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 삶은 시』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 (5)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03.10 23: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5)

 

우리 보고

걔네들이라고

그럼 느네들은

 

한허무 한상범

 

180센티 45킬로 허무에 퇴폐에 휘청거리던

매독 4기의 개미집 천재

‘나는 오늘 아침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물리학자가 되지 못했다’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72 한허무 한상범 문학은

해마다 이 두 줄 명문으로 충분했네

누가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랴

숱 없이 성긴 장발에 맨 눈썹

수많은 부르동들을 꿰뚫던 존 레넌 안경

동대 언덕 불심검문에서, 청량리 오팔팔 파출소에서

속절없이 뜯기던 존 레넌 장발

그러나 강자에겐 철저히 강했네

밤마다 나이트를 섭렵하며 말처럼 날뛰었지

소주에 아티반에 우린

그 매독 천재가 피우다 만 담배를

뻑뻑, 돌려 빨곤

반점과 얼룩들의 반란을 꿈꿨네

군 입대? 머저리 같은 세상 것들,

논산훈련소 밤하늘 별을 향해

아름답게 방아쇠를 당기던 허무와 퇴폐주의자는

단 일주일 만에 퇴소했지,

미치광이, 맛이 간 이 세상 존재들,

 

존만 한

방에

존만 한

오늘도 한껏

몸을 만다

마치

다구리로 밟힐 때처럼

곡소리 하나 없이

이젠 밟히는 것이야말로

쉬는 것

몸도 마음도

깊이 영혼까지

 

숙대 청파 뒷골목 싸늘한 자취방엔

연주를 잃어 버린 클래식 기타 한 대

언제나 울고 있었네 흐느끼고 있었네

부르동을 탐구하듯

눈을 감고 밤새 껴안고만 있던

한상범의 알함브라여

우린 세상 약자에겐 한없이 약했지

‘나는 오늘 아침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물리학자가 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짧고도 긴 소설 여기서 끝이 났네

그 두 줄, 두물머리 바라보며 우리

남한강 언저리에 그를 띄웠네

 

한 스텝 휘청거리며

한 장발 휘날리며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