 요셉 형제님 기시누나

녹슨 함석지붕에 반천 내려앉은 굴뚝

창문은 뻥 뚫리고

댓돌엔 헌 고무장화 한 켤레 나뒹굴고

날은 푹푹 찌고, 남들은 땀 뻘뻘 흘리는데

똥오줌 고름 냄새 코를 찌르는 골방 속

‘제가 바칠 건 앓는 일밖에 또 없으니’

라는 듯

빙긋이 웃으시네

얼마 안 남은 요셉 씨요!

망초댄 넘자라 억세 빠지고

배암은 주먹 같은 황소개구리 통째 삼키는데

일나세요 힘내세요, 오라 사세요

얼마 안 남았단 마음 싹 지우시고요

우리네 촌 사람들 드릴 건

봉사도, 지혜도, 기도도, 선행도,

눈물도, 웃음도 아니요

늘 앓고 또 앓는 일 아니겠습니까요

  

돌국

  

햇빛 친친

암튼, 벼논 하늘에 비뚜름

긴 목 왜가리 서고

심드렁, 갸들 오면

찌그러진 살강 냄비에

주먹 자갈 여나믄

맑비린, 또랑물 몇 줌 훔쳐다 붓네

냇갈 삭정이 불 활활,

휘휘, 버들이랑 다 걷어내네, 애오라지

돌만 넣고

물만 붓고

가뭄에 땀 뻘뻘,

갈그치는 웃통 벗고 신발 벗고

갸들 바가지 마음 달겨들어

훌훌, 퍼 마시는구나

속곳 누더기 한 쪼가리 삶아 마시듯

병도 씻네

눈도 밝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