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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동운동가를 사랑한 재벌가의 외동딸

강승혁 전문 기자
  • 입력 2022.07.20 16:49
  • 수정 2022.07.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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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고급 승용차로 등하교한 공주
남편(권영길)의 첫인상은 ”누네 띠네“

<가난한 노동운동가를 사랑한 재벌가의 외동딸>

권영길의 파리특파원 시절, 그의 아내인 강지연 여사가 강가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 사진=18대 권영길 국회의원실 제공
권영길의 파리특파원 시절, 그의 아내인 강지연 여사가 강가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 사진=18대 권영길 국회의원실 제공

 

715일 정오, 권영길 대표(평화철도)는 오동진 관장(전태일기념관), 한석호 사무총장(전태일재단), 채운석 운영위원장(길목 사회적협동조합) 등 후배 몇 사람이 준비해 진행한 초복(816) 맞이 노동 원로 백숙 대접하기식사 모임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채운석 운영위원장(전 사무금융노련 위원장)의 개인 소유 낚시터인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소재 지혜낚시터에서 이뤄졌다. 권영길 대표는 모인 8명의 노동 원로들과 몇몇 후배 동지들 앞에서 오늘이 안사람 팔순인데, 아침에 사놓은 생일 케익에 촛불켜서 축하하고 왔다고 하자 좌중의 누군가가 케익 하나 먹고 여기 와버리면 사모님이 서운해하지 않으시던가요라며 물었다. 이에 권영길 대표는 안사람이 그동안 생일이라고 케익 하나 사오지 않던 사람이 케익을 사와서 축하해줘 고맙다고 했다며 말했다. 그러자 듣던 사람들은 그러냐며 소박한 모습의 강지연 여사를 머릿속에 그렸다.

 

학창 시절 고급 승용차로 등하교한 공주

1943718일 태어난 강지연 여사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부산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와 혜화초등학교, 이화여중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초등학교와 중고시절, 그녀는 고급 승용차로 등하교를 하면서 신발에 흙을 묻힐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는 자가용이 흔치 않던 시기로 큰 기업체의 사장 정도만 승용차를 소유했었다.

 

대학 3학년 무렵,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자란 그녀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는데, 아버지인 강의수 회장(동방생명)이 간암으로 쓰러진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강지연의 아버지 강의수 회장은 지금은 삼성 그룹에 흡수된 삼성생명의 전신 동방생명의 창업주였다. 강의수 회장은 자신이 병상을 훌훌 털고 금방 일어설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사후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세워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건강이 위중한 것을 염려한 회사의 중역이 뭔가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면 괜찮다. 곧 털고 일어설 건데하며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잃은 강지연 여사의 슬픔은 표현할 수 없이 컸다. 그녀에겐 하늘이 무너진 것이었다.

 

아버지인 강의수 회장은 강지연 여사를 데리고 술집과 요정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딸에게 이런 세상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살던 부잣집 딸과 어머니에게 가혹한 시련이 닥쳐왔다.

 

강지연 여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회사는 곧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된 내막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죠.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재산을 지킬 능력이 없었어요. 아버지를 잃은 슬품이 채 가시기도 전에 회사 명의로 되어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삼성 그룹의 동방 생명 인수 과정에 대해 권영길과의 대화에서는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삼성 그룹은 어떻게 동방 생명을 인수할 수 있었을까. 대략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것이다. 강의수 회장은 무역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면서 보험업에 주목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보험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였다. 황금 시장이었던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보험업을 시작했다. 동방 생명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기업으로 자라나면서 동남 증권과 신게계 백화점, 석유 회사를 비롯해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굴지의 재벌로 자라났다. 승승 장구하던 동방 그룹은 강 회장이 쓰러지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김경환, 권영길과의 대화』, 96.)

 

강 회장이 병상에 눕기 전 삼성 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당신과 내가 합치면 굴지의 재별이 될 수 있으니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강 회장은 정중히 거절했다. 금융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강 회장의 와병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사람을 풀어 병세를 알아보고, 동방 그룹 인수 계획을 수립했다. 동방 그룹의 핵심 중역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주식을 사들였다. 아무도 지키려는 사람이 없었던 동방 그룹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경환, 권영길과의 대화』, 96.)

 

강 회장이 죽자마자 동방 그룹의 마지막 주주 총회가 열렸다. 주인은 삼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권영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자산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하고 종이 값에 그냥 넘기듯이 회사를 넘겼다고 한다.“ (김경환, 권영길과의 대화』, 97.)

 

강지연 여사의 집엔 서울대 공대에 다니던 외사촌 오빠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SK건설의 정석우 고문이 바로 그이다. 당시 그는 정부길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가 강지연 여사의 집에 기거할 때 경남고 시절, 독서회 친구였던 권영길이 자주 드나들었다. 강지연 여사가 권영길을 처음으로 보고 어울리기 시작한 때가 이때라고 한다.

 

권영길 강지연 부부는, 1968년 10월 15일,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전 내무부장관 이호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은 신혼 기간 사진을 찍은 권영길 강지연 부부. 선남선녀의 모습이다. / 사진=18대 권영길 의원실 제공
권영길․강지연 부부는, 1968년 10월 15일,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전 내무부장관 이호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은 신혼 기간 사진을 찍은 권영길 강지연 부부. 선남선녀의 모습이다. / 사진=18대 권영길 의원실 제공

 

남편(권영길)의 첫인상은 누네 띠네

강지연 여사는 퀴즈 100100에서 첫사랑인지의 질문에 대해 결혼하려고 마음을 갖게된 사람은 (권영길이) 처음이라고 답했고, 남편의 첫인상에 대해 한마디로 누네 띠네(눈에 띄네)“였다고 한다. 또한 생애 최악의 순간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구속되었을 때라고 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녀는 김경환 저 권영길과의 대화』 속 인터뷰에서 ”94년 말이었나, 남편에게 수배령이 내려졌어요. 형사들이 대문 앞에 아예 진을 치고 살았죠. 동네 목욕탕을 갔다 오는데 그 앞에서까지 지키고 있더라구요. 졸업 여행 떠난 아들을 쫓아가서 콘도 문을 열어제치기도 하고, 여자 친구를 만나는 아들을 검문하기도 했어요. 전화 벨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면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욕설을 퍼부었어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때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려울 때마다 의지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부잣집 딸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 갑자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는데 고통스럽지는 않으셨나요?’란 질문에 제가 동방 생명 사장의 외동딸이었다는 것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건 아버지의 삶이었으니까요. 경제적인 어려움은 결혼 초부터 각오한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어요.“라며 소탈하게 말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첫째(권혜원 교수)를 낳았을 때라고 기억하는 강지연 여사는 지난 715일 권혜원 교수를 비롯한 남편과 사위, 아들, 며느리, 손주와 함께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가족만이 모인 가운데 팔순을 기념하는 간소한 축하 자리를 가졌다.

7월 15일 저녁, 가족들과 조촐한 축하 자리를 함께한 권영길 강지연 부부. / 사진=권순원 교수 페북 갈무리
7월 15일 저녁, 가족들과 조촐한 축하 자리를 함께한 권영길․강지연 부부. / 사진=권순원 교수 페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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