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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역사책이 ‘(고)조선’이 차이나 대륙 한가운데에 있다고 써 놓았는데, 왜 코리아가, 한4군으로 바뀐 ‘(고)조선’은 한반도 평양 부근이라고 빡빡 우기는가? 이러니 “부일사학·친일사학·식민사학” 소리를 듣는 것이다! 차이나 대륙에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라. 거대한 음모 (3)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72)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6.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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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호에 계속되는 글이다. 차이나 사서에 나온 소위 동이열전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살펴 보자

 

차이나 원문에는 동이에 속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가 번역·게시하면서 올린 동이전에는 기록이 없는 경우(대부분 왜, 일본 관련 기록이다)와 해석을 제멋대로하면서 해석하지 않거나 틀리게 해석한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2. 기원후 285년 경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비로소 오환선비동이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환·선비,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가 나온다.

 

1)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왜()를 빼 버렸다. 원문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은 왜()동이에 속하는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동이에 왜()가 속하는지 잘 모른다. 차이나 역사서가 왜곡한 부분을 찝어 내어서 바로 세울 때에 코리아 역사는 복원될 수 있다. () 는 지금의 일본인가? 아니면 예(()과 같이 차이나 대륙에 같이 있었나?

 

2)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 예()조를 보자.

2-1)濊 南 與 辰韓北 與 高句麗 · 沃沮 接東窮大海 朝鮮之東 皆 其地也戶二萬

134는 남쪽으로는 辰韓, 북쪽으로는 高句麗·沃沮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大海에 닿았으니, 오늘날 朝鮮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 戶數2만이다.

 

2-2) ‘今 朝鮮, 오늘날 조선 朝鮮에서 오늘날진수삼국지를 편찬하던 기원후 280년 경이다. 위 문장에서 위치 방향은 조선의 동쪽에 가 있고, ‘의 남쪽에 진한이 있고 북쪽에 고구려,옥저가 있고 동쪽은 큰 바다이다.

 

기원후 280년 경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어도 조선이라는 지역은 있었던 것이다.

 

지역 조선이 차이나 대륙에 있고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가 있다고 서술한 것인가?

 

지역 조선이 지금의 한반도 평양 근처에 있고 바로 동쪽으로 붙어 가 있다고 서술한 것인가? 지금까지 코리아 모두는 이렇게 배워왔다.

 

지역 조선이 차이나 대륙에 있고 그 동쪽 차이나 대륙에 가 있고, ‘의 남쪽에 진한이 있었고, ‘의 동쪽은 지금의 황해인 것이다.

 

2-3) 昔 箕子 既適 朝鮮作 八條之教 以教之無 門戶之閉 而 民 不為 盜

일찍이 箕子朝鮮에 가서 八條를 만들어 그들을 가르치니, 문을 닫아 걸지 않아도 백성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其後 四十餘世朝鮮侯)〔僭號 稱王

그 뒤 40를 지나 朝鮮侯 準이 참람되게 이라 일컬었다.135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가 아니었던 (武王乃 封箕子 於朝鮮 而 不臣也. ‘사기 송미자세가’) 때가 기원전 1050년 경, 한 세대를 20년 이라 생각하면 40x 20 = 800여 년이고, ()만이 조선의 왕이 된 때인 기원전 195년 경에 조선후 준이 왕이라 일컬었다는 것이다.

 

2-4) 陳勝等 起天下叛 秦· · 趙民 避地 朝鮮 數萬口

[나라 말년에] 陳勝136 등이 起兵하여 온 천하가 진나라에 반기를 드니, ··지역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지역의 백성 수만인이 황해를 건너 조선으로 피난할 까닭이 없다. 조선이 ··지역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으로 피난한 것이다. 그러면 조선은 어디에 있었나? 당연히 ··지역의 삼각형 지역인 지금의 황하 북쪽이면서 하남성에 속하는 안양시, 한단시 인근인 것이다.

 

지역은 이론이 많이 있으나, 지역은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 인근, 지역은 지금의 한단시 인근이라고 본다. 나라의 서울을 지금의 한단시로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차이나역사책이 ‘()조선이 차이나 대륙 한가운데에 있다고 써 놓았는데, 왜 코리아가, 4군으로 바뀐 ‘()조선은 한반도 평양 부근이라고 빡빡 우기는가?

 

2-5) 燕人衛滿魋結夷服復來王之연나라 사람 衛滿이 북상투를 하고(魋結), 오랑캐의 복장으로 [조선에] 와 그 이 되었다.

 

2-6) 漢武帝 伐滅 朝鮮分 其地 為四郡自是之後胡漢稍別

漢 武帝는 조선을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四郡을 설치하였다. 이 뒤로부터 胡族漢族 사이에 점차 구별이 생겼다.137

 

이 때의 호족胡族 은 조선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조선을 東胡(동호) 라고 부르기도 한 것이다. 오환·선비=동호= 조선= 동이 이다!

 

호족(조선)과 한족(한나라) 사이에 점차 구별이 생겼다.” 는 표현에서 이전에는 두 민족이 구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외모상의 구별도 구별이지만 필자는 국경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 화하 족과 조선=동이의 국경이 비록 철조망은 치지 않았지만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은 삼국지에 나오는 () 나라가 처음으로 호족(조선)과 한족(한나라) 사이에 점차 구별이 생기도록했고, 그 책임을 ()나라로 돌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기원후 200년 차이나 위··오 삼국시대까지 존재했던 것이며, 조선은 비로소 고구려·부여··한 등으로 분열되었다고 본다.

 

2-7) 胡漢稍別無大君長自漢已來其官有侯邑君三老統主下戶

[에는] 大君長이 없고138 漢代 이래로 ·邑君·三老139의 관직이 있어서 下戶를 통치하였다.

 

其 耆老 舊 自 謂 與 句麗 同種

그 나라의 노인들은 예부터 스스로 일컫기를 ‘[]句麗와 같은 종족이다라고 하였다.

 

其人性 愿愨少嗜欲有 廉恥不 請句麗)〔〕。

그들의 성질은 조심스럽고 진실하며 욕심이 적고 廉耻가 있어, 남에게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진정 의문의 기록이다. ‘고구려에 빌면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2-8) 言語法俗 大抵 與 句麗 同衣服有異男女衣 皆 著曲領男子 擊 銀花 廣數寸 以 為飾

언어와 예절 및 풍속은 대체로 []구려와 같지만 의복은 다르다. 남녀가 모두 曲領140을 입는데, 남자는 넓이가 여러 치 되는 銀花를 옷에 꿰매어 장식한다.

 

自 單單大山領 以西 屬 樂浪自領 以東 七縣都尉 主 之皆 以濊為民

單單大山領의 서쪽은 樂浪에 소속되었으며, 의 동쪽 일곱 [東部]都尉가 통치하는데 그 백성은 모두 濊人이다.

 

! 단단대산령 單單大山領 은 어디인가? 식민사학자들은 단단대산을 개마고원과 낭림산맥으로 이야기한다. 정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삼국지를 쓴 차이나 사람들이 뭐한다고 한반도 골짜기까지 와서 이름을 붙이고 한단 말인가. 지금도 쳐다보지 않는 곳을. 그것도 기원후 280년 경에.

 

단단대산령單單大山領 에 주목하자. 한단시邯鄲市 의 단은 단단대산령의 단에 땅을 나타내는 우부방 '' 이 붙은 것이다!

 

단씨 성을 가진 씨족이 살던 곳이 단이며, 물 수가 붙으면 근처의 물()을 의미한다고 본다. [. (), 돌아 흐르다]

 

중요한 예외가 있으니 선우單于이다. 흉노 족의 우두머리를 말할 때 單于 라 쓰고 선우라고 읽는다.

 

필자는 원래 단우였는데, ‘단군의 단조선의 선을 혼용하던 코리아 민족의 결과로 을 혼용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한단시의 서쪽은 태행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서 을 구분하는데, 태행산맥=단단대산에 遼山(요산)이 있고, 요산을 기준으로 遼東(요동)’遼西(요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단시邯鄲市() 은 원칙으로 읽으면 으로 읽어야 한다.

 

네이버 한자사전의 설명이다. “ (땅 이름 감, 조나라 서울 한)의 한자 유래.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 마을)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이 합()하여 이루어짐.”

 

한서지리지 낙랑군 25개현 중 조선현 다음 두 번째 현 이름이 䛁邯남감이며 645년에 죽은 () 사고는 으로 읽으라고 주를 달았다. ‘한단邯鄲를 읽을 때는 이고 남감䛁邯을 읽을 때는 이다.

 

필자는 한단을 합하여 발음하면 + + 이 합해지는 소리가 나고 이것이 코리아가 어떤 때는 ·으로 어떤 때는 ·으로 어떤 때는 ·으로 읽어 왔다고 생가한다. 줄이면 우두머리 대장을 말하는 ()’ 혹은 ()= 麻立干(마립간)의 간 을 표기한 것이라고 본다.

 

〕 孟康曰:「〈音男。」師古曰:「〈音乃甘反邯音酣。」

樂浪郡縣二十五朝鮮䛁邯浿水含資黏蟬遂成增地帶方駟望海冥列口長岑屯有昭明鏤方提奚渾彌吞列東傥不而蠶台華麗邪頭昧前莫夫租

= () + () -> 도저히 으로 발음이 날 수가 없다. 무엇인가 조작 혹은 은폐의 느낌이 드는 글자이다.

나아갈 염.부수 [] (멀경몸, 2). 나아가다, 귀갑(龜甲)의 가장자리

 

2-9) 後 省 都尉封 其 渠帥 為侯今 不耐 濊 皆 其種也漢末 更屬 句麗

그 뒤 都尉를 폐지하고 그들의 우두머리(渠帥)하여 로 삼았다. 오늘날의 不耐濊는 모두 그 종족이다. 漢末에는 다시 []구려에 복속되었다.

 

우두머리(거수渠帥)는 북방 유목민족에 공통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것만 보아도 동이는 같은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지적했듯이 ()조선의 마지막 왕 右渠(우거) 右渠帥(우거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左渠帥(좌거수)가 통치하는 다른 ()조선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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