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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82] 리뷰: 박흥우 & 이영신 리트 듀오 리사이틀 '겨울나그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12.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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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올해도 어김없이 실황으로 '겨울나그네'를 듣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리톤 박흥우의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이었다. 매년 이어지는 '겨울나그네' 감상의 올해 주인공 박흥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최고의 리트가수다. 그의 독일가곡에 대한 정통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숙명여대를 나오고 독일 데트몰트에서 수학한 피아니스트 이영신이 반주를 한다고 하니 한국을 대표하는 독일가곡 가수의 노래로 올해의 '겨울나그네'를 만난다는 게 설레기 그지없었다.

우로부터 바리톤 박흥우, 피아니스트 이영신
우로부터 바리톤 박흥우, 피아니스트 이영신

곡의 처음부터 나오는 너무나 유명하면서 어려운 음색 변화에 두려워서였을까? Bb minor의 저성부 악보의 첫 곡 '안녕'에서 피아노는 일부러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는 대목에서 3음을 강조하지 않고 근음인 Bb만 테누토를 했다. 그와 같은 타건은 '이정표'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음들의 구성음들이 전부다 충분히 눌러지지 않고 몇 개가 빠지면서 음향적으로 공허함을 남겼다. '마을에서'는 의도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둥글둥글한 레가토 대신 뾰족한 파편으로 프레이즈를 나누었으며 '폭풍의 아침'에서는 소리가 성악을 압도해버려 성악부가 피아노에 파묻혔다. '풍향계'에서는 가끔가다 건반의 굴림이 미끄러졌고 '냇물 위에서'는 제어하지 못하고 비집고 나와 버린 왼손의 불규칙한 악센트가 경기를 일으키게 하였다. 하지만 3번의 '얼어붙은 눈물'에서는 '겨울 얼음'(Winter's eis)와 같은 날카로운 악센트가 비수같이 심금을 찔렀으며 '고독'에서의 무겁디무거운 발걸음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넘쳐흐르는 물'에 가서야 박흥우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유절가곡이 차분하게 바뀌는 음색과 한없이 고요하게 울리는 피아노의 부점 리듬을 통해 안정적을 이루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가사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음색이 다채로웠다. 6번을 넘어 상술한 7번의 '냇물 위에서'에서는 박흥우는 완전히 겨울나그네, 즉 겨울여행을 떠나는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 스스로 겨울나그네로 변했다. 중년의 신사 박흥우는 약관의 젊은이가 되어 마치 자신이 실연당해 좌절하고 낙담하여 괴로워했다. 마치 무대의 연극배우와 같이 도깨비불에 희롱당하고, 우편마차의 말발국 소리에 부질없는 한 줌의 기대를 걸고, 날아가는 까마귀를 허무하게 바라보았다. 그 절정은 '여관'에서 오라토리오 같은 성스러운 영적인 기운의 충만과 관록의 '거리의 악사'로서 뜨겁게 산화하였다.

2022년 12월21일 수요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바리톤 박흥우의 겨울나그네
2022년 12월21일 수요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바리톤 박흥우의 겨울나그네

가사 없이 음악에 빠지는 게 쉽지 않을 거라 했지만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고 번역이라고 해봤자 설명에 불과하고 음악의 흐름과 연관성도 없으니 차라리 음악 감상에 방해만 되면서 원곡인 독일가곡의 밸런스만 깨트리는 스크린이 없어 필자에게는 더욱 박흥우의 숨결까지 따라 들어가고 같이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가사가 있었다고 해서 번역본을 보고 읽는다고 해서 독일가곡의 진가를 알아차릴 것도 만무하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건 없는 게 낫다. 천연기념물 같은 이 시대 무형문화재인 박흥우만으로 무대와 음악은 넘치고 넘치지 않는가.... 한국 가곡도 듣지 않는 세태에 독일가곡이 언제까지 계승되고 유지될지..... 아마 지금의 박흥우와 그 밑의 필자 세대를 끝으로 점멸하지 않을까 예측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아니겠는가. 내 살아 숨 쉬는 동안에는 이 귀하디 귀한 무대와 시간을 더욱더 누리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일 터....

무대인사하는 박흥우와 이영신
무대인사하는 박흥우와 이영신

끝으로 두 가지만 제언해 본다.

첫째, 대형 그랜드 피아노로 반주할 시는 차라리 피아노 뚜껑을 다 닫는 게 어떨지..

둘째, 어차피 리트(Lied)라는 독일어 고유명사를 음악회의 타이틀로 쓸 거면 리트 듀오 리사이틀이라는 영어의 혼용이 아닌 리트 두오 아벤트(Lied Duo Abend)는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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