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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사기)’에 나오는 차이나 황하 강변의 44성이 진시황 진秦나라의 만리장성. 거대한 음모 (9)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78)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7.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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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진나라가 쌓은 장성은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여리] 라고 했다. 起 臨洮 至 遼東 萬餘里

 

1) 임조(臨洮)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정서시[定西市] 민현[岷縣]]으로 비정하고 있다. 장성의 동쪽 끝인 요동을 지금의 천진시 서북쪽 진황도시라고 양보하고, 십리를 5라고 늘려 주고,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 곡선으로 쌓아도, 임조에서 진황도시까지는 만여리의 절반인 5천여리다.

 

임조(臨洮)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딩시시[定西市] 민현[岷縣]] 에서 유림시榆林市까지는 도로 기준으로 약 800, 유림시榆林市에서 바오터우시까지는 약 350, 거기서 황해안 진황도시까지 약 1,150합치면 2,300이다.

 

2) 터널 통과를 감안해서 10% 올려주고, 십리를 5로 계산해도, 만리장성의 만리는 5,000인데, 그 절반 2,530정도이다.

 

3)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에 나오는 요동은 어디인가?

 

2. 나라는 조선의 서쪽 2천리에 있었다. ‘조선이 태행산맥 동쪽에 있었다면 지금의 연나라는 황하 이동, 이서 지역이다.

 

1) 지난 글에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조에 나오는 번한 番汗 관련 글을 소개했다. 기원전 300년 경 서쪽 영토 약 2천리를 빼앗긴 조선, 빼앗은 연나라만 번한滿 番汗지역을 국경으로 대치했다.

燕 乃 遣 將秦開 攻 其西方取地 二千餘里至 滿 番汗 為界朝鮮遂弱(삼국지 위서 한)

 

사마천의 사기2천여리가 아니라 1천여리로 기술했다. 2천여리인지, 1천여리인지 매우 중요하지만, 둘 다 신뢰하기 힘들다. 東胡 卻(물리칠 각) 千餘里

 

2) 기원전 220년 경 연나라를 멸한 나라임조(臨洮,,)’에서 요동까지 황하의 강변을 따라 44곳에 현성(縣城)을 축조하고 장성을 쌓았다. (사기 흉노열전) 그 때 요동은 황하 강변에 있다.

 

史記(사기) 匈奴列傳(흉노열전)

起 臨洮 至 遼東 萬餘里度河 據 陽山 北假 中

임조(臨洮)를 기점으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또 황하를 (북으로) 건너가 양산(陽山)과 북가(北假) 일대를 점거했다.

 

因河 為 塞四十四縣城 臨 河徙 適戍 以充之

또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드는 한편, 황하의 강변을 따라 臨 河 44곳에 현성(縣城)을 축조하고, 백성을 옮겨와 현성을 지키게 하였다.

 

3) 1), 2)를 보면서, 서에서 동으로 직선으로 가는 장성만을 생각하지는 말자.

 

장성은 임조( 지금의 서안시 서쪽)에서 산으로 올라가서, 황하가 서동으로 흐르는 오로도스 지역에 있는 유림 시에서, 다시 북쪽으로 포두시까지 간다. 오로도스 서북쪽 탁극탁 托克托 현 남쪽에서, 서동으로 흐르던 황하가 완만하게 북남으로 꺾여서 흐른다. 황하는 북남으로 흘러 지금의 섬서성 위남시 동쪽에 와서 다시 서동으로 흐른다.

 

황하 강변에 지은 44개 현성이 서동으로 흐르는 황하에만 있었을까? 아니다. 당연히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 강변에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차이나의 지도책에는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의 서쪽 강변 지금의, 산서성이 아닌, 섬서성에 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보다 더 기록과 유적이 일치할 수는 없다.

 

요동은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 강변 동서양쪽을 표시한 것이다!

 

4) 요동 지역 후보지로 볼 수 있는 다른 가능성 하나는 북남으로 달리는 태행산맥을 따라 북남으로 쌓은 장성이다. 태행산맥 서쪽, 지금의 태원시 등 산서성 한복판이 요동이 되는 것이며, 요동은 만번한을 포함하는 지역이 된다.

 

이 장성으로는 사기에 나오는 황하 강변의 44개의 현성을 해석할 길이 없다.

 

5) 결론적으로 만 번한은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 강변 동쪽과 서쪽지역이며 사기 흉노열전에 나오는 요동이다. 황하의 서쪽은 지금의 섬서성이고 동쪽은 산서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수긍하기 힘들 것이다. ‘만 번한滿 番汗이지 번한番汗이 아니라고 반론할 것이다.

 

 

3. [사기 흉노열전]에 의하면 ()나라는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축조했다.

 

[사기 흉노열전]에 의하면 ()나라는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장성을 쌓았고,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나라가 ()나라를 멸하였으므로 ()나라가 설치한 요동(遼東)() 역시 ()나라가 접수했다.

 

한서 지리지 위군은 지금의 한단시 부근이다. 한서 지리지 위군 이 전국시대 (기원전 476(403)~221)의 위나라 수도나 강역 전부라면, 나라는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황하를 건너 지금의 섬서성, 감숙성에 있는 하서(河西)와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융족(흉노)와 접한 것이다.

 

燕亦 築 長城自 造陽 至 襄平

연나라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렀고,

 

置 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 以 拒 胡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4. ()나라가 태행산맥 서쪽에 있었는지, 동쪽에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양쪽에 다 있었고 ()나라가 고조선이라면 모든 의문은 풀리고 지리 영토 설명이 쉽게 이루어진다.

 

원래 황하 서쪽까지가 영토였던 조선 연방의 수도 왕험성은 조선연방의 하나인 ()나라가 침공하여 동쪽으로 천여리~이천여리 이동했다. 태행산맥 서쪽이고 황하 동쪽인 지역이 만 번한 지역이고, 요서, 요동군이 있던 지역이다.

 

차이나 역사가들이 어떤 때는 ()나라로, 어떤 때는 조선·부여·예맥·동호·동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여 혼돈을 주고 있다.

 

5. 관련 기록 원문 [사기 흉노열전]

1) 그 후 조양자는 진나라의 한강자(韓康子), 위환자(魏桓子)와 함께 지백(智伯)을 멸하고 진()나라 영토를 나누어 가졌는데, 즉 조()나라는 대()와 구주산 북쪽을 차지하고, 위나라는 하서(河西)와 상군(上郡)을 차지해 융족과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其後 既 與 韓 魏 共 滅 智伯分晉地 而 有之則 趙有 代句注之北魏 有河西上郡以 與 戎界邊

 

2) 기원전 320년 경 진()나라 혜왕은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서하(西河)와 상군(上郡)을 전부 진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惠王 擊 魏魏 盡入 西河及上郡 于秦

 

3) 기원전 310년 경 진()나라 소왕(昭王) 때 진나라는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거기에 장성을 쌓아 융적의 침입을 막았다.

於是 秦有 隴西·北地·上郡築 長城 以 拒胡

 

서하(西河)와 상군(上郡) 은 위()나라와 진()나라의 경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4) 燕亦 築 長城自 造陽 至 襄平

연나라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렀고,

 

5) 置 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 以 拒 胡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6. 漢書(한서) 지리지 요동군은 18개 현이 있는데 번째 현이 번한番汗 현이다. 요동군 번한番汗 현은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인 만 번한滿 番汗과 같다.

 

 

 

 

부록1) 史記(사기) 匈奴列傳(흉노열전)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110.匈奴列傳(흉노열전) (차이나 국학도항 원문. swings81의 번역문을 필자가 일부 수정

https://blog.naver.com/swings81/221584665346

 

自是之後 百有餘年晉 悼公 使 魏絳 和 戎翟戎翟 朝 晉

그로부터 1백여 년 뒤에 진()나라 도공(悼公)이 위강(魏絳)을 융적에 사신으로 보내 화친을 맺음으로써 융적들은 진()나라에 조회하게 되었다.

 

後 百有餘年趙襄子 踰 句注而 破并代 以 臨 胡貉。〔

또 그로부터 1백여 년 뒤에 조양자(趙襄子)가 구주산(句注山)을 넘어 대()를 쳐부수고 그 땅을 병합하고 호()와 맥()에까지 이르렀다.

 

其後 既 與 韓魏 共 滅 智伯分晉地 而 有之則 趙有 代句注之北魏 有河西上郡以 與 戎界邊

그 후 조양자는 진나라의 한강자(韓康子), 위환자(魏桓子)와 함께 지백(智伯)을 멸하고 진()나라 영토를 나누어 가졌는데, 즉 조()나라는 대()와 구주산 북쪽을 차지하고, 위나라는 하서(河西)와 상군(上郡)을 차지해 융족과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其後 義渠之戎 築城郭 以 自守而 秦 稍 蠶食至於 惠王遂拔 義渠 二十五城

그 후에 의거(義渠)의 융족들은 성곽을 쌓고 스스로 지키고 있었으나 진()나라가 점차 잠식해 들어가 진()나라 혜왕(惠王) 때에 이르러 마침내 의거의 25개 성을 빼앗았다.

 

惠王 擊 魏魏 盡入 西河及上郡 于秦

또 혜왕은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서하(西河)와 상군(上郡)을 전부 진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秦昭王時義渠戎王與宣太后有二子

()나라 소왕(昭王) 때 의거의 융왕(戎王)이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사통해 두 아들을 낳았다.

 

宣太后詐而殺義渠戎王於甘泉遂起兵伐殘義渠

그러나 선태후는 의거의 융왕을 속여 감천궁(甘泉宮)으로 유인하여 그를 죽이고, 이어 군사를 일으켜 의거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於是秦有隴西北地上郡築長城以拒胡

그래서 진나라는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거기에 장성을 쌓아 융적의 침입을 막았다.

 

而 趙武靈王 亦 變俗胡服習 騎射北破 林胡樓煩

한편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은 조나라의 풍속을 개혁해 군사들에게 호복을 입고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연습시켜 북쪽의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을 무찔렀다.

 

築長城,〔自代並陰山至高闕為塞。〔

장성을 쌓고 대()에서부터 음산(陰山)산맥 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는 지역을 요새로 만들었다.

 

而置 雲中鴈門代郡

조나라는 그 땅에 운중(雲中), 안문(雁門), () 등 군()을 설치했다.

 

其後 燕有賢將 秦開爲質於胡胡甚信之

그 후 연()나라에 진개(秦開)라는 현명한 장수가 있어, 오랑캐[=동호]의 인질이 되었었는데, 오랑캐들[]은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歸而 襲 破 走 東胡東胡 卻 千餘里

(진개가) 돌아와 동호(東胡)를 습격해 격파하여 동호로 들어가니, 동호는 천여리의 밖으로 물러났다.

 

與荊軻刺秦王秦舞陽者開之孫也

형가(荊軻)와 함께 진나라 왕을 암살하려 했던 진무양(秦舞陽)이 진개의 손자이다.

 

燕亦 築 長城自 造陽 至 襄平

연나라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렀고,

 

置 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 以 拒 胡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부록2) 史記(사기) 匈奴列傳(흉노열전)

 

後 秦滅六國而 始皇帝 使 蒙恬 將十萬之眾 北 擊胡悉收 河南地

그 뒤에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키고, 시황제(始皇帝)는 몽염(蒙恬)에게 10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북쪽의 흉노를 공격하여 황하 이남의 땅을 모두 진나라의 영토로 수복하였다.

 

因河為塞四十四縣城 臨 河徙 適戍 以充之

또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드는 한편, 황하의 강변을 따라 44곳에 현성(縣城)을 축조하고, 백성을 옮겨와 현성을 지키게 하였다.

 

而通直道九原 至 雲陽

그리고 직도(直道)를 만들어 구원(九原)에서 운양(雲陽)에 이르게 하였으며,

 

因邊 山險 塹谿谷 可繕者 治之

또한 산의 주변을 이용하여 험준한 구릉과 계곡에 치수(治水)하여 성의 해자를 만들고

 

起 臨洮 至 遼東 萬餘里度河 據 陽山 北假 中

임조(臨洮)를 기점으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또 황하를 건너가 양산(陽山)과 북가(北假) 일대를 점거했다.

 

부록 3) 한서지리지 안문군

鴈門郡秦置句注山在陰館莽曰填狄屬并州戶七萬三千一百三十八口二十九萬三千四百五十四

 

縣十四

善無莽曰陰館

沃陽鹽澤在東北有長丞西部都尉治莽曰敬陽

繁畤莽曰當要。〔〕〔〕 師古曰:「畤音止。」

中陵莽曰遮害

陰館樓煩鄉景帝後三年置累頭山治水所出東至泉州入海過郡六行千一百里莽曰富代。〔〕〔〕 師古曰:「累音力追反治音弋之反燕剌王傳作台字。」

樓煩有鹽官。〔〕〔〕 應劭曰:「故樓煩胡地。」

武州莽曰桓州

⑧ 〈{山王},〔〕〔〕 孟康曰:「音汪。」

劇陽莽曰善陽

莽曰崞張。〔〕〔〕 孟康曰:「音郭。」

平城東部都尉治莽曰平順

莽曰填狄亭

馬邑莽曰章昭。〔〕〔〕 師古曰:「晉太康地 記云 秦時建 此城 輒崩不成有馬 周旋 馳走 反覆父老異之因依以築城遂名為馬邑。」

彊陰諸聞澤在東北莽曰伏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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