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공개할 수 없어요.” [국사편찬위원회]가 감춘 백제역사가 책으로 출판되다. [ 책보고 출판사의 백제서기·백제왕기 ]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8.23 07: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찾은 ‘남당유고’는 6건 뿐이다. 이마저도 로딩(화면에 나오는 것)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 로딩 된 것중 역사 관련 기록은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공개할 수 없어요.”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황급히 감춘 ‘남당유고’ 백제 편, [백제서기·백제왕기] 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약 6만명의 구독자가 열심히 보는 한국고대, 중세사 전문 유튜버 '책보고' 가 설립한 ‘시민혁명출판사’에서 ‘하진규’의 번역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감춘 [백제서기,백제왕기] 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책보고'는 韓(한)민족의 역사무대가 차이나 전역임을 차이나 정부 출간 역사책과 차이나 지역 이름을 통하여 입증하면서 이를 지도로 출간한 유튜버이다.

 

‘책보고’가 출간한 [백제서기·백제왕기] 첫 부분은 2018년 2월 2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22-2호로 지정된 ‘삼국사(기)’ ‘백제본기’ 첫 부분과 거의 같다. [백제서기·백제왕기] 의 원본 텍스트인 ‘남당유고’가 신뢰할 자료라는 반증이다.

 

백제 건국기록이 고구려 건국 기록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주몽’이 ‘고구려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주몽’이 ‘부여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별다른 설명 없이 ‘교과서’에 주몽은 고구려의 왕이 되었다고 편찬했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그렇게 배워왔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북부여’에서 주몽이 내려와 ‘고구려왕’이 아니라 ‘부여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책보고의 [백제서기,백제왕기], 삼국사기 백제본기, 차이나 역사책 ‘북사 백제전’ 등)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백제본기] 원문이다.

 

“ 백제(百濟)註 001의 시조 온조왕(溫祚王)註 002은 그 아버지가 추모(鄒牟)註 003인데 혹은 주몽(朱蒙)이라고도 한다. 〔주몽은〕 북부여(北扶餘)註 004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註 005에 이르렀다. 부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註 006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는 주몽이 고구려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몽은〕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자연 지세[山河]가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단지 비류수(沸流水)註 045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註 046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氏]로 삼았다.註 047 혹 말하기를, “주몽이 졸본부여(卒本扶餘)註 048에 이르렀는데, 왕이 아들이 없었다.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라고 하였다.註 049

 

[국사편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고 이를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을 결정하는 정부기관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역사정보시스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우리역사넷, 전자사료관, 전자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사료관’으로 들어가서 한글 ‘남당유고’, 한자 ‘南塘遺稿’ 로 검색하면 6개의 사료(역사 원재료)가 나온다. 남당유고 (서)1건, (상)이 3건, (하) 1건, 사료건(4편) 1건 합계 6건이 검색된다. 이 중 원문을 ‘뷰어’로 볼 수 있는 것은 몇 건되지 않는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6건의 남당유고 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는 없다.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1889 ~ 1962)는 1930~1940년대 일본 궁내성 왕실도서관(일본 국립도서관)에서 사무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일제가 ‘조선’에서 가져간 한문으로 된 많은 역사자료 등을 일일이 베껴 왔다.

 

그 자료 일체를 ‘남당유고’라고 부른다.

 

“2003년에 1927-28년 일본에서 발간된 유명 역사학잡지인 〈중앙사단〉(中央史壇)에 박창화가 기고한 역사 논문 3편이 발굴, 소개되면서 비로소 '역사학자 박창화'가 조명되기 시작했다.

박창화의 손자 박인규(朴仁圭)씨가 남당의 역사학 논저 중에서 우리나라의 강역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5편을 묶어 《우리나라 강역고》(彊域考, 민속원)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위키백과 박창화)

 

‘남당유고’를 [국사편찬위원회]가 2000년대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그림파일로 게시·공개했다. 많은 재야 연구가들이 그 자료를 다운 받아서 저장해 두었다. 이후 연구가 진행되면서 일제식민사학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가짜 연구’ 및 ‘국사 교과서 내용’과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발표되자 국사편찬위원회는 급히 ‘남당유고’를 내리면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국사’와 관련 없는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찾은 남당유고는 위 6건 뿐이다. 이 마저도 로딩(화면에 나오는 것)되지 않는 것도 있으며, 로딩 된 것중 역사 관련 기록은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공개할 수 없어요.”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