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은본기’와 ‘진서 부여조’를 비교해 보자.
- 1)의 ⑩ 과 2)의 ④에서 보듯이 흰 옷을 입고 이를 숭상하는 것은 같은 민족의 문화전통이다.
- 은나라 마지막 왕은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부여에서는 喪을 치르는 동안은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부인은 베로 만든 面衣를 착용하며 玉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다. [ 1)의 ②와 2)의 ④ ]
- 옥갑 (부여왕이 죽은 뒤 입는 옥으로 만든 수의)은 차이나 보정시 일대에서 발굴되었다. 차이나는 한나라 왕족이라고 하나 의문의 여지가 많다.
* 漢時, 夫餘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菟郡, 王死則迎取以葬.
漢나라 때에는 夫餘王의 장례에 玉匣을 사용하였는데, 언제나 [玉匣을] 玄菟郡에 미리 갖다두었다가 王이 죽으면 그것을 가져다 장사지냈다.
魏略曰, 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 (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략에서 말하기를 그 나라는 은부하다. (매우 부유하다. 은나라를 이어받아 부유하다?) 선조이래로 파괴된 적이 없다.
1. 들어가는 말
이번 시리즈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부여의 위치를 추적하면서 시작하였다. ‘사기 화식열전’ 원문을 다시 보자
1)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南通齊、趙,東北邊胡。(중략)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燕 역시 발갈勃碣사이에 있는 도회지다. 남으로 齊、趙 와 통하고 동북으로 호胡와 접한다. (중략) 북쪽으로 오환과 부여가 인접했다. 동으로는 실꿰듯 연이어綰 예맥, 조선, 진번의 이로움이 있다.
2) 1) 번문장 바로 위에 있는 문장이다.
然 邯鄲亦 漳、河之閒 一都會也。北通燕、涿, 南有鄭、衛。
한단邯鄲 은 漳河사이에 있는 도회지다. 북쪽으로 연 燕, 탁涿과 통한다. 남으로 鄭、衛가 있다.
3) 2)번 문장에서 장하漳河에서 ‘漳’은 漳河를, ‘河’는 황하라고 이때까지 해석해 왔다.
4) 현재 한단邯鄲 은 장하漳河 위에 있고, 장하漳河 는 황하 위에 있다. 즉 ‘漳、河之閒’에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순은 한단邯鄲, 장하漳河의 위치가 ‘사기’가 편찬될 때인 기원전 100년경과 그 후 2,200년이 지난 현재가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다.
5) 필자는 현재 한단邯鄲 북쪽으로 강이 흘렸으며 그 강의 이름이 장하漳河 였는데, 어느 때인가 강 물줄기가 바뀌어 한단邯鄲 남쪽으로 흘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가정한다. 도시의 위치를 비정하면 지금의 한단邯鄲 북쪽에 붙어서 연燕과 탁涿이 있었다. 지금의 형태시와 석가장시이다. 연燕의 북쪽에 夫餘(지금의 보정시와 북경시이다), 연燕의 동쪽에 예맥, 조선, 진번이 북에서 남으로 있었다.
6) 지금 한단邯鄲시 남쪽에 장하漳河 가 있고 그 아래 남쪽이 은허가 발굴된 안양시이다. 안양시 아래에 학벽시가 있고 그 아래 남쪽으로 위하衛河 가 흐른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할 때에 한단邯鄲 남쪽으로 衛 가 있었다고 했다. 차이나는 학벽시를 위衛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7) 장하漳河 남쪽으로 장하漳河와 황하 사이에, 은허가 발굴된 지금의 안양시와, 안양시의 남쪽에 학벽시가 있다. 지금의 한단邯鄲시와 안양시를 합쳐서 사마천의 ‘사기“는 한단邯鄲 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본다. 기원전 1,500년경 은나라는 지금의 한단, 안양, 학벽, 신양 전 지역 즉 황하이북 장하 이남지역의 국가였다고 본다. 현재 황하 남쪽은 하나라의 도읍지로 알려진 얼리토우가 있다.
8) 은나라(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이 망하자, 은의 유민들 중 송미자는 송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기원전 282년까지 유지하였다. 은의 유민들 중 기자는 조선에 봉해졌는데 그 이후는 기록이 없다. 기원전 1046년 경 이전에도 조선이 있었다는 말씀이다. 안양시가 은나라의 수도라고 가정하면, 안양시 바로 인근에 송나라와 조선이 있을 수 밖에 없다.
2. ‘사기 은본기’와 진서, 삼국지, 후한서를 비교해서 보자
1)“ 사기 은본기 1.8 제을(帝乙), 주(紂) 및 1.9 사마천의 논평” 부분을 그대로 옮겼다.
① 갑자일 주의 군대가 패했다. 주는 도망쳐 들어와 녹대에 올라가서는
②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중략)
③ 갇힌 기자를 풀어주고, 비간의 무덤에 봉분을 덮었으며 상용의 마을에 상을 내렸다.
甲子日,紂兵敗。紂走入,登鹿臺,衣其寶玉衣,赴火而死。周武王遂斬紂頭,縣之〔大〕白旗。殺妲己。釋 箕子之囚,封 比干之墓,表 商容之閭。
④ 주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祿父)를 봉하여 은의 제사를 잇게 하면서 (중략) 封 紂子 武庚、祿父,以 續 殷祀,令 修行 盤庚之政。
⑤ 그 후손들은 제(帝)라는 칭호를 깎아내려 왕(王)으로 불렀다.
⑥ 은의 후손들을 제후로 봉해 주에 속하게 했다. (중략. 제후인데 나라이름 ‘은“을 계속 썼는지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殷民大說。於是周武王為天子。其後世貶帝號,號為王。而 封 殷後 為 諸侯,屬周。
은나라 임금은 제帝가 아니라 왕王이 되었다. 그래서 주왕묘紂王墓 가 있다. 주왕묘는 하남성 학벽시 기현에 있다. 학벽시는 은허가 발굴된 안양시 아래에 있다. 기현은 은나라의 수도이었고 주나라의 제일 큰 제후국인 위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다. 영화 ‘봉신방’의 신화가 생긴 곳이다. 은殷성씨姓氏는 한국의 강康성씨姓氏이다.
⑦ 미자를 송(宋)에 봉해 은의 후대를 잇게 했다. (송(宋)의 위치는?)
而立微子於宋,以續殷後焉。
⑧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전략) 설契의 성姓 은 자(子)였으나, 그 후손들이 봉지를 받아
⑨ 國국을 성姓으로 삼으니 은씨(殷氏), 내씨(來氏), 송씨(宋氏), 공동씨(空桐氏), 치씨(稚氏), 북은씨(北殷氏), 목이씨(目夷氏)가 그들이다.
⑩ 공자(孔子)께서는 ‘은에 노(路)라는 좋은 수레가 있었다’라고 하셨다. 흰색을 숭상했다.” (‘사기 조선열전’의 노(路)인 연상)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一〕北殷氏、〔二〕目夷氏。
孔子曰,殷 路車 為善,而色尚白。〔三〕
*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송(頌)」에 의거해 설의 사건을 순서대로 정리했고, 성탕 이후는 『서(書)』와 『시(詩)』에서 취했다.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
2) 진서 권97 ‘사이’ 편을보자.
晉書 卷九十七 列傳 第六十七 四夷. 東夷 夫餘國
①夫餘國在玄菟北千餘里, 南接鮮卑, 北有弱水, 地方二千里, 戶八萬, 有城邑宮室, 地宜五穀. 其人强勇, 會同揖讓之儀有似中國. 其出使, 乃衣錦罽, 以金銀飾腰. 其法, 殺人者死, 沒入其家, 盜者一責十二, 男女淫, 婦人妬, 皆殺之.
②若有軍事, 殺牛祭天, 以其蹄占吉凶, 蹄解者爲凶, 合者爲吉.
혹 전쟁이 있게 되면 소를 잡아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는데,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합해지면 길하다고 생각한다.
③)死者以生人殉葬, 有椁無棺.
사람이 죽으면 산 사람으로 殉葬을 하며, 椁은 있으나 棺은 없다.
④其居喪, 男女皆衣純白, 婦人著布面衣, 去玉佩.
喪을 치르는 동안은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부인은 베로 만든 面衣를 착용하며 玉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다.
⑤ 出善馬及貂豽·美珠, 珠大如酸棗.
⑥(魏略曰) 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被破.
그 나라는 은부하다. (매우 부유하다. 은나라를 이어받아 부유하다?) 선조이래로 파괴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 있는 ‘魏略曰’ (위략에 쓰여 있기를)이 진서 부여국전에는 없다.
⑦ 其王印文稱「穢王之印」. 國中有古穢城, 本穢貃之城也.
3) 1) ‘사기 은본기’와 2)‘진서 부여조’를 비교해 보자.
- 1)의 ⑩ 과 2)의 ④에서 보듯이 흰 옷을 입고 이를 숭상하는 것은 같은 민족의 문화전통이다.
- 은나라 마지막 왕은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부여에서는 喪을 치르는 동안은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부인은 베로 만든 面衣를 착용하며 玉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다. [ 1)의 ②와 2)의 ④ ]
- 옥갑 (부여왕이 죽은 뒤 입는 옥으로 만든 수의)은 보정시 일대에서 발굴되었다.
* 漢時, 夫餘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菟郡, 王死則迎取以葬.
漢나라 때에는 夫餘王의 장례에 玉匣을 사용하였는데, 언제나 [玉匣을] 玄菟郡에 미리 갖다두었다가 王이 죽으면 그것을 가져다 장사지냈다.
魏略曰, 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 (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략에서 말하기를 그 나라는 은부하다. (매우 부유하다. 은나라를 이어받아 부유하다?) 선조이래로 파괴된 적이 없다. (계속, 신화를 비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