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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63] 리뷰: 경기필하모닉 베르디 레퀴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7.26 08:23
  • 수정 2022.07.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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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월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4년간 이끌었던 오케스트라와 작별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2018년 9월부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직을 맡아왔던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동행의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곡이 베르디의 레퀴엠이라니 이 어찌 기가 막힌 인생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원래 2020년 경기필과 하려다 코로나로 무산되었는데 2년 후 그의 고별무대에서 하게 될 줄이야... 지천명을 넘어 환갑을 맞아 작곡한 인생 집약을 60세 동갑내기 후대의 같은 나라의 후배 지휘자가 타국에서 이탈리아 성악가 한 명과 같이 선사한 감동 그 자체였던 7월 25일 월요일 롯데콘서트홀 현장이었다.

마시모 자네티와 경기필의 4년간의 동행의 종지부를 찍은 대 서사시, 베르디의 레퀴엠

베르디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사람인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음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암보로 외우고 체화한 자네티는 레퀴엠 전체를 관장했다. 마치 오페라와 같이 극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국제성 아니 초국가성을 뛰어넘은 '세계적 가치'와 '보편적 정서로서의 공감'을 스텍터클하게 만들어내면서 최고의 완성도를 뽐냈다. 시작부터 약음기를 낀 첼로의 하향 탄식은 집약된 밀도와 최고조에 오른 집중력이었다. 바로 이제 90분에 걸치는 대단원의 서막이 열렸음에도 말이다. 중후한 기풍 안에 장대하기 그지없는 전개, 곡의 볼륨감을 여과 없이 드러나게 해주는 완급조절, 한국 교향악단의 고질적인 문제인 관의 취약함을 심지어 테라스의 반다까지 일소시킨 맹렬한 관악의 기세 등은 이글거리는 불덩이에 하늘과 땅이 진동하여 고통에 신음하고 울부짖는 중생들의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좌로부터 베이스 연광철,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 테너 김우경,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멜리스, 소프라노 손현경

소프라노 손현경의 진가는 제일 끝 곡인 'Libera me'(저를 구원하소서)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로시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여러 작곡가들과 함께 합동으로 작곡한 레퀴엠에서 베르디가 맡은 부분이기도 한 'Liebera me'는 그래서 독립적인 악곡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한데 손현경은 종교음악이지만 종교음악 같지 않고 종교 음악 같은 베르디의 레퀴엠을 마치 오페라 주인공의 죽음과 살고 싶은 절규를 표현하는 거 마냥 그려내면서 삶의 구원과 위로를 위한 간절한 호소를 열창하였다.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멜리스 역시 특히나 제5곡인 'Agunus Dei'에서 손현경과 함께 절묘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연달아 따라오는 부드러운 바순 유니즌 반주에 맞춘 고양시립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은 앞의 여성 듀엣이 만들어낸 천상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 공중부양의 신비가 연출되었다.

고양시립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

다만 불만인 건 남자 솔리스트들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베이스 안토니오 디 마테오의 한국 첫 데뷔 무대인지 알고 갔는데 연광철로 바뀌어있어 내심 처음에는 좋아했고 환호를 질렀다.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파프너와 포그너의 히로인인 연광철의 풍부한 성량과 목소리는 베르디 레퀴엠에 제격이라고 여겨 횡재라고 좋아했다. 테너 김우경 역시 쟁쟁한 모교 선배들을 제치고 한양대학교 성악과 교수에 취임한 스타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의 시종일관 흔들리고 불안정하며 맞지 않은 음정들은 필자의 귀가 이상하나 의심할 정도였다. 안토니오 디 마테오 대신 갑자기 투입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연광철은 충분히 곡을 습득했고 동료 출연진과 리허설을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혼자 맴돌았으며 솔리스트 4인방의 중창에서도 꼭 남자들만 끼면 밸런스가 깨지고 네 명의 인토네이션이 맞지 않을 정도였다.

고통과 괴로움을 더 큰 슬픔과 절망으로 덮어버린 경기필과 마시모 자네티의 베르디 레퀴엠

기악적인 면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오랜 기간 숙성된 내공이 결합된 올해 들은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 중 단연 탑이었다. 마시모 자네티의 떠남을 아쉽게 만든 절정이었다. 지루한 장마와 숨이 컥컥 막히는 무더위, 2년 6개월 넘게 왠지 소멸되었다 여기면 여지없이 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긋지긋한 코로나, 확진자가 6만명이 넘었다고 곧 세상이 망할 거 같이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온갖 심신미약자들과 정신병자들 그리고 무서운 폭력범들.... 하나님이 보시기엔 지금 인류의 모습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까? 그런데 베르디 그리고 마시모 자네티와 경기필은 보여줬다. 이런 모든 것들을 끝갈데 없는 슬픔과 절망으로 덮어버리면 결국 긴 터널의 마지막에는 한 줌의 위안이 남고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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