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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58) - 우리, 사우나에서 피로나 좀 풀까

서석훈
  • 입력 2015.06.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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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가 역시 왕년의 조연배우이자 건축 시행 등 각종 사업에 발톱을 뻗치고 있는 강호영이라는 젊은 사내놈과 참치집에서 나온 것은 밤 8시 반 경이었다. 오랜만에 고급참치에 사케를 몇 잔 걸쳤더니 장화자는 세상이 좀 살만 해 보였다. 또한 몸에 에너지가 크게 공급되면서 이 에너지를 좀 더 활용할 방안을 자기도 모르게 찾고 있었다.
참치집 앞에 흡연구역이 없어,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 한 대를 빨고 나온 강호영이 “어디 가서 맥주나 한 잔 할까” 했고 장화자는 이에 “배 부른데.” 하고 답하였다. 배가 부르면 배가 꺼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맥주는 또 마셔 뭐 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간부터 놈이 바라는 그 뭔 짓을 하겠다고 따라 나설 수는 없고, 아까 마신 차를 또 한 잔 하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별 할 이야기도 없고 그저 시간이 애매할 따름이었다. 놈과 영화감상을 하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고, 놈과 당구를 치자 할 수도 없고, 어디 성인오락실에 틀어박혀 기계나 좀 돌리자고 할 수도 없고, 한 두어 시간 걷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곧바로 집에 가겠다고 하는 건 본마음이 아니고, 해서 그냥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자니 놈도 이 상황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때 무심코 올려다 본 건물에 사우나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별 생각 없이 그걸 보고 있자니 놈이 갑자기 “우리, 사우나에서 피로나 좀 풀까.” 하고 나왔다. “저길 가자고?” “뭐 어때. 예전에 우리 영화 찍을 때 단체로 찜질방 갔던 거 기억 안 나?” “영화 찍을 때? 그때야 새벽에 단체로 갈 데도 없고 해서 간 거지.” 그러고 보니 그게 김 감독과 배우들과 스텝들이 다 같이 갔던 것인데 그걸 놈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지금 뭐하고 있나? 뒷돈이 상당히 있어 보이는 우리 김 감독을 두고 젊은 사내와 이러고 있으니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은밀한 쾌감도 깃들었다. 솔직히 김 감독과 대단히 진전된 것도 아니고 요즘 세 번 만난 것 밖에 더 있나. 아직 내가 공식적으로 지 애인도 아니고 설령 애인이 된다 하더라도 젊은 사내놈을 정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그의 왜소하고 추레한 육체로는 도저히 심적 미적 만족이 충족되지 않을 터였다.
장화자는, 김 감독의 경우 돈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기에 오늘은 그저 강호영과의 젊은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각자 샤워하고 휴게실에서 사업 얘기나 좀 해보지 뭐.”
무슨 사업 얘기? 내 모습을 봐라. 강남의 여자들이 질투의 눈길로 쳐다볼 정도로 뇌쇄적인 몸매에 꿀피부에 뛰어난 미모의 내가 사내들과 무슨 사업얘기를 하나. 하긴 사업도 여러 종류가 있지. 가만 생각해보니 어디서 배부르게 맥주를 마시느니 사우나를 한번 뛰는 것도 썩 괜찮을 을 성싶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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