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가. 지난 호까지 후한서, 삼국지, 진서 동이(열)전에 나오는 부여의 위치를 살펴 보았다. 부여는 차이나 최고(古)이고 最高(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사마천의 사기 史記 권129 卷一百二十九 화식열전제69(貨殖列傳 第六十九) 에 나온다.
사기는 130권이며 마지막은 사마천의 글쓴이 후기라 129권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사기를 주해(설명)한 책은 남북조시대 송제양진의 송나라(宋)裴駰이 쓴 집해集解, 당나라(唐)司馬貞이 쓴 색은索隱, (唐)나라 張守節이 쓴 정의正義 3권이 유명하다. 차이나 온라인 역사 도서관 国学导航
http://www.guoxue123.com/shibu/0101/00sj/index.htm 의 설명이다.
원문을 보자.
夫燕亦勃、碣之閒〔一〕一都會也。南通齊、趙,東北邊胡。上谷至遼東,地踔遠,〔二〕人民希,數被寇,大與趙、代俗相類,而民雕捍〔三〕少慮,有魚鹽棗栗之饒。北鄰烏桓、〔四〕夫餘,東綰穢貉、〔五〕朝鮮、真番之利。〔六〕
주해는 〔一〕1)에서 〔六〕6)까지 달려있다. 주해를 보면 글자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인쇄술이 없을 때 필사했으니 요즘 말로 ‘오타’가 많을 수 밖에 없다.
〔一〕正義 勃海、碣石在西北。
〔二〕索隱 劉氏上音卓,一音 敕教反,亦 遠騰貌也。
〔三〕索隱 人雕悍。言 如雕性之捷捍也。
〔四〕索隱 鄰,一作『臨』。臨者,亦卻背之義,他並類此也。
〔五〕索隱 東綰穢貊。案:綰者,綰統其要津;則上云「臨」者,謂卻背之。
〔六〕正義 番音潘。
나. 1번 주석을 자세히 기억해야 한다. [발해는 갈석의 서북에 있다. (勃海、碣石在西北。)] 이 때의 발해가 지금의 발해일까? 아니면 황하나 다른 강을 의미할까?
일단 글자는 勃 과 渤(발)로 삼수변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다. 네이버한자사전에서 勃 은 기운이 성하다, 바다이름 등의 설명이 달려 있다. 勃의 최초의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뜻과 관계없이 발음으로 표시된 것은 아닐까? 발음이라면 ‘발’과 ‘보’(차이나 발음) 어느 사이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發(발)조선이 나오는데 發 은 ‘발’로 발음할 경우 勃 과 차이가 없다!
勃碣之閒 은 많이 사용된다. 閒 은 한가하다는 뜻도 있지만 間(간)과 같이 ‘사이’를 말한다.
1번 주석을 따르면 발해가 갈석의 서북에 있음으로 현재의 ‘발해’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갈석산은 아니어도 갈석이라는 지방의 서북쪽에 발해가 있다. 발해가 지금의 황하라면 갈석은 황하의 동남쪽에 있어야 한다. 좌우간 갈석은 황하의 남쪽에 있어야 한다.
‘발갈지간’은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도 나오는 문구임에 더욱 주의하자!
2. 본문 : 이제 한 구절씩 보자.
가. 표의 1) 문장이다.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 也
1-1) 대략 (夫) 연(燕)은 역시(亦) 발갈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발해(渤海)와 갈석산(碣石山)사이로 그냥 번역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역시(亦)에서 어느 나라(지명)인가는 발갈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2) 이 구절 바로 위가 然邯鄲亦漳、河之閒〔一〕一都會也。北通燕、涿,南有鄭、衛。鄭、衛俗與趙相類,然近梁、魯,微重而矜節。〔二〕濮上之邑徙野王,〔三〕野王好氣任俠,衛之風也。 이다.
然邯鄲亦漳、河之閒〔一〕一都會也에서 알 수 있듯이 漳、河之閒에서 漳、河 의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해진다.
한단邯鄲 은 북쪽으로 연 燕, 탁涿과 통하고 남쪽에 鄭、衛。鄭、衛,가 있다. (北通燕、涿,南有鄭、衛。鄭、衛)
놀라지 마시라 은허가 발굴된 안양현 바로 위가 지금의 한단邯鄲시이다!
만약 현재의 한단邯鄲이 사기가 쓰여진 시대의 한단邯鄲이었다면
연燕 은 한단시 의 북쪽 지금의 석가장 시가 된다. 탁주시涿州市 는 북경시와 북경의 서남쪽 보정시 사이에 있다.
1-3) 연나라는 발갈지간에 있는데 지금 북경의 서남쪽 석가장 시 인근이 된다.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 也)
나. 표의 6), 7) 문장을 보자.
6) 北鄰 烏桓 夫餘, 7) 東綰 穢貉 朝鮮 真番之利
6) 북쪽으로는 오환(烏桓)과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7) 동쪽으로는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과 접하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남북으로 길쭉하여(綰 꿰다, 상투) 동쪽에 예맥, 조선, 진번이 가까이 있다)
만약 현재의 한단邯鄲시가 ‘사기’가 쓰여진 시대의 한단邯鄲이었다면 연燕 은 한단시의 북쪽 지금의 석가장 시가 되고 석가장의 동북쪽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 보정시 일대가 오환, 부여가 되며 석가장시 동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지금의 산동성 일대가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이 된다.
다. 표 3) 문장은 “(연의) 동북쪽은 호 胡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고 하는데,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인 보정시 일대가 ‘호 胡’ 가 될 수 밖에 없다. ‘호 胡’ 는 오환 부여를 합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해석할 것이다.
라. 표 2) 문장 “ 2) 南 通 齊 趙 남쪽으로는 제(齊)와 조(趙)에 통하고,”에서 석가장시 기준으로 정남이 아니라 서남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나라의 동(남)쪽이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이기 때문이다.
3. 반론
가. “ 위 2.본문 : 이제 한 구절씩 보자.” 만 보면 조선은 지금의 산동성 일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표의 4)번 문장을 보자.
4) 上谷 至 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寇 4) 상곡(上谷)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지역은 넓어 인구가 적고 자주 침략을 당했다.
踔 (드넓다.)자를 주의해서 보자. 상곡에서 요동까지는 평야지대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땅이 비옥해도 농부가 하루 논밭을 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거리에 있어야 한다. 하루 6시간 노동을 해도 걸어서 왕복 2시간 내에 집이 있어야 한다. 인구가 적을 수 밖에 없고 산이 없으니 쉽게 침략 당하는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 보자. 어느 지역일까?
지도 2의 노란지역은 4태행산맥으로 에워쌓여 분지 형태이다.
지도 2의 노란지역 전부를 큰 골짜기로 본다면 지금의 태원 정도가 上谷 至 遼東에서 上谷 (제일 안쪽 골짜기) 가 되지 않을까?
遼東 은 燕(연)5~8 중 어디일 것이다. 遼東 은 먼 동쪽이라는 뜻이다.
‘멀다’의 기준이 어디일까?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한나라의 수도는 지금의 서안이라고 하는 것이 대략적인 견해이다. 서안 기준으로는 연8이 제일 가깝고 그다음 연7,6,5 순서가 된다.
나. 연나라를 비정하는데 중요한 글이 사마천 사기 조선전 안에 더 있다.
표 문장 8) [ 朝鮮王 滿은 燕나라 사람이다. 처음 燕나라 때부터 일찍이 眞番과 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軍吏를 두기 위하여 국경에 성을 쌓았다. 秦나라가 燕을 滅한 뒤에는 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遼東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燕에 속하게 하였다.] (국편위 번역)
표 문장 8)에서 보듯이 [진번과 조선은 다르며, 연나라 영토였다가,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한 뒤에는 진나라 소속이 되어 遼東外徼에 속했는데, 한나라 때는 패수(서쪽) 연나라에 속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나 진나라가 서안 기준 서에서 동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므로 진번과 조선은 패수 서쪽에 있어야 한다. 패수는 북남으로 흐르는 강일 가능성이 높다.
진행방향으로 큰 산맥이 가로 막아 돌아가야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형태든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해대지간 이나 발갈지간처럼 지형을 설명하는 문구가 있어야 한다.
패수는
지도상 왼쪽에서 북남으로 흐르는 황하 혹은 황하의 지류이거나,
두 군데 2노란지역안에서 북남으로 흐르는 어느 강 혹은
지도상 1노란선 오른쪽에서 북남(남북)으로 흐르는 어느 강이어야 한다.
지도 4태행산맥을 넘어 수시로 교통하고 농사 짓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황하를 따라 ‘엘L’ 자의 꺽인 부분으로 주로 교통했을 것이다.
여기에 맞추면 진번 조선과 연나라는 지도의 연8이나 연2 노란지역 내의 어느 강 서쪽에 있어야 한다.
사실 지도 1노란선 오른쪽에서 북남으로 흐르는 강변의 큰 도시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연의 근거지로 사기가 기술한 한단시 인근에서 북남으로 흐르는 큰 강은 찾기가 쉽지 않다.
황하가 현재 허택시 북쪽에서 동북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고대로부터 계속 물줄기가 바뀌었다고 하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동북으로 흐르는 황하를 가로질러 지금의 허택, 제녕, 제남시에 있던 (고)조선의왕험(검)성을 한무제가 침공했다는 해석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계속 然 邯鄲 亦 漳、河之閒 一都會也을 알아보자)
1) 夫 燕 亦 勃碣之閒 一都會 也 2) 南 通 齊 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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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략 (夫)연(燕)은 역시亦 발갈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발해(渤海)와 갈석산(碣石山)사이로 그냥 번역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역시亦에서 어느 나라인가는 발갈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 남쪽으로는 제(齊)와 조(趙)에 통하고, |
3) 東北 邊 胡 4) 上谷 至 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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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북쪽은 호 胡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4) 상곡(上谷)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지역은 아득히 멀어 인구가 적고 자주 침략을 당했다. 踔 드넓다. |
5) 大與趙 代 俗 相類 而 民 雕捍 少慮 有 魚 鹽 棗 栗 之 饒 |
조(趙)나라 만큼 크고, 대(代) 나라와 풍속이 서로 유사하다. 백성들은 독수리처럼 사납지만 생각이 부족하고, 물고기·소금·대추·밤이 많이 생산된다. 雕捍 독수리 조, 막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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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北鄰 烏桓 夫餘
7) 東綰 穢貉 朝鮮 真番之利 |
6) 북쪽으로는 오환(烏桓)과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7) 동쪽으로는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이 집결되어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다.
6), 7) 수정 북쪽으로는 오환(烏桓)과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동쪽으로는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과 접하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남북으로 길쭉하여(綰 꿰다, 상투) 동쪽에 예맥, 조선, 진번이 가까이 있다) |
8) 朝鮮王滿,燕人.
自始燕時,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障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 爲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
8) [ 朝鮮王 滿은 燕나라 사람이다. 처음 燕나라 때부터 일찍이 眞番과 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軍吏를 두기 위하여 국경에 성을 쌓았다. 秦나라가 燕을 滅한 뒤에는 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遼東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燕에 속하게 하였다.] (국편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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