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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생활

이진성
  • 입력 2023.08.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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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20:04.

부유하는 생활. 잠원 한강 야외수영장을 3주 내내 다닌 것도 모자라서 제주도를 왔다. 현준이가 제주도에 아스론가라는 술집을 냈다길래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사실 더 큰 동기는 바다 수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갔으면서 또 여기서 수영을 하겠다니. 나도 내 마음이 궁금했다.

머리를 물속에 반정도 담그고 팔과 다리에 힘을 풀고 물 밑을 본다. 파도에 살랑이며 모래가 퍼졌다가 가라앉았다. 두둥실 떠있는 이 기분이 정말 좋다. 발가락 사이에 닿는 모래가 폭신하고 상쾌하다. 발등에 부서지듯이 일렁이는 빛이 정말 청량했다. 몸을 뒤집어 하늘을 봤다. 지구는 정말 둥근 게 확실하다. 내 각막도 둥근 게 확실하다. 깊이가 알 수 없게 푸르다. 구름도 몇 점 부유하고 있다. 나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밌을까.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데 신난다. 몸과 정신은 유기적이라서, 마음의 허기짐을 뇌가 인식할 때에 몸의 허기로 오인하곤 한단다. 그래서 우울할 때 뭔가를 먹으면 일부의 허기가 채워진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부유하는 행동을 좋아하는 것은 얽매인 것이 많아서 아닐까. 다 내려놓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잠시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잠시뿐인 즐거움이기에 정말 적극적으로 물놀이를 했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러다가 미친 사람처럼 물을 가르며 수영을 했다. 오늘이 가면 언제 수영을 할지 모르니까 온몸으로 했다. 연기, 수업, 오디션, 돈, 자영업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영하고 최선을 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부유하다가 하늘을 보면 우주에 뜬 것만 같다. 잠시 부유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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