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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김홍관 시인
  • 입력 2023.02.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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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아버지의 면도는 엄숙했다.

정갈한 자리에 비누조각과 물이 놓였고

고운 숫돌과 가죽 벨트가 준비되었다.

목침이 놓이고 색경이 비스듬히 자리한다.

 

당신만의 면도용 칼은 고운 숫돌에 갈린다.

잘 갈린 칼은 적당히 긴 가죽 벨트를 여러 번 지난다.

숫돌에서나 가죽 벨트에서나 그 리듬은 일정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 헛기침 한번 하시고

물 묻은 비누가 아버지 얼굴을 향한다.

덥수룩한 수염을 쓰윽 한번 훑으시고 난 후

작은 색경에 초점을 맞춘다.

구렛나루를 지나고 콧수염, 이내 턱수염까지 지난다.

희끗희끗한 아버지의 수염은 저항 한번 못하고 수북이 쌓인다.

 

깔끔하게 면도 된 자리가 푸르스레하다.

요리조리 얼굴을 비추시며 미처 손이 덜간 자리를 다듬는다.

아버지의 면도는 당신만의 근엄한 의식이었다.

단정하게 면도를 마치신 아버지의 모습이 참 멋있었는데...

 

욕실 뿌옇게 김 서린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한다.

뿌연 거울 저 너머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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