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나물
봄이 익어갈 즈음이나 늦은 봄에 높은 산에 오르면
온갖 산나물이 죽순처럼 올라옵니다.
참취에 곰취, 다래 순이나 방풍나물 등
입이 봄을 흠씬 향기 맡고 남은 나물들은
큰 솥에 소금 한 줌 넣고 삶아 건져서 봄볕에 말립니다.
봄이 잔뜩 들어 있는 나물에 봄을 더 넣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잘 마른 나물은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쟁여 둡니다.
이들이 언제 해를 볼지는 그저 아낙만이 압니다.
여러 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초목이 변하고
정월 대보름 전날 드디어 해를 봅니다.
어릴적에 개보름날에는 밥을 아홉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짐 해오는 날이라 들었습니다.
묵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아마 묵었다는 뜻이 있나 봅니다.
물에 불려 별 양념 안하고 무쳐 냅니다.
파나 마늘은 나물의 향을 빼앗아갑니다.
적당한 간에 깨소금과 들기름이면 그만입니다.
고슬고슬 지어낸 밥에 나물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그것도 그만입니다.
썩썩 비벼서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으면 또한 그만입니다.
묵나물을 먹으면 사람 냄새가 납니다.
큰 산을 오르내리며 나물을 뜯었을 사람, 삶고 말렸을 사람, 밥상에 오르도록 애쓴 사람 등
삶으면 다시 포르스름해지는 묵나물을 보면
나를 위해 그리 애쓰셨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