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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살다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2.12.31 19:12
  • 수정 2023.01.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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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덕경의 일생

                                          고향, 진주 남강(출처=선인출판사)
                           고향, 진주 남강(출처=선인출판사)

 

'기억'과 살다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덕경 님의 일생이다. 도이 도시쿠니가 쓰고 윤명숙 번역가가 옮겼다. 도시쿠니는 53년 사가현 출생 저널리스트다.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었고 방사능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다룬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등 국제사회문제에 대한 저서도 많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제9회 이시바시 탄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했다.  그외 문화청 문화기록영화우수상도 받았다.

윤명숙은 도쿄외국어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연구과 석박사를 마친 정통 전문 역사학자다. '일본의 군대위안소제도 및 조선인 군대위안부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2000년도에 취득했다. 1991년 9월 30일 서울에서 김학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를 만나 연구 인생이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석사를 전공했고 연구 주제를 독립운동사에서 위안부 문제로 바꿔 계속 연구하고 있고 노년에 대한 주제에도 관심있다. 수많은 저서와 논문, 번역이 있다. 출판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을 많이 낸 선인 출판사가 맡았다.

여자근로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필자도 같은 말인 줄 알았는데 근로정신대는 군수공장에 취업한 한국인들이다. 정신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위안부와 같이 생각되는 게 싫다고 하는데 강덕경 님은 그런 거리두기도 이해하신다.

제목이 왜 기억과 살다가 아니라 '기억'과 살다일까? 원래 기억은 나의 한 부분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으로 지울 수도 속일 수도 위장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선 기억을 객관화한다. 하나의 다른 주체로서 내 맘대로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왜곡할 수도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한 인간의 기억도 인격체처럼 평생 동반하며 지울 수도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역사라는 의미인 듯하다.

번역자가 지인이라 번역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여러 손을 거쳐 미완성인 채로 자기에게 온 게 운명같다고 한다. 강덕경 여사가 나를 찾아왔다고. 그 말이 맞다. 필자도 번역을 하다보면 마음에 딱 맞는 시나 시인이 눈에 띄는데 좋은 시를 선정하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독특한 건 화가 강덕경의 그림이 있다. 그림 수준이 대단히 뛰어나고 상황과 묘사를 리얼하고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다. 물과 나무, 새, 샤갈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표지도 할머니가 직접 그린 '고향, 진주 남강'이다. 글도 일생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담담히 사실 그대로 쉽게 잘 쓴 책이다. 일기처럼 상세하고 자세하고 정확해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위안부 문제를 보면 오래 전 환향녀 문제가 생각난다.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돌아온 사람들을 환영을 못해줄 망정 터부시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전쟁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팔다리가 잘리고 고통받는다. 그들은 전쟁에 의해, 역사에 의해 다친 사람들이다. 마음이 잘리고 이웃에 상처받는다. 살아돌아온 게 축복인 건데 불행이 된다. 일본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손으로 하늘을 가린 자들은 평생 그 손바닥 밑에서 하늘을 못 보는 거짓되고 우둔한 자들이다. 그래도 가리려는 양심은 남아있나? 점점 관심이 사라지는 문제를 일본인이 파헤치고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저서다. 

위안부 용어도 개인적으로 말이 안 된다. 무슨 위안인가? 범죄피해자이지 위안이 아니다. 폭행 피해자가 누굴 위안하나? 단어도 바뀌어야 한다. 그들의 기억을 그들처럼 알지 못하고 그들처럼 느낄 수 없고 그들처럼 분노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기억이 그들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할 의무가 있다. 시대가 달라 우리가 아닌 거지 그 시대 태어났으면 우리가 당사자가 된다. 할머니들, 어머니들, 소중한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대한민국이 되자.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시처럼 쓰면서 글을 마친다. 내년엔 할머니들이 더 건강하시고 굳건하시고 피해보상을 정당하게 받으시길 바란다.

 

'기억'과 살다

 

웃어지니 웃을까

울어지니 웃는다

어느 날은 바람 불고

어느 날은 달이 밝고

어느 날은 꽃이 피고

모든 것엔 유효기한이 있다

소금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하지만 상실에는 기한이 없다

 

살아낸다는 건 

기억한다는 건

죽음이어야 끝난다

아니 그 다음에도 그 그 다음에도 아닐지도

비바람에 쓰러진 어린 나무는

혹독한 겨울도 인생이란 걸 모른다

곱게 핀 화초는

누군가는 온몸으로 폭풍에 맞서는 걸 모른다

 

나는 서 있고 극복하고 이겨내고 살았다

아무도 모르더라도 그렇게 살았다

누구도 부끄럽지 않게 이렇게 살았다

 

나는 '기억' 그대로의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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