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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번과 조선인가, 여러 조선 중의 하나인 진번조선인가. 東走 出塞, 渡浿水, 동쪽으로 달려 요새를 나와서 패수를 건넜다. 패수는 북남으로 흐르는 강인가, 서동으로 흐르는 강인가. 다시보는 조선열전(1)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54)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3.04.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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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마천의 사기는 송나라의 족보를 서술한 송미자세가에서 슬쩍이 조선을 끼워 넣었다.

 

관련부분을 요약하면

 

나라의 시조인 미자와 같이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를 주 무왕이 찾아와서 공손하게 묻자 기자가 국가경영철학을 강의해 주었고,

 

주 무왕이 기자 를 조선에 봉했는데 조선인지 기자인지 혹은 둘다 인지는주 무왕의 신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송미자세가에서 확실한 것은 기자 이야기가 나오는 기원전 11세기 이전에 은나라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조선이 존재했다는 것 뿐이다.

 

한마디로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자가 왕이 된 조선은 증명된 바가 없다.

 

(2) 사마천은 송미자세가에서 송나라의 기원을 친절하게 쓰고 망하는 과정까지도 자세하게 써 놓았다. 그런데 사마천은 조선열전에서 조선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조선열전의 시작은 단 아홉 글자이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朝鮮王 滿은 옛날 나라 사람이다.”

 

(3)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조선왕은 위만이 아니라 그냥 이다. 후대에 위만이라고 처음 쓴 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좌우간 한 글자다. 김씨, 이씨 같은 성씨가 있었다면 차라리 씨가 어울릴 것이다. 옛날 연나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위만조선이 아니라 최소한 연만조선아니면 그냥 만조선이라고 불러야 한다. 사마천의 조선열전만 따르자면 ‘()조선만조선이전과 만조선이후로 나뉠 뿐이다.

 

2. 진번과 조선인가, 진번조선인가.

(1) 조선열전의 시작부분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들었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번역을 그대로 가져왔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朝鮮王 滿은 옛날 나라 사람이다.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처음 나라의 全盛期로부터 일찍이 眞番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其逺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遼東 外徼에 소속시켰는데, 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에 복속시켰다.

 

燕王 盧綰 反, 入 匈奴, 滿 亡命, 聚黨千餘人, 魋 結 蠻夷服 而 東走 出塞, 渡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鄣,

연나라 왕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새()를 나와 패수를 건넌 후에 옛 진국(秦國)의 공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 王之都 王險.

점차 眞番朝鮮 蠻夷 들을 복속하여 거느렸다.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는데 도읍은 왕험(王險)이다.

 

(2) 번 문장의 주어는 무엇인가, 즉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킨 것은 누구인가? 문맥상 옛날 연나라 故燕 이고, 故燕 全燕 일때부터 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眞番朝鮮 은 조선열전에서 기록한 유일한 조선인가?

 

여러 조선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眞番朝鮮 인가? 아니면 眞番朝鮮 두 개가 있었는가?

 

문맥으로만 보면 옛날 연나라가 복속시킨 眞番朝鮮 1개 나라이고, 다른 朝鮮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의 제목이 진번조선열전이 아니고 조선열전임을 생각하면 진번조선 아닌 다른 조선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진번조선 전체를 복속시켜 진번조선 아닌 나라와 국경을 지키기 위해 담장과 요새를 쌓았다고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진번조선의 일부를 복속시키고 진번조선 나머지에 대항하기 위해 국경을 쌓은 것인지 해석에 어려움이 있다.

 

필자는 이 번 문장이 삼국지 위서 동이전( 삼국지권30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한조) ‘위략이라는 역사책을 인용하여 연나라 진개가 조선의 땅 이천리를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삼았다.” 는 말도 안되는 기록의 근거가 되었다고 본다. ‘위략은 현재 없으며 그것을 본 사람도 없다. 그냥 위략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고만 전해진다.

 

(3) 번 문장을 보자. “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에 복속시켰다.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

 

연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문장만 해석해 보자. 연나라 어디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동쪽의 근거는 뒷 문장에 나온다) 패수에 다다를 때까지가 연나라 영토였다. 패수가 연나라와 (진번조선의) 경계였다. 이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

 

진번조선이 있던 땅을 연나라가 빼았었는데, 이후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나서는,

 

요동 외요요동이라는 행정구역에서 약간 떨어진 행정구역에 소속하도록 했다.

秦滅燕, 屬 遼東 外徼. 漢興爲其逺難守,

 

진나라 혹은 연나라 수도 기준으로 가까운 순서가 요동, 그 다음이 요동외요=진번조선이다. 외요는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할 때 외성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다.

 

한나라 서울은 진나라 서울보다 요동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어 진번조선 지역을 지키기가 어려워서 요동 옛 요새요동외요에 속했던 진번조선 땅에 설치한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까지 연나라에 속하게 했다.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其逺難守

 

한나라 수도를 지금의 낙양시로 볼 것인가,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하고 난 다음에 차지한 지금의 서안시로 볼 것인가. 진나라 서울 서안시를 그대로 이어받았거나 최소한 인근지역이라면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其逺難守 문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서안시에서 보다 낙양시에서 더 멀리 있는 요동은 어디일까? 최소한 북경시의 동북쪽 요동이 아님은 확실하다. 도리어 요동은 낙양에서 서북지방이어야 한다. 낙양은 서안에서 374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태원시 나 아예 황하를 건너 오로도스 지역이 요동이어야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其逺難守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 전한과 후한은 수도의 위치 때문에 장안(長安)에 도읍했던 서한(西漢)과 낙양(洛陽)에 도읍했던 동한(東漢)이라고도 한다. 이는 오대십국 때 유지원이 세운 한나라를 후한(後漢)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나무위키, 한나라)

 

4) 번 문장을 보자.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는 했으나 한나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나라에 속한 연나라의 왕 노관이 흉노로 망명하고, ‘만조선의 왕이 된 이 천여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요동외요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 옛날 공터인 상하장에 왔다.

 

진나라 수도를 지금의 서안, 한나라 (전한)의 수도 역시 지금의 서안이고, 전한 창업시 근거지가 강소성 서주(서안과 서주사이에 낙양이 있다)라는 학설에 동의하고 진번조선의 위치를 추리해 보자.

 

진나라 한나라 사이 어느 지역이 혹은 서안을 기준으로 (서안은 진나라, 한나라의 수도였으므로) 어느지역이 요동이며 요동의 동쪽에 요동외요가 있고 조금 가면 패수가 있고 패수를 가로지르면 진나라 옛날 공터인 상하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한반도는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바다를 건넌다는 말은 없다. 오직 패수를 건넜을 뿐이다. ‘은 동쪽으로 가면서 강을 건넜으니 패수는 북남으로 흐르는 강이다. 어느 지역이 연상되는가?

 

낙양과 서안에 인접해 있고 북남으로 흐르는 강은 현재의 황하이다. ‘황하는 새 을 자 자모양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간다. 황하의 지류로 북남으로 흐르는 몇 개의 강이 있다. 경하 낙하 분하 등이다. 패수가 황하, 경하, 낙하. 분하 중 하나임에 틀림 없다.

 

차이나 역사책 기준으로 진나라의 강역과 한나라의 강역에 대한 연구를 살펴 보아야 위 4개 강중 어디가 패수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기만 해석하면 패수 동쪽은 진번조선의 영토이다.

 

5) 번 문장을 보자 점차 眞番朝鮮 蠻夷 들을 복속하여 거느렸다.” 여기서 이 망명한 곳은 진번조선 땅이었음이 확실하다. ‘만이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진번조선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본다.

 

다음 문장이다.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는데 도읍은 왕험(王險)이다.” 진번조선은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와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

 

옛날 연나라제나라를 살펴 보자.

 

사마천이 조선열전을 쓸 때인 기원전 100년 경에서 가장 가까운 연나라는 흉노로 들어간 노관이 왕이었던 연나라가 유일하다. 필자는 노관이 흉노로로 들어가서 한나라로부터 미움의 대상이 된 연나라가 옛날 연나라인 것으로 추정한다. 당연히 연나라는 흉노와 가까이 있다. 연나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쓸 예정이다. 결론만 이야기 하면 지금의 차이나 섬서성 서쪽에 연나라가 있었다.

 

제나라는 그냥 제나라인지 옛날 제나라인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조선열전의 원문은 故燕 齊 亡命者 이다. 故燕 故齊 를 줄여서 故燕 齊 로 표현했는지 여부다.

 

제나라는 제()란 국호를 가진 나라를 의미한다. 주나라 시대의 제(, 기원전 1046년경 ~ 기원전 221)와 한나라 (전한)의 제후국 제(, 기원전 203 ~ 기원전110)가 있다. 그 이후에도 제 나라는 많이 있었으며 필자는 여러 제나라 중의 하나가 코리아의 백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좌우간 주나라시대의 제나라이던, 한나라의 제후국 제나라이던 위치는 지금의 산동성과 산서성 접경지역에 연결된 지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적인 견해다.

 

6) 마지막 번 문장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齊國)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는데 도읍은 왕험(王險)이다. 王之都 王險 에서 왕험(王險)은 보통명사 즉 서울, 수도라는 뜻인지 어느 고유명사인 지명인지 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앞에 서울을 뜻하는 가 있으니 王險 은 지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선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줄이고 만이라고 비하하는 입장인 사마천으로서는 굳이 후대에서라도 찾을 가능성이 높은 지명을 기록하기 보다는,

 

차이나 천자의 입장에서 수도 즉 도읍은 조선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입장에서 이 들어간 험준한 곳으로 王險이라고 부른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해석한다.

 

은 험할 험, 검소할 검, 낭떠러지 암 세 가지로 읽는다. 檀君王儉(단군왕검)의 검과 비교해 보자.

첨은 다, 모두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일치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코리안들이 모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에 사람 인이 붙어서 왕검의 검이 되었다. 많은 코리안 들의 지도자라는 뜻이 된다. 에 땅을 의미하는 좌부방이 붙어서 왕험王險의 험이 되었다. 모든 코리안 들이 모이는 곳이고 왕이 사는 곳이 왕험王險이다.

 

사실은 단군왕검의 검과 왕험王險의 험이 으로 같이 읽히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왕험(, )은 특정 지명이 아니라 보통명사 서울인 것이다. ‘서울에 위치한 조선이 ()’ 이 들어간 왕험() 조선이고, 지방에 번국 속국 조선이 眞番(진번) 조선이다.

 

사기’ ‘조선열전의 후반부 대부분은 한나라가 조선의 수도 왕험王險을 공격하는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지명인지 보통명사 수도=서울인지에 대한 논의와 맥락이 닿아 있다.

 

사기가 쓰여진 기원전 100년경의 발음을 추적할 수는 없지만 현대 한자읽기 왕험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한민족 역사책에서 단군왕검 壇君王儉)자가 왕험의 자가 비슷하다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1281년에 쓰여진 삼국유사 권1 고조선조에는 고조선을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고 특별히 세주를 달았다. (卷 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王儉朝鮮)

 

만조선이 있었듯이 왕검조선(王儉朝鮮)’은 따로 있었다. 사마천은 왕검조선을 숨길려고 왕험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선열전을 줄이면

 

진번조선의 옛 땅에 옛날 연나라 사람 이 들어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 ‘은 도읍을 왕험에 했다. 王之都 王險. ‘이 왕이 된 조선은 한나라 공격으로 망하고 5(한나라의) 제후국이 되었다.” 이다.

 

사마천은 속보이는 거짓말은 차마 할 수 없었는지 이 조선의 왕이라고 했지, ‘이 조선을 만들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기자가 언급된 송미자세가송나라가 건국된 경위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 왕이 되기 전의 조선이 왕검()조선이고 이 왕이 된 조선이 왕검()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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