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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아쉬움에 갑옷을 입힌다

이진성
  • 입력 2023.01.0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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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 23:00

<아쉬움에 갑옷을 입힌다.> 며칠 전에 생에 첫 자취를 시작했다. 그 전에도 물론 집에 잘 들어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느낌이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 밖에 돌아다니다가 집에 가도 아무도 없다. 본가에서 하나씩 짐을 싸서 자기 방에 옮긴다. 이불, 화장품, 옷가지 등등. 짐을 싸면서 나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가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눈을 마주치면 그 속에 담긴 많은 감정이 노출된다. 나는 모질지 못한 편이라 그런 마음을 알게 되면 결단력이 약해진다. 

건강하지 못하셨던 때의 어머니를 두고 군대에 입대할 때도, 누군가와 헤어질 때에도, 나를 붙잡는 상황에서도 나는 눈을 피한다. 혹여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표정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조금이라도 내 표정이 들키면, 상대방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빈틈을 파고들어서, 내 의지를 꺾어 놓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상황에서 다시 내 의지를 다잡는 게 고통스럽다. 그래서 자꾸 다른 곳을 보거나 멋대로 상대방이 판단하게 둔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매몰차게 또는 무심하게 행동했던 때를 회상하면서 상대방이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킬까 봐.'라고 한다. 오늘도 연말이라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어머니께서 한소리 하신다. '너 왜 삼촌이랑 아빠한테 인사도 안 하고 화난 것처럼 갔어. 그때!' 나는 '그냥 생각할 것도 많고 복잡해서 급하게 나갔어.'라고 얼버무린다. 

사실 나는, 내 맘속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지만 얼버무리며 포장한다.

사실 나는, 눈을 보지 않고라도 안녕히 계세요라든가 잘 있어라는 말을 할 때 떨릴까 봐 목소리가, 

그래서 두려웠어. 

사실 나는, 날 보는 사람의 눈에서 내 나약함을 발견할까 봐 걱정했어. 

그래서 그날 아쉽지 않은 척 내 감정에 갑옷을 입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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