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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607] 리뷰: 강효지의 2번째 Piano VR Hologram Concert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3.07.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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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8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0분 전에 입장해서 프로그램을 찬찬히 보고 있는데 불 꺼진 무대에서 갑자기 피아노가 혼자 꽝하고 울려서 깜짝 놀랐다. 한 번이 아니고 연달아 2-3번 울리고 무대 오른쪽 아래에는 3명의 스텝이 앉아있었다. 객석의 불이 꺼졌는데 여전히 피아노가 혼자 울렸다. 그 사이에 관객들의 기침과 함께 심지어 껌을 씹으려고 하는지 종이를 얇게 찢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혼돈은 마치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같았다. 바람소리가 웅웅 거렸고 무대에는 파란색 불빛이 들어왔다. 어리둥절한 상태의 관객들은 무대 위 모든 것에 반응했다. 드디어 강효지가 마치 사방팔방 뭔가 향수를 뿌리는 듯 입장하고 오른쪽에 배치된 검은색 피아노에 앉았다.

광활한 초원, 황량한 사막, 태초의 땅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어제 몽골에 다녀와서 그런지 몰라도 테를지의 게르에서 체험한 자유라 느껴졌다. 어느 누구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나만의 세계다. 왼쪽 하얀 피아노가 첫 부분 주인공으로 무의식의 세계가 바람 소리와 뇌 데이터를 받은 10대의 홀로그램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강효지가 무용수, 퍼포머가 되어 하얀색 천을 뒤집어썼다. 괴기스러운 사운드에 합성된 바흐의 피아노곡이 삽입되었다. 자신의 옷과 똑같은 색의 천을 거추장스럽게 걸치고 머리를 관객석으로 향하고 누웠다. 그리고 다리를 벌리니 하얀색 천 사이의 살색 다리가 비쳤다. 무릎과 무릎 사이를 몸부림치며 구른다. 생명이 탄생한다. 자궁의 모체가 된다. 누에와 같이 하얀색을 말려 이미 녹음되어 있는 홀로그램의 하얀색 피아노로 천을 질질 끌고 다가간다. 그러면서 관객도 끌려간다. 강효지가 설정한 인터랙티브 퍼포먼스(Interactive performance)를 통해 상호 영향을 받아 무대와 객석, 강효지와 관객이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적 관계로 변모한다.

프로그램 상의 에필로그 타임에 무대에 올라 강효지와 담소를 나누며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봐야 하기 때문에 6번의 Growing Improvisation이 마치면 대기실로 가야 되는데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끈질기게 프로그램을 살피며 시간차 순으로 공연을 관람하려고 애쓰던 필자 역시 30분이 지나고 강효지가 한번 퇴장했다가 환복하고 나와 색소포니스트 강태환과 즉흥연주를 펼칠 때는 아예 포기해버렸다. 아마 그런 무아(無我)에서 날 끄집어 내주지 않았더라면 망각을 하고 말았을 터... 강태환은 도인과 같다. 인도의 요가처럼 방석을 깔고 앉았다. 이 정도 되니 확실해졌다. 강효지가 처음부터 들고나오고 뿌리던 오른손의 빨간색 보쿠린의 마라카스 같은 딸랑이는 씨앗(Seeds)이었고 그게 뿌려져 세상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또 하나의 우주를 뱉어낸다.

강효지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즉흥연주가, 크리에이터라는 호칭이 더 적합하다. 그녀는 관객과의 대담에서 '불친절한'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예술을 규정하고 자신을 가두었다. 익숙함과 생소함, 고정관념과 장소의 문제요 친절과 불친절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주관적인 일시적인 감정일 뿐인데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고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게 친절한 게 절대 아니다. 강효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거부하는 빅뱅을 언급한 인문학자의 질문은(프로그램을 읽었음에도 그런 의견을 피력했다면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웠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밤새워 토론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전자음악이든 퍼포먼스든 홀로그램이든 좀 더 과감하고 본인의 자아 그대로를 드러내었으면 한다. 지금의 강효지는 예술가와 대학의 교수라는 켄타우로스 같은 모습이며 그걸 동시에 해야 된다는 건 어찌 보면 모순이다. 우리 모두 생존을 위한 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고 그런 척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항변하고 저항했으면 한다. 세종문화회관같은 제약과 감시가 횡행하는 클래식 전용홀이 아닌 문화비축기지나 문래동 철공소에 가던지 아님 거리로 나서라. 본인이 예술 방식을 선택하고 권한을 무한정 행사하라. 예술가란 순간 너머를 보고 현재를 넘어 미래를 당기는 비실용적인 사람들이지 실적과 평가로 재단하는 눈에 보이는 데이터에 강요당하는 그런 세속적인 회사원이 아니다. 그런 면에 비추어 강효지는 너무 실용적이고 이성적이 되었다. 이게 그녀의 진짜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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