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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이진성
  • 입력 2023.06.29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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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9. 02:00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 한숨 푹 잤다.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다녀왔다. 하루의 일을 돌이켜 보는데 죽는다는 건 뭔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무래도 어제오늘 촬영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촬영용 더미를 봐서 그런가 보다.

더미란 시체 대용으로 쓰이는 마네킹 같은 것이다. 그 더미가 죽기 직전의 환자 대용으로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작품 제목이 <중증외상센터>이다 보니 응급수술이 필요한 장면이 많고 나는 파주에서 숲의 녹색보다 혈액의 붉음을 더 많이 봤다. 근데 죽기 직전의 그 시체 더미, 그러니까 환자는 잘도 숨이 붙어서 여러 의사가 살리고 있다. 극 중 마취 상태인 것이다. 칼로 살을 찢고 가슴을 떼어내고 톱으로 뼈를 뜯어도 죽지 않는다. 맨 정신이면 벌써 죽었을 사람이다. 맨 정신에 수술을 했으괴성을 지르며 죽여달라 했겠지. 그러나 마취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편하게 눈을 감고 자고 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슴을 열어보니 심장이 펄떡이며 뛰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뜻이다. 마취 때문이다. 마취를 하지 않았다면 로워서 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사람은 괴로워서 죽는 것 아닐까?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어서 오는 통증이 너무 소심해서 쇼크가 오는 것처럼, 내가 불구가 되었다거나 하는 충격이 쇼크가 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죽는 것은 아닐까? 마치 더 살만한 의욕이 없는 고통에서 오는 충격이 뇌로 가서 숨을 내려놓게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사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마취제인 것이다. 삶이란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으므로 고통을 망각하고 살 수 있어야 내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취제를 진짜 맞을 수는 없으니 진통제 정도의 뭔가가 삶에 있어야겠다. 너무 고통스러운 날에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취를, 그거라도 하자. 땡쏘 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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