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77

문정기
  • 입력 2023.06.24 10: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품 평화 통일)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77

(명품 평화 통일)

내 발걸음은 우리나라의 태백산맥과 같이 척추 역할을 하는 아펜니노 산맥을 넘으니 어느덧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 가운데 부분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산허리를 몇 굽이 돌았는지 셀 수가 없다. 다만 이마에 흐르는 땀의 양으로 미루어 계산할 뿐이다. 계곡에 흐르는 물도 얼마나 많은 굽이를 돌고 바다로 흘러들지 알 수가 없다. 언덕을 오르다 오래된 돌집 앞에 의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었다. 안에서 청년이 나오더니 손수레에 꽃인 태극기를 보더니 자기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탈리아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는데 있다. 몇 백 년은 되었을 웅장하지만 별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낡은 2층 돌집의 네 귀퉁이에 그 보다 더 오래 되었을 소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창가에는 갓 피어난 꽃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온갖 추억을 다 간직하였을 그 집 마당에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우물이 장식처럼, 추억처럼 서있었다. 더 이상 물을 긷지 않는 두레박과 함께!

집 옆으로 실개천이 졸졸 졸 흐르는 소리가 새소리와 함께 아름다웠고, 그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 포도밭에 밀과 포도가 눈부신 햇살을 받아 익어 가고 있었다. 바람은 은은하게 불어 담장을 넘어온 장미 한 송이를 흔들어 놓았고, 기분 좋은 사색을 하던 나그네는 갑자기 으르렁 대는 개소리에 놀라 옆을 쳐다본다.

이탈리아의 집은 대부분 오래 되었다. 오래되었지만 낡았다고 할 수없는 집의 문이 열리더니 그 집에서 나서 자라서 결혼했을 할머니가 손주로 여겨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다. 중세의 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 되었다. 나는 눈이 마주치자 “차오!”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인사소리는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노란 페라리의 소음에 묻혀버리고 손을 흔들며 지은 미소만은 전달되었는지 아이의 고사리 손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흔들린다.

저런 투박한 돌집과 구찌, 프라다, 페라가모나 베르사체의 디자인이나 선이 나왔을까 상상해본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 밖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첫 월급을 타면 멋진 옷과 자동차를 먼저 장만한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패션이 발달했다. 지중해 연안의 날씨는 축복과도 같다. 이런 날씨 속에서 자람 포도는 명품 포도주를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라면 초로의 나라도 이탈리아 키톤의 장인 안토니오 드 마테이스가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옷을 입고 구두의 장인 스테파노 베베르가 만든 구두의 광을 내 멋지게 꾸미고 산타마리노 향수를 은근히 뿌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행복한 속삭임을 꿈꾸어 봄직도 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Made In Italy의 기반은 이탈리아 사회를 관통하는 장인정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감각에 있다. 한 나라에서 하나도 갖기 힘든 명품 브랜드를 수도 없이 갖고 있다.

명품 바이올린을 만든 아미티 가문에서 스트라디바리와 구아르네리 집안 출신이 일을 도우며 기술을 배웠는데 이들은 오래지 않아 독립하였다. 이 두 집안은 오늘날까지 바이올린 시장을 주도하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명품의 생명은 디자인과 색상이 다가 아니다. 내구성과 실용성이다. 오래도록 지녀도 항상 변함없는 내구성이다. 오랫동안 변치 않는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켜 기술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명장의 예술혼을 담아 낸 것을 명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장인정신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력과 높은 전문성에 있지 않다. 엄격한 가치와 원칙,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있다. 유연한 사고로 혁신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기계화로 끊어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손으로 정성껏 만든다. 장인은 최고의 기술자를 말하지만 ‘장인 정신’은 여기에 예술적 감각을 더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이탈리아는 이민족에게 오랜 시달림을 받으면서 또 여러 작은 도시국가로 쪼개져 서로 싸우며 통일 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당연히 국가의식보다는 믿을 건 핏줄뿐이었다. 가문은 제일의 가치이었다. 기술은 핏줄로 전해 내려왔다. 화려한 예술과 인문학의 발달을 가져온 르네상스 때부터 키워온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탈리아가 통일된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다. 통일 전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살았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지만 나폴리,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 도시국가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자랑한다. 이탈리아는 중, 근대 때 도시국가들의 탄탄한 경제력과 상업의 발달로 통일왕국이 생기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하나로 묶어낸 것은 가톨릭 신앙과 로마제국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인류사를 이끌어왔던 민족적 자긍심과 향수이다. 오페라의 명장 베르디는 수만은 명작 오페라를 남겼지만 '리골레토' '일트로바토레' '라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가 베르디 5대 작품으로 통한다. 특히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오페라 ‘아틸다’가 인기를 끌렀던 이유는 아틸다의 훈족에 대항하는 이탈리아인의 의지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그런 의지를 하나로 모아서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어 낸 것은 가리발디 장군이었다.

우리에게도 베르디는 얼마든지 있고 가리발디는 얼마든지 있으니 ‘명품 평화 통일’은 멀리 있지 않다. 정리jgm

---

*후원이 절실합니다. 후원구좌 농협 352-1344-2258-63 예금주 강명구

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과학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본 기사는 강명구씨와의 협의에따라 시리즈로 연재되는 기획기사입니다.

 

전 일정이 마무리에 다가옵니다. 그를 위해 끝까지 성원합시다.

6/28 교황청 교황집전 미사 참석, 교황면담 (*세부일정 추후 별도 게재예정입니다)

7/3 귀국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