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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원인모를 두통

이진성
  • 입력 2023.03.23 02:17
  • 수정 2023.03.2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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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01:34.

며칠 동안 엄청난 두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를 먹어도 잠시 그칠 뿐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나아졌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후두부가 지끈거렸다. 머리를 지긋이 손가락으로 눌러봤다. 통증이 왔다. 머리에도 근육이 있나 보다. 머리에 있는 근육이 아픈 것 같았다. 꾸준히 눌러주고 스트레칭했더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
 
가끔 이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결과가 있다. 나의 직업 군에서 가장 흔한 것은 오디션이다. 어떤 오디션은 너무 못하고 나왔는데 합격 통지를 받았고 또 어떤 오디션은 절실하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가서 물어보면 그들도 매번 해주는 답이 달라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적이 많다. 요즘엔 연기 수업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날이 간혹 있다. 최선을 다해서 알려줬는데 뭔가 발전이 없는 것 같을 때, 왜 저 상황이 됐는지 원인을 모를 때, 인과관계가 내 뇌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삶이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길 가다 묻지 마 폭행을 당하는 사람도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 유리병을 얻어맞은 사람 입장에선 세상이 납득이 안 가는 것이다.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는다면 이유는 있겠지만 세상에 대부분 일들은 인과관계가 그렇게 분명한 것 같지 않다. 노력한 것에 상응하는 결과가 반드시 주어지지는 않듯이.
 
따듯했던 사람이 어느 날 차가워진 것도, 평생을 함께 하자고 했던 약속도 시간이 지나서 시들해지는 것도, 어제는 즐겁고 오늘은 울적한 것도 분명한 이유가 없거나 헛짚는 경우가 많다. 내 두통의 원인처럼 그저 추측할 뿐이다. 때로는 원인을 알려고 하기보다 결과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아프면 머리를 주무르기나 하자. 삶은 두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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