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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나물

김홍관 시인
  • 입력 2023.03.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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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나물

 

봄이 익어갈 즈음이나 늦은 봄에 높은 산에 오르면

온갖 산나물이 죽순처럼 올라옵니다.

참취에 곰취, 다래 순이나 방풍나물 등

 

입이 봄을 흠씬 향기 맡고 남은 나물들은

큰 솥에 소금 한 줌 넣고 삶아 건져서 봄볕에 말립니다.

봄이 잔뜩 들어 있는 나물에 봄을 더 넣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잘 마른 나물은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쟁여 둡니다.

이들이 언제 해를 볼지는 그저 아낙만이 압니다.

 

여러 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초목이 변하고

정월 대보름 전날 드디어 해를 봅니다.

어릴적에 개보름날에는 밥을 아홉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짐 해오는 날이라 들었습니다.

묵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아마 묵었다는 뜻이 있나 봅니다.

 

물에 불려 별 양념 안하고 무쳐 냅니다.

파나 마늘은 나물의 향을 빼앗아갑니다.

적당한 간에 깨소금과 들기름이면 그만입니다.

고슬고슬 지어낸 밥에 나물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그것도 그만입니다.

썩썩 비벼서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으면 또한 그만입니다.

 

묵나물을 먹으면 사람 냄새가 납니다.

큰 산을 오르내리며 나물을 뜯었을 사람, 삶고 말렸을 사람, 밥상에 오르도록 애쓴 사람 등

삶으면 다시 포르스름해지는 묵나물을 보면

나를 위해 그리 애쓰셨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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