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 삶은 시』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 (3)

윤한로 시인
  • 입력 2023.02.11 08: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삶을 시로 엮은, 내 시를 삶으로 엮은

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3)

 

우리 보고

걔네들이라고

그럼 느네들은

 

강태기 형

 

전철을 몇 번 갈아타며

초겨울 보라매공원역 보라매병원 문상 길은

왜 그리 멀고 을씨년스러운지 영안실 빈소에는

딸 다정이 혼자 태기 형을 지키고 있었다

폐암에다가 후두암으로 갔다고 했다

식구도 친구도 후배도 지인도 없었다

거칠고 드센 부산 사나이

강태기 선배,

공고 자동차과를 나왔는데

고교 재학 중, 답지않게시리, 아동문학가로 등단하고

서라벌 70으로 들어갔다

(학번 따위 무슨 가치가 있으랴마는)

지독한 가난과 불행에 쫓겼고

입학 후 한 달 남짓, 그때 빼곤

강의실 근처에도 얼씬거린 적이 없었다

한 학년만이라도 수료하길 그리도 갈망했건만

토큰 한 개 땡전 한 푼 없는 주제로, 거지반

태원다방 봉다방 삐에로 블랙스톤

레지들 디제이들 침소를 순례하며

몇 달 몇 년을 삐댈 뿐

지칠 대로 지치고 깡만 살아

구죽죽 비가 오는 날은

그럼 됐나?

소주잔 서너 개쯤 질겅질겅 아작냈다

어느 날은 연못시장 보따리네도 혼자 평정했다더라

옆에서 같이 지친 사람들도 많았지만

좋아하던 애들도 참 많았는데

암튼, 우리 노가리들은 선배를 위해 기꺼이

시계를 잡히고 가방을 잡히고 학생증을 잡히고

보들레르 까뮈따위 다 잡히고 합숙을 했다

노상 찡그린 얼굴

와중에도 맑은 동심 한 움큼, 가둬 두려는 듯

옆구리를 그러쥐곤

쩔쩔매던, 떠돌던, 찌그러지던

동시 동화 작가 망태기 형아

그때 우린 시대의 복판에 있지도 못했고

문학의 변두리에 있지도 못했잖냐

애오라지 개미집에 빌붙어 쩔쩔맸을 뿐

 

절룩절룩

가는 길섶

함초롬 머금었다

잡풀 속 앉은뱅이

붉은 보라

찌끄만 것들이

착한 우리 형아, 힘들겠다 손 짚어

이제 좀

쉬었다 가라고

앉았다 가라고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