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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삼국지 진서 모두 부여 북쪽에 약수가 있다고 했다. 약수는 어디에 있는 강인가?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5)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2.11.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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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후한서 동이전 부여조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진서 4이 열전 부여조

1

430년경 범엽 편찬

285년 경 편찬 (진수), 450년 경 증보(배송지)

648년 방현령 등 편찬

2

夫餘는 본래 玄菟에 속하였으나 獻帝 때에 그 나라의 遼東에 속하기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즉 부여는 예전에 현도에 있었다가 요동인지 어디론가 옮겼다.

부여는 본래 현도지방에 있었다. 한나라 말기에 (부여의) 공손탁 부족장이 바다 (황하) 동쪽으로 확장하고 외부의 오랑캐 (外夷)를 복속시켰다.

 

(공손탁 보다 높은) 부여왕 위구태가 다시 요동을 복속시켰을 때, (요동은) 구리와 선비의 강역이었다.

의 인장에는 穢王之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나라 가운데에 옛 穢城이 있으니, 그것은 본래 穢貊의 성이다

3

夫餘國玄菟의 북쪽 千里 쯤에 있다.

夫餘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夫餘國玄菟의 북쪽 천여리에 있는데,

玄菟에서 천 리 떨어져 있다.

 

현도의 북쪽

장성의 북쪽 (장성이 현도의 북쪽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도의 북쪽

4

남쪽은 高句驪,

남쪽은 高句驪,

남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5

동쪽은 挹婁,

동쪽은 挹婁,

동쪽 없음

6

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서쪽 없음

7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8

북으로 올라가면서 현도, 부여, 약수 순서

현도의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 수 없음

서쪽은 없으며 선비는 남쪽에 있음.

 

세 역사서를 공통하는 것은 현도의 북쪽에 부여가 있고 부여의 북쪽에 약수 (弱水)가 있다.

 

바이두 ( 百度(백도) : 차이나의 네이버)로 약수를 찾아 보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弱水 는 현재도 존재했고, 黑水(흑수) 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구글어스로 弱水를 검색하고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弱水, 구글어스 명칭으로 Ruoshui River 가 떡하니 있었고, 이는 몽고의 Ejina (Emune) Gaole 과 연결되어 있었다. 차이나 말 약수에서 몽고말 에진(에문) 가올이 된 것이다. 가올은 () 인 듯 하다. 차이니즈로 额济纳 河로 쓰는 것 같다. Gaole (가올)이 강의 뜻도 있지만 고을 (마을)의 뜻도 있다면 에진가올 은 여진골로 연결될 수도 있다!

 

여진족의 무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2. 현대의 약수 (흑수)가 후한서, 삼국지, 진서가 편찬되었을 때의 약수(흑수)인가 ?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부여가 만주 흑룡강 성에 있는 것으로 배워 온 한국 사람들은 단순히 글자가 같을 뿐이라고 넘겨 버릴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약수 (흑수)가 과거 즉 기원후 5세기까지는 지금의 서안과 좀 더 가까운 거리까지 흘렀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의 약수(흑수)가 위 세 역사서 상의 약수와 같은 강이 아니라고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

 

차이나 역사서 만으로 한민족 (조선, 동이)의 역사 주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 차이나 대륙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하고 넘치기 때문이다.

 

3. 차이나 왕조와 역사 서술

 

차이나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사책을 만들었으며, 그 왕조에 제일 유리하게 서술해 왔다.

 

한민족은 ‘()조선이 최고의 선조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나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권위가 있다는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는 ()조선의 시작은 없고 연나라 사람 위만이 조선의 정권을 뺏들고 한나라와 싸우고 한나라는 조선 지역에 5 제후를 세우고, 전쟁에 승리한 (사실은 패배한) 최고 사령관 2명중 1명은 참수하고 1명은 평민으로 강등시킨 기록만 있다.

 

() 조선의 시작은 기록된 바가 없다. 기자가 은나라 서울을 지나가다가 눈물을 흘렸고, 은나라를 멸망시켰다고 주장하는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에 봉했다는 일방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다. 망한 것은 은나라인데 은나라의 신하인 기자를 멀쩡한 조선의 왕에 봉한다? 역사 왜곡 날조의 증거일 뿐이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 다음으로 나온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는 조선은 온데 간데 없다. 불쑥 부여, 고구리, , , 읍루, 동옥저 가 나오는 것이다.

 

조선이 정말 한나라에 멸망당했고 사군이 설치되었으면 사군이 없어진 기록은 왜 없는 것일까? 부여는 언제 만들어진 나라인가? 고구리가 부여보다 오래된 것인가?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다. ? 차이나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사책을 고쳐쓰고 빼고 했기 때문이다.

 

차이나 역사책에 백제와 신라는 언제부터 나오나? 그리고 왜와 일본은 언제부터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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