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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기: 한글 온누리에 꽃으로 피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6.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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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3층 특별관에서 6월 7일 화요일까지 열려

최근에 손 편지를 써보신 적 있으시나요? 카톡과 문자메시지 SNS 등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거 말고 하얀색 종이에 연필이나 붓으로 글자를 쓴 지 얼마나 됐나요? 사랑까지 연필로 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손으로 글씨 쓸 일이 거의 없고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찍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캘리그래피라니 도리어 레트로 풍의 감성 자극 아니겠는가! 6월 1일부터 7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3층 특별관에서 한국캘리그라피예술협회가 주최한 '한글 온누리에 꽃으로 피다'라는 주제의 캘리그라피 제5회 정기 기획전을 다녀왔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다움(kallos)과 쓰기(graphe)의 합성어로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고 개성 있게 쓰는 기술을 일컫는다. 정해진 규격대로 찍어내는 활자와는 달리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캘리그라피가 가진 독특한 매력으로서 '손으로 쓴 그림글자'라는 원래의 뜻과 기능에서 벗어난 각각 고유의 개성을 지닌 '서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붓을 활용하여 글자를 적었으니 서예가 일종의 캘리그라피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이렇게 아름다운 글씨로~~ 이규남의 '우리의 만남은'

약 400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한국캘리그라피예술협회에서 80명이 참여한 <한글, 온누리에 꽃으로 피다> 전시회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구절과 문장을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한글의 우수한 조형미를 과시하며 읊고 읊어도 아름답기만 하고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이 여백의 균형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풍부한 창의성으로 캘리그라피로 재탄생하였다.

관심사도 다양하고 표현하는 매체도 여러 가지다. 화선지에 먹을 이용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조명. 레진 아트. 아크릴 플루이드. 고재. 쇠. 직물. 사진. 서각. 도자기. 종이공예. 철판 등 글의 내용과 어울리는 최적의 소재와 표현방식을 만나 개성을 뽐낸다.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 그중에서 "뿌리 깊은 나무"로 시작하는 조선 왕조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내용의 송축가인 2절이 조용철에 의해 불난 건물에서 철거된 배전함 문짝이 패널이 되고 굵은 철사가 글자가 되어 마치 나무가 뿌리는 깊게 내리는 듯한 고목으로 표현되었다.

조용철의 '용비어천가 제2장'

작센트 미하이의 책 [몰입] 56쪽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송시형의 <끌리다>는 전시장을 쭉 돌면서 제목만큼 순간적으로 끌렸다. 끌리는 게 이유가 있나? 사람과 사람 관계든, 사람과 예술작품의 관계든 총 맞은 것처럼 번쩍 내가 끌려 들어가면 되는 거다.

송시형의 '끌리다'

민병두?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작품을 여기서 만날 거라 예상 못 했다. <한글, 만국평화의 기호>라는 제목이다. 포격을 당한 듯한 우크라이나 색깔 위에 최근 몇 년간 세계적 이슈가 되었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홍콩의 표어를 싣고 한글이 평화의 언어로 커가고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정쟁과 진영논리에만 함몰되어 민생을 외면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이런 평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국회정무위원장이자 정책통답게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니 반갑기 그지없다.

민병두의 '한글, 만국 평화의 기호'

예술은 문화의 단면이자 삶의 반영이다. 예술을 통해 공감과 위안을 받는다. 현재 어떤 처지와 사정에 있느냐에 따라 보고 듣고 누리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내 눈에는 나태주의 아름다운 시구가 먼저 들어오고 아름다운 문장에 끌렸는데 동행한 피아니스트는 어제, 오늘, 내일 그중에 으뜸은 오늘이라 오늘을 즐긴다는 한흥수의 <오늘>의 문구인 '나는 단지 오늘을 살 뿐이다. 살아보니 나중은 없더라'에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투영한다. 왠지 처절하고 비장미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건 해석하기 나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로 Carpe diem, 즉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겨라! 이런 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니 말이다. 정답은 없다. 캘리그라피라는 따듯한 글씨로 공감하고,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작으나마 쉼과 힘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얻고 가면 되는 거다.

한흥수의 '오늘'
한흥수의 '오늘'

'손으로 쓴 그림글자’라는 캘리그라피의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유연성과 선, 면, 여백의 미, 거친 획과 유려한 곡선, 절묘한 균형, 대비, 디자인 등 여러 요소를 담고 있는 문자예술의 총체가 다양한 소재와 미디어와 결합, 한글의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되고 전달력이 커짐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표현하는 매체와 방식이 천차만별인 건 캘리그라피 원래의 손으로 쓰는 글씨도 쓰는 이에 따라 마치 사람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필체도 다 달라 그 안에 삐죽이, 뚱굴이, 휘갈이, 굴림이 등 필체도 다 다른 것처럼 그것들이 하나씩 모여 우리네 인생을 만들어가는거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꼭 이 전시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다 마찬가지고 필자 같은 음악인이나 거북스러운 테지만) 한글이 소재라면서 갤러리에 흐르는 미국 스탠더드 재즈 배경음악은 융합과 동서양의 조합이 아닌 그저 감상을 방해하는 언밸런스다. 전시회의 목적과 취지에 맞고 어울리는 음악이 없다면 모를까 오감만족에서의 청각은 왜 맨날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만 취급하고 조예가 다들 없는지... 멀리 갈 것도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가 한글 창제를 주제로 한 한 '하늘소리, 우리 소리, 훈민정음'이라는 기악곡도 있다.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로 한글에 버금가는 문자 체계를 찾을 수 없다"라고 극찬한 <총ㆍ균ㆍ쇠> 저자 제럴드 다이아몬드가 마침 한국을 방문 중에 인사아트프라자에 와서 한글 캘리그라피전을 보는데 재즈가 나온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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