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4부 염소 선생(2)
놔둡시다요, 걔네들 개판 오 분 전이라도
잘 쓰잖아요 살아 있잖아요
「구운몽」 속에 나오는
양소유와 팔 선녀 그리고 구름,
그건 이들이 속세에서 누린
한바탕 꿈, 갖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건만
그러든 말든 어느 날 즤네들 열
‘양팔구’를 만들곤
그중 어리뻥뻥한 척
한바탕 꿈인 구름이 가장 셌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구름은
애초 공부랑은 담을 쌓았으며
밥 먹듯 가출하고 담배 피고
허구한 날 출석부로 얻어맞되
근신 정학도 몇 개씩 먹되
감성은 애렸는지라 놀아도
시 하나만큼 기막히게 잘 썼더랬지
쉬는 시간이면 양소유 등에 업고
전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
두둥실,
삼 년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 그 구름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그런데
황혼에 물든 화장실 대걸레처럼 외로워라
아무튼 우리 걔네들 놔둡시다
시창작개론
기교가 꽝인 시
너희들 여러 번 말했잖냐
못 썼다고 생각한 것들
틀려먹었다고 생각한 것들
이건 글렀다 싶은 것들, 이건 도통
아니라고 여긴 것들
그런 것들 쓰라고
그런 것들이 좋다고
얼마나 괴롭더냐
얼마나 진실하냐
때 빼고 광 내지 말지니, 그대들
한껏 둔탁한 호박 들어
밤하늘 별 우러를지니
진종일
까옥 까옥 까옥
이거나!
먹으라네
이제
됐나
햐, 똥가이 같은 눔
은하 아파트
백만 도시를 뒤틀던 애물단지
아침마다 8-1 버스를 타면
고가도로 옆 은하아파트 거기서 꼭 막힌다, 온통
수십 년 수령의 자잘한 실금 뿌리들 엉킨 벽
이마 위 겨울 하늘로 전깃줄 뭉텅이가 흐르고
저층에서 우러나던 그 깊은 힘
뒷심 한번 좋더니
버티다 버티다 마침내 헐리누나
철공소 쇠를 깎고 용접을 하고 짜장면을 배달하고
화장품을 팔고 치킨을 굽고 개소주를 짜고
운전을 하고 번쩍번쩍 빌딩을 닦고
더러는 하염없이 놀고
* 끽, 두메산골 보리 열 가마 거두는 농사꾼네
들일에서 돌아오드키 녹초가 된 몸
받들던 열세 평 둥우리
이제 다들 날개를 달고 어딘가로 훨훨 날아갔구나
부모님 가시고 깨진 요강단지만 나뒹구는 초가삼간처럼
휑하다, 뻥뻥 뚫린 검은 창
줄줄 때꾸중 눈물 흘린다
가난한 것도 죄가 되나요!
공부 못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날마다 지각하고 벌 받던 은하의 시는
언제나 끽, 두 줄
벌 받아도 벌 받아도 지각하며 개기던
가무잡잡한 은하
* 연암 박지원 글에서
은하의 시를 볼 때마다
인천 말번지 살 때 내 고삐리 시절이
자꾸 생각나더라
은하의 두 줄 시는 사실
내 시 몇십 줄보담 백 배 더 빛나네
오, 영세
온순하고
보일 듯 말 듯 다리를 조금 절었지
지금은 한쪽에서
늘 그릇 닦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시 쓰는 마음으로
그릇을 닦는다니
그러나 시는 썩 좋질 않기, 오히려
그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가
끌리는가 떵떵거리는
잘난 이들 잘 쓴 글보다도
―웃기는 짜장면들
영세가 빨리 좋은 여자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아들 하나 낳아
꿈에도 그린다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이따금 영세를 통해
시를 다시 보고
곰곰, 내 인생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어
참 좋다
영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시를 쓴다
자신한텐 시가 마치
신체의 일부 같댄다
졸업하고 뾰족한 직업도 구할 수 없고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을 한댄다
가끔씩 관악백일장 같은 데 나가
장려상을 받고 한 시를 보내오곤 하는데
얼마 전 아주 작은 문예지로 등단했다, 소감문에
결혼도 하고 싶고
한 아이의 아빠도 되고 싶고
시인으로 살아가고도 싶고 그러려면
생업인 그릇 닦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 했다
그릇 닦는 일이 시보다 빛나는 순간이다
염소 선생
잘난 선생도 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또 못난 선생 되기도 싫고
좀 쓴답시고 가르친답시고
빌어먹을, 약장수가 다 됐구나
가을바람 소슬 부는데
짜른 혀
목이 멘다
우리 염소 선생들
뉘엿뉘엿 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에헴, 모이믄 우리 몇몇 얼려
코끝 쉰내 풍기며 올라간다
수리산 보리밥집
보리밥 먹으러
염소 선생들 재미 하나 없다
해서 깐이 보지 마라
이래뵈도 소용돌이치는 두 개의 뿔
무섭당
추라면 우리
보리밥 밥상 위에 뛰어올라가
춤도 춘다
어쩌다 선상 노릇을 한 지
어느덧 삼십 년이 훌쩍 넘었소
머리가 허옇소
한 가지만 쓰고
한 가지만 가르치고
한 가지만 듣고
아무튼 재미가 적소
우리 가르침만 주는 사람들, 주구장창
시퍼런 풀만 야금야금 뜯어먹고 사는
염소 같소, 거기다 뿔 두 개가 달렸지만
그것들마저도 전혀 쓰잘 데 없는 존재처럼
쩨쩨해 보이겠지만, 어쩌랴
옛날 무당굿놀음 사설에
가르치다 가르치다 밑천이 떨어지면
사공질에 튀전질에, 화닥대기
마, 술 먹고 지랄 떠는 것까지 다 가르친다
했으니, 그렇다 염소는 때로는 풀만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고프면 회포대 종이도
비닐도 막 뜯어먹는다오
그 뿔들 소용돌이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