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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9

문정기
  • 입력 2023.04.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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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59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에게 해를 왼편에 두고 고개를 넘는다. 고개 위에 오르자 한편엔 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이고 한편엔 넓게 펼쳐진 들판이 보였다. 아직 내가 보고픈 그곳은 보이질 않았다. 젊어서는 삶이 안개처럼 모호하고 유치한 욕망들로 가득차서 소극적으로 꿈꾸던 이상을 나이가 들어 텅 비우고 나니 삶이 오히려 생동감이 넘쳐 온몸을 던져 이상을 실현시키려 길 위에 나섰다.

바닷가 마을에는 제주도의 감귤나무처럼 올리브나무 농장이 빽빽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는 아름다우나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많고 돌이 많아 척박하지만 일조량이 많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월계관은 올리브 나무의 잎과 가지로 만들며, 평화를 상징한다. 홍수로 세상이 물에 잠기자 노아는 방주를 띄우고 피난처를 찾기 위하여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다시 돌아온 비둘기의 입에는 올리브 나무 잎이 물려있었다. 그래서 올리브 나무는 희망이자 평화이다.

에게 해의 잔물결에 부딪쳐 튀어 오르는 햇살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눈이 부셨다. 내 삶은 기존에 삶의 방식을 좆느라 생기를 잃고 허약해졌지만, 들판에 나와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더 윤택해졌다. 에게 해의 비린내를 잔뜩 묻힌 생각이 파닥파닥 뛰었다. 그러다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날치처럼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 위에 솟아오른다.

고속도로의 고개를 한참 넘던 나는 배도 고프고 다리고 아파서 쉴 곳을 찾던 나는 졸음 쉼터를 발견하고 잠시 쉬면서 삶은 계란과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고속도로 안전요원이 나타나더니 고속도로는 사람이 보행할 수 없으니 잠시 기다리면 경찰이 당신을 태우고 안전한 곳으로 가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우리가 뒤에서 에스코트를 해줄 터이니 당신을 안전한 곳까지 이동하라고 하였다. 국도로 나오니 처음 예상했던 거리보다 많이 길어졌다.

그래도 사페스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코모티니까지 한 번에 가기에는 무리여서 한 8km 더 가더라도 나누어 가려했다. 그런데 사피스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호텔이 빈 방이 없다고 한다. 이미 시간은 4시가 넘었다. 코모티니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고 조금 더 가다 식당을 찾아서 저녁이나 먹고 텐트를 적당한 곳에 치려했다. 그러나 지도에 표시된 식당은 문이 닫혔고 다음 식당은 10km 더 가야했다. 일단 저녁은 먹어야하겠기에 거기까지 갔다.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코모티니까지 13km가 더 남았다. 나는 쌀쌀한 날씨에 야영을 하느니 늦더라도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하늘이 더없이 맑고 깨끗했으며 석양이 지평선 넘어가더니 별들이 팝콘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별빛이 비처럼 주룩주룩 내렸다. 금방 별빛에 마음이 젖어 오랜만에 밤하늘과 질펀하게 사랑을 나눈다. 태초의 신비스러운 근원으로 돌아가 사랑하려고 벌거벗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본다.

길가 옛집에서 개 짖는 소리에 마음의 고요가 깨졌다가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멈추자 별무리 사잇길로 생각의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닮은 사람인가? 조르바는 많은 것을 직접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졌지 않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 매듭을 자르듯이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를 고민도 없이 단칼에 풀러버리는 사람. 놀라울 정도로 현실에 충실한 사람. 걱정이 있거나 가난이 자신을 조여 올 때면 산투리를 연주하며 기운을 얻는 남자이다.

나도 길 위에 나서서 많은 사람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보고 겪으면서 정신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지지 않았는가. 애초 이 일정을 사전답사하고 이리저리 재보았으면 이 여정 길에 나설 엄두가 나질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일 일정만 미리 점검한다. 모레, 혹은 일주일, 한 달 후의 일정을 염두에 두면 두려움으로 몸서리가 쳐진다.

현실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나는 조르바와 같지만 나는 조르바가 가지지 못한 꿈을 가졌다. 평화로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꿈, 그들이 통일 된 조국에서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게 하고픈 꿈. 걱정이 있을 때 산투리를 연주하는 대신 나는 잡념이 생기지 않게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춤을 추는 대신 춤추듯 달린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뱀은 배로, 꼬리로, 남근으로, 머리로 그 비밀을 캐낸다. 조르바도 그렇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나는 뱀처럼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지는 않지만 발바닥으로 대지를 두드리며 대지의 비밀을 알고 대지와 친숙해지며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르바처럼 춤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고통스러운 달리기를 통해서 ‘평화’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 되는 경험도 겪게 된다.

조르바는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일지도 모르겠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매사에 당당하고 모든 일에 거침이 없고 즉흥적이며 본능에 충실하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밝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보통의 우리와는 달리 원초적이면서도 진리에 가까운 사람, 왜 사람들은 제멋대로이고 막무가내 인간 조르바에게 매력을 느끼며 열광하는가?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그는 분명 자신의 점심으로 샀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차를 타고 지나가다 나를 보더니 즉흥적으로 차를 세우고 나에게 건네주며 “Good Luck!”이라고 엄지척을 해주었다. 자기의 허기짐은 생각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기보다 더 허기질 거라고 생각된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제멋대로이고 막무가내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여튼“Thank You!”- 정리 j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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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문정기

공학박사/과학문화평론가

전 국가과학기술위원

 

*본 기사는 강명구씨와의 협의에 따라 연재되는 특별기획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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